https://youtu.be/WGIY6O_LG-4
한국 속담에 “세 살 난 아이 물가에 놓은 것 같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살 난 아이가 물가에 있는 것을 보면 어떠시겠습니까? 아이가 물에 빠지지는 않을까 하여 불안하시르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을 볼 때에 무슨 위험한 일이 날 것 같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의 마음이 꼭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세상에 전파하라고 그들을 보내십니다(10:7).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16절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가운데 보냄과 같다." 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르시는 양을 이리가 가득한 곳으로 보내야만 한다면, 그 양을 걱정하는 마음이 상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이 천국 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전할 때에, 그 제자들을 대적하고 해하려고 하는 이리와 같은 두려운 존재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위험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세번씩이나 반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지, 그 이유를 세가지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실 때에 어떠실까요? 이천년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처럼, 저와 여러분을 이리 가운데 양을 보냄과 같다고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과거 제자들이 경험한 것과는 다르겠지만, 이 세상에는 여전이 이리와 같은 신앙적인 대적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여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영적인 도전이 무엇이며, 어떻게 세상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유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당하는 세상으로부터의 고난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첫번째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실 때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이랴?"
이는 예수님이 대적자들로부터 당한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말합니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우두머리라는 말로, 마귀를 말하는데, 예수님이 마귀의 힘을 빌어서 그런 기적을 행한다며 예수님을 대적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알아 보지 못하고, 고작 마귀의 하수인 취급을 하며 예수님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는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사람이랴?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이 선생과 주인, 그리고 집주인으로서 그러한 배척을 받고 고난을 받았으니, 제자들은 종이요, 예수님의 집에 속한 사람으로서 함께 배척과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제자들은 선생이 고난을 받을 때에, 선생과 같이 고난을 받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동질성은, 복음을 위해서 함께 고난을 받음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인 저와 여러분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것은 세상에서 높아지고 영광을 받음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 말씀대로 살다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음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거부당하고 박해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밝은 데서 그리고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알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 거부당하고 숨겨진 것 같지만, 결국 예수님이 구세주시고, 그 말씀이 진리임을 드러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거부하고, 왜곡하는 무리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성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이슬람이나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선지자 중에 한 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단들 중에는 성경말씀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왜곡해서 해석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는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에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세상으로부터 저항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세상과 차별화되어 세상으로부터 거부를 당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임을 증명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고난과 불편한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요, 그의 말씀을 진리임을 믿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담대히 살아갈 때에, 도리어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성도로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두려움은 육신의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몸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을 두려워 하고, 그러한 사람의 말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몸을 죽이는 사람들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몸뿐만 아니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도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몸은 잠시뿐이지만, 영혼의 죽음은 영원하기 때문에 더 심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문제점은 눈에 보이는 육신의 죽음은 두려워하는데, 영원한 죽음인 영의 죽음은 소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14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불못과 같은 지옥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지옥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몸과 영혼을 지옥에서 멸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믿고, 둘째 사망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 대해서 소홀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기독교 이단에서는 지옥이 없다고 함으로 영혼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게 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옥을 만드실 수 있냐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 할 만한 분이 아닌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은 이단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상실한 시대입니다. 눈에 보이는 두려움에 속아서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무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권세가 아무리 두렵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두려운 분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순종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한 두 산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들어가서 번창하게되니까 애굽의 바로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고, 중한 노동을 시키며 학대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민족이 번성하게 되자, 바로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라 하는 두 사람에게 명령을 내려, 히브리 여인으 해산하는 것을 도울 때에, 태어난 아아이가 아들이며 그를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립니다. 출애굽기 1:17절에 그 이유가 나와있는데 그것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다."고 했습니다.
두 산파에게 있어서 애굽의 바로왕은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자였습니다. 그런데 두 산파가 바로왕보다 더 두려워한 존재는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분은 몸뿐만 아니라, 영혼도 지옥에 보내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두 산파에게도 바로왕은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했기에, 다른 두려움 앞에서는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할 때에, 세상의 두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할 분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담대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음으로 믿을 때에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한 앗사리온은 하루 노동자 품삯의 1/16에 해당하는 작은 돈입니다. 참새 두마리에 한 앗사리온이니 한 마리는 정말 보잘것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머리털을 말한 것은 우리의 신체중에서 가장 보잘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머리털은 하루에도 50개에서 100개 정도 빠지고 다시 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요즘 머리카락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서 머리카락을 심어주는 산업이 있어서 머리털 한 가닥도 아주 귀하게 보이지만, 예수님께서 머리털을 언급하신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다 돌보고 계시니, 그것들 보다 귀한 제자들은 어련히 보살피지 않으시겠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이 세상에서 고난과 죽음을 면케해 주신다는 말씀으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박해받을 것과 죽임을 당할 수 있을 가능성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고난과 죽음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좋으신 분들이 병으로 인해 고생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선교사님들 중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돌보시고 지켜주셔서 영생의 이르도록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무서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파송한 제자들 중 대부분이 순교를 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고난 중에도 악한 영의 권세를 이길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고, 그들의 영혼이 영원한 천국에 이르도록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환경가운데 있던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영생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시면서, 사람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며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하겠지만, 만약 나를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나도 부인하시겠다." 고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 세상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세주요, 살아계신 하나님되심을 시인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시인은 우리가 두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 때에 더 진실되어지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리와 같은 죽음의 두려움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만이 내 몸과 영혼을 죽이고 살리시는 가장 두려운 분임을 고백하며, 세상적인 두려움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이 천년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와 같이,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대적하고, 미혹하는 존재가 세상에 가득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시인하며 말씀 대로 살아가는 증인으로 부름받았음을 늘 기억하시며,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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