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4pG0dZAVzdE
지난 주일에, 이 땅에 처음으로 죄가 들어온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금하신 한가지 명령을 범했습니다. 그 죄로 인해서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나, 하나님과 떨어져 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아십니까?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 평안과 풍족함을 누렸는데, 에덴에서 쫓겨나니 참으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수고하며 땅을 일궈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위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아마 아담과 하와는 무척이나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 때 뱀의 말에 속지만 않았다면..."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그들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고통속으로 몰아 넣은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 있는 불안과 공포, 아픔과 슬픔의 일들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일어난 죄의 댓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은, 죄로인해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좁혀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할때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안식과 풍요가 주안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바로 이 시간에 누려질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있던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두 아들을 낳습니다. 가인과 아벨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하나님은 그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지 않고, 하나님과 연결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에 예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사람들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내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관계하고 있다.”
우리가 예배하는 것은 커다란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로 가는 통로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죄인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배드리지 않는 삶은, 하나님께로부터 스스로 단절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관계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예배하고, 우상을 예배하고, 재물을 예배하고, 자기 자신을 예배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자리에서 가인이 끔찍한 죄를 저지릅니다. 바로 형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부모가 죄를 지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녀들이라도 잘 살아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죽고, 가인은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세상을 유리하는 벌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늘 죄지을 위험속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죄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로마서 5:20절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죄를 용허하실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은혜가 있는 곳에 죄의 유혹도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수고해서 얻은 수확물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기에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기에,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둘 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제물을 준비하고, 시간과 노력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인의 제사는 거부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분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데, 어떤 분의 예배는 거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여기서 '받다'는 히브리어로 ‘샤아’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보신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보지도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거들떠 보지않으셨습니다.
그대신 하나님은 가인에게 더 이상 죄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를 하십니다. 왜냐하면 가인이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받아진 것을 보고,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왜 네가 그렇게 분을 내느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선을 행하지 않았던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인에게 경고하십니다. 지금 죄가 문에 엎드려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죄가 지금 가인이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해서 기회를 살피고 있음을 일러 주십니다.
여러분, 사자가 먹잇감을 공격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사자가 어떻게 공격합니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발톱을 감추고 있습니다. 먹잇감이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초식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경계를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별일이 없으니 마음을 놓습니다. 사자는 그때까지 조용히 먹잇감을 지켜보면서 웅크리고 달려들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순식간에 먹잇감에 달려들어 먹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죄는 늘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웅크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사람을 다스리기를 원합니다. 틈만 나면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의 자리인 제사 자리에서도 어김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자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은혜의 자리임과 동시에, 죄의 유혹이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를 인지하고, 하나님께서 더욱 집중하고 가까이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가인이 죄에 지배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죄가 웅크리고 있음도 알려주셨고, 죄를 다스리라고 명령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죄를 다스리는데 실패하고, 도리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가인은 그의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동생 아벨이 들판에 있을 때에 돌로 쳐서 죽입니다. 가인은 죄가 원하는대로 죄를 지었고, 결국 죄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인처럼 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죄를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1) 먼저, 죄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던 것은, 그가 가진 믿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4 KRV,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가지는 믿음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자이시다.”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 믿음은 제사 때뿐만 아니라, 그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일상속에서 이 믿음을 근거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니, 아벨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았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곧 아벨의 삶 자체가 예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곧 아벨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가인은 실패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여겨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았기에 하나님 보시기에는 선하지 않았습니다. 이로인해 하나님은 가인이 드린 제사뿐만 아니라 그를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로마서 12:1 (KRV),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는 우리 자신이 산 제물이 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믿고, 우리는 제단위의 제물처럼 죽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를 죄짓게 만들고자 하는 죄를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죄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왜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지를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7절에 영어 번역을 보면, “네가 만약 선한 일을 했다면, 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인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아벨의 문제가 아니라, 가인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을 거부한 하나님께 따지지는 못하고, 아무 죄가 없는 아벨에게 분을 냅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은 것이 아벨 때문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집니다.
죄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사회를 원망하며 분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죄에 죄를 더하는 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에 대해서 민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가 있을 때에 이를 거두고,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분내는 것이 정당한가?” “나의 무지함이나 나의 죄됨으로 인한 나의 문제가 아닌가?” 내가 하나님 대신 내 삶의 주인행세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깨닫고,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이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죄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죄를 숨길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가인은 자신은 자신은 모른다며 시치미를 땝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동생을 살해하고, 도리어 큰 소리를 칩니다. 참으로 뻔뻔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아주 무능하고 어리석은 분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다고 여기는 가인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는 죄에게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가다가 교통경찰관에게 걸렸습니다. “과속입니다” 운전하던 이는 얼떨결에 “죄송합니다. 술 한 잔을 했더니 정신이 없어서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교통경찰관은 “음주운전을 추가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옆에 있던 아내가 자기도 모르게 “무면허라 맨 정신에는 겁이 나서 운전을 못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경찰관은 “무면허 운전을 추가합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뒤에 앉아 있던 장모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그것 봐라. 자동차를 훔쳐 타더니 오래 못 가지 않니” 이 말을 들은 경찰관이 말했습니다. “자동차를 훔친 죄로 체포합니다” 그래서 그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붙잡혀갔다고 합니다.
죄를 저지르면 사람앞에서도 당황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죄를 숨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저지른 죄를 숨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동생죽이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사람이 없는 들판으로 가서 돌로쳐서 죽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모르십니까? 모든 곳에 계시는 하나님 눈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인식하며 살 때에, 우리는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죄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죄는 사람들위에 왕노릇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성도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을 때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왕되심을 굳건하게 믿고, 그분만에 순종한다면, 죄는 우리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야보고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가 마귀를 대적해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던지 상관없이,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죄는 우리를 다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의 다스림을 받는 이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나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귀에게 “어서 와서 나를 다스려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곧 하나님의 다스림가운데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죄를 다스리라’는 말씀은 가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죄를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죄도 우리를 다스리기 위해 기회를 옅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34절에,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고 하셨습니다. 죄는 우리를 종으로 만들고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이 예배시간에도 어딘가에서 웅크리고서 있다가 틈만 생기면 우리에게 덤벼들고자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죄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왕되심도 모르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부여 하신 생명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 행세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다스리고, 다른 나라를 점령하려고 힘씁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이렇게 악이 관영한 세대에, 우리는 더 간절히 죄를 다스리기 원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 교회에 죄가 역사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