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7/2024 - 내게 배우고 쉼을 얻으라 [마태복음 11:28-30]

by Rejoice posted Jun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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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o7ARek40dM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내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에 누군가가 이러한 말을 해 준다면 정말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입니다

전에 저에게 이와 유사한 말씀을 해 주신 분이 있으셨습니다. 전에 한적한 곳에 집을 새로 지으신 성도님께서 초대해 주셔서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성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쉬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그리고 설교 준비도 이곳에 오셔서 하세요.” 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그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고, 그렇게 배려해주심에 감사하더라구요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 같으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팔자가 편하게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삶속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 져 줄수 없는 여러가지 삶의 문제와 고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짐을 지고 수고하고 계십니까? 어떤 분은 가족이 짐이 되기도 하고, 하는 일들이 짐이 되기도 합니다. 건강이나 재물에 대한 염려가 짐이 되어 살아가시는 분도 계십니다

전도서 2 22-23절을 보면,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들이 각자의 짐을 지고 수고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짐진자들을 보시고, 쉬게 해 주시겠다고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초대를 받고 이 자리에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경배를 받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에게 쉼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짊어지고 갈 짐들이 많은 이 때에,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서 주시는 쉼을 얻으면서 살아갈 수있을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께서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쉼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삶에 지칠 때에 나름대로 쉬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로해 줄만한 사람을 찾아가 만나는 분도 계십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아무 사람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지내면서 쉬기도 하십니다. 어떤 분은 쉬고 싶으면 운동하러 나가시는 분들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술이나 마약 같은 것을 의지하며 무거운 짐을 좀 벗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쉬게 해 줄테니 다 오라고 하시는 것은 단순히 육신과 정신의 휴식을 위한 초청과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휴양지를 만들고, 그 안에 상담가를 두고 우리를 초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자신에게로 오라고 하시면서,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마음으로 해석된 원어는프쉬케입니다. 영혼,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로 오면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쉼이 없는 이유는 영혼에 쉼이 없기 떄문입니다. 영혼에 쉼이 없으니 육신이 쉰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분주하고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편안하다고 할지라도, 영혼이 편안하지 않으니 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쉼이 없고,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이유는, 단순히 해야 할 일들이 많고 힘들기 때문인 것만은 아닙니다. 영혼에 쉼이 없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원인이 있습니다

로마서 1:28절에,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의마음누스곧 마음,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고하지 않고 살아가면, 죄가 내 마음을 지배합니다. 죄는 내 욕망을 자극해서, 내 욕심을 채우고자 욕망의 무거운 짐을 지고자 하루종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불쌍한 것은 죄가 지우는 짐들을 지고 살 때에, 세상적으로는 성공하며 살아가는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끝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마음의 쉼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쉼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몸은 왔는데, 그 마음은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지 못한다면 우리는 마음의 쉼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도리어 예배드리는 것 조차도 짐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생각하세요. 세상적인 염려와 욕망을 묵상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생각하시며, 기도하며 찬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세요. 우리 영혼에 쉼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그렇다면 마음 soul의 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에게는 많은 성품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마음의 쉼과 관련해서 온유와 겸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을 배울 때에 우리이 마음을 쉼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죄인된 사람들을 정죄하며 거칠게 대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불쌍한 마음으로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온유한 마음의 주님을 만날 때에, 우리는 쉼을 얻고, 또한 나도 다른 이들에게 쉼을 주는 사람이 되기 마련입니다

영국의 종교개혁 당시에 토마스 무어Thomas More 14771535,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무고하게 잡혀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왕과 종교적인 입장이 달랐거든요. 그런데 그는 자기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있는 재판관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재판관이시여, 내가 당신을 친구라고 부르도록 허락해 주십시요. 친구여, 나는 당신과 나의 관계가 바울과 스데반의 관계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스데반을 죽였지만, 지금쯤 하늘 나라에서 이 두 사람은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나에게 죽음을 선고하지만 우리는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구원을 함께 누리는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재판관은 이 토마스 무어 경의 감격스런 선언을 듣고서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사형을 언도했는데 그대가 나를 선대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토마스 무어경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대답하였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먼저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을 배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고, 쉼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에는 온유하지 못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적대시하고, 공격하려고 하는 마음에 쉼이 있겠습니까? 그 마음에 불만과 긴장이 있으니 쉼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하심을 알지 못하기에 자기도 고생스럽고, 다른 이들을 온유하게 대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게 쉼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만 온유했던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온유하셨습니다. 온유하다는 뜻은 단순히 성격이 따뜻하고 친절한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온유라는 말은, 내 자신을 꺽어서 순종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치 야생마가 처음에는 사납고 저항적이지만, 나중에 잘 길들여져서 온순한 상태가 됩니다. 이를 온유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이 길들여져서 온유해지면, 작은 아이가 고삐를 잡고 걸어도 순순히 복종하며 따라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온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온유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이 정돈 되고 쉼을 얻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에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사도행전 26:14). 하나님께서 사울을 보실 때에 그가 죄된 고집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가시채를 향해 뒷발질하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가시채는 짐승을 몰기 위해 만든 끝이 뾰족한 막대기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싫다고 뒷발로 계속 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괴로울까요? 사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니 그에게는 온유함이 없었고, 그의 삶은 수고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그는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 순종하며 행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온유함으로 대했던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때에 우리에게는 마음에 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쉼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고, 노아의 홍수에서 살아난 노아의 후손들은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쌓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갈 때에 제자들끼리 서로 논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길에서 무엇을 위해 토론했냐고 묻자, 그들이 대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서로 누가 크냐하고 쟁론했기 떄문입니다

오늘 읽으신 말씀 전에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마을을 향하여 책망하십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서로 높아지고, 강해지려고 하다가 경쟁을 합니다. 자신이 높아지기 위해 상대방을 끌어 내리고자 합니다. 상대방보다 더 좋은 성과를 만들고자 시기하며 높아지기 위해 쉬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겸손의 마음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높아지고자 다른 이들과 경쟁을 하거나 다른 이들을 끌어 내리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마음을 낮은 곳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대단한 자와 동일시 하지 않으시고, 작은 자와 동일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높이 오르고자 치열하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분은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스스로 낮아지고가 애쓰셨습니다

18세기 영국의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두 거장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인데 두 사람은 함께 감리교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목회의 방법이 같았고 구령의 열정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신학에 대한 이해는 달랐습니다. 하루는 이 두 사람의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던 한 사람이 휫필드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웨슬리 목사님과 말씀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가 다른데, 목사님께서 천국에 가시면 웨슬리 목사님을 만나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휫필드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서 웨슬리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을 것이고,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습성은 사람들로 높아지라고 유혹하고, 다른 이들과 경쟁하며 적대시하게 만듭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게 해서 마음의 쉼을 빼앗아 버립니다. 다른 이들보다 높아지려 하고 경쟁하는 마음에는 평안과 쉼이 없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고자 경쟁하며 마음에 쉼이 없는 분들이 있으십니까? 자신을 높이려고 애쓰지 마시고 예수님 처럼 마음을 낮은 곳에 두고자 애쓰시기 바랍니다. 겸손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히 사람들을 섬길 때에 주님꼐서 주시는 쉼을 얻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배울 때에 마음, 영혼에 쉼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에, 누구의 멍에를 맵니까? 예수님의 멍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무거운 죄의 짐을 벗겨 주시지만, 대신 예수님의 멍에를 매라고 하십니다

이왕 쉼을 주실 것이면 아예 멍에까지 없애 주시면 될 텐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짐과 예수님의 멍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죄의 짐은 지면 질수록 사망에 이르게 되지만, 예수님의 멍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멍에와 같지만, 이를 지고갈 때에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자 할 때에 그것이 멍에가 됩니다. 그리고 멍에는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지신 멍에를 지고 갈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멍에는 더 이상 짐이 아니라, 우리의 복이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는 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지는 것이라면, 그 고난으로 인해서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 멍에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할 것이고, 그 멍에를 지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과 상급으로 바뀔 것입니다. 늘 주님의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배우시고, 마음에 쉼을 얻으며, 주님께서 주신 멍에를 기쁘게 감당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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