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D71Ypho0R4o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권위있게 가르치셨고,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좋아하며 따랐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며,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적해서 논쟁을 하였고, 예수님은 그 논쟁에서 지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이 사두개인들과 논쟁을 했는데 그들을 대답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러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에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해서, 예수님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자신들이 우세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 율법사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율법사는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고, 율법에는 전문가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어려운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구약에는 약 613개의 율법이 있다고 하는데, 이 율법을 다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그 많은 계명 중에서 큰 계명을 고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질문을 받으신 후에, 전혀 당황하지 않으시고 대답을 하십니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친절하게도 두번째 중요한 계명도 말씀해 주십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수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그 모든 가르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보통 세상의 법의 근본정신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자유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받은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가지 행해야 할 법들이 많지만, 결국 그 모든 법들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바른 사랑의 관계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셨고, 사랑이 우리의 삶에 가장 우선하는 가치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에도 순위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주제입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은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짐승을 사랑하기도 하고, 식물을 사랑하기도 합니다. 돈을 사랑하기도 하고, 취미를 사랑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도 합니다. 술도 사랑하고, 마약도 사랑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을 사람들은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가장 우선하여, 크게 사랑해야 할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연인이 있었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자기는 이 세상에서 누구를 가장 사랑해?” 여자는 당연히 자기를 가장 사랑한다는 말을 기대하며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말합니다. “나는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 하나님이예요.” 그 말을 들은 여자는 서운한 마음이 있었지만, 이런 사람이면 나를 진실되게 사랑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들도 사랑하지만, 하나님과의 사랑이 바르게 세워질 때에 다른 것들과도 바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다른 사랑과 차별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 해야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카르디아 kardia’ 라는 단어를 쓰시는데, 이는 사람의 생명과 영혼, 모든 힘의 근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 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는 존재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고,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주, 주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의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을 꼽으라면 목숨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6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목숨까지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뜻’을 말할 때에 ‘디아노이아 dianoia’ 라는 단어를 쓰는데, 생각, 이해력, 의지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 힘을 다해서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뉴스에서 한 핏자 배달하는 사람이 핏자를 주문한 사람에게 배달하기 전에 이상한 행동을 보입니다. 배달해야 할 핏자 상자를 열더니 여덟조각에서 한 조각을 떼어서 허겁지겁 먹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조각을 적당하게 배열해서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어 배달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먹다 남은 핏자 조각과 같은 우리의 마음의ㅡ일부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다하다, 홀로스 holos,'는 ‘모든, 전체’ 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목숨과 뜻의 일부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하실 수 있으십니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2.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인 사랑을 요구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서 죄인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확증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이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애정결핍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애정결핍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충분한 애정과 관심, 정서적 지지가 부족할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애정결핍이 있으면, 주변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불안함과 우울함 속에서 생활합니다.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고 여기며, 자존감을 잃은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애정결핍으로 상처받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그 상처와 아픔을 고침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셨음을 깨달았기 떄문입니다. 나아가서는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만큼 존귀한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조롱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여기시는지를 기억하시며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랑받을 만한 조건이 있으셔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의롭거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인한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계명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의 마땅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까?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뒤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에 대해서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21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줌으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증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했던 유대왕국의 왕이 있는데 요시야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보시기에 다윗의 길로 행한 선한 왕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3:25절에 요시야왕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성경은 요시야 왕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말을 대신해서,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시야왕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행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여러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하니까 억지로 지키는 분도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바른 동기는 바로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말씀을 지키고,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4.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의 뜻을 알지 못하면 도리어 하나님과 대적하는 일을 하기도 하는 것이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그는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여 한 말로 인해 예수님께 책망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하셨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도 그 말씀을 들으시고 기뻐하셨고,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 후에 삼일 후에 다시 사실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예수님께 항변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다고 하니까 이에 대해서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강력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을 크게 책망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태복음 16:23).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에 기초하지 못했기에, 도리어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책망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하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감정적인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그 말씀대로 행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계명의 가장 크고 첫째의 계명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도 하나님께서 사랑이 결핍하여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인된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첫번째로 사랑할 때에, 다른 것들과도 바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문제는 사랑이 없어서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고, 엉뚱한 방법으로 사랑함으로 혼돈속에서 멸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확증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지킬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사랑할 수 있고, 또한 다른 피조물과도 바른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지난 한 주간 하나님을 사랑해서 행한 일들은 무엇이 있으십니까? 바라기는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확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은혜를 갚는 우리의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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