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2/2024 -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싸우라 [요한계시록 2:12-17]
https://youtu.be/f4zKR3ycw7I
우리는 그 동안 예수님께서 소아시아에 있는 7교회에 보내시는 편지를 보고 있습니다. 지난 이 주일동안에는 에베소교회와 서마나교회에 보내신 편지를 보았고, 오늘은 세번째로 버가모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겠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대적은 사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교회와 대적해서 싸운다고 생각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버가모 교회를 향해서 그들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속히 가서 예수님의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와 싸우실 수도 있다는 말씀은 정말로 충격적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먼저 예수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에 편지를 하시면서,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안다.” 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형편을 다 아십니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주로 관심하고 알고자 하는 교회는 크고, 유명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교회를 관심하시며 그 사정들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가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권좌는 임금이 앉는 의자를 말합니다. 이 권좌는 왕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크고 멋지게 만들어졌습니다. 왕은 그 의자에 앉아서 나라를 통치합니다. 그런데 버가모 지역에는 사탄의 권좌가 있으니, 그 지역은 사탄의 통치가 강하게 나타난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버가모에는 우상들이 많았습니다. 신들 중에 최고라고 여겨지는 제우스 신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본 서머나 사람들은 황제숭배에 으뜸이었는데, 버가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군다나 버가모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특별한 황제의 하사품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버가모 통치자에게 ‘글라비’라는 자신의 검을 하사했습니다. 그만큼 버가모 사람들의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이 컸던 것입니다. 황제의 검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버가모 지역에는 언제든지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사형 집행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버가모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형 집행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도시였다고 합니다.
버가모에서는 공권력은 아주 강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버가모교회에게 위협과 두려움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영향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버가모교회의 이야기는 곧 우리 교회, 이 땅의 교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탄이 권좌를 차지한 때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버가모 교회를 보면서 어떤 신앙의 유익을 얻을 수 있을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먼저, 교회는 늘 사탄의 공격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때로 사탄의 공격은 폭력과 박해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버가모교회에게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그 교회에 교인이었던 안디바를 말씀하십니다. 그는 로마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기까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디바는 어떻게 그의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습니까? 그에게 남다른 의지가 있었고, 능력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안디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기까지 충성된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안비다는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았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이 구원의 이름이고, 능력의 이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 당시에 가장 유력한 이름은 로마 황제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황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권세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안디바는 로마황제를 붙잡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았습니다. 왜냐하면 안디바는 참된 구원이 황제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디바는 자신이 붙잡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끝까지 증거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순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할 만한 황제와 같은 권세자의 이름을 붙잡고 삽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을 붙잡고 삽니다. 자신의 능력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여기고 자신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예수님이 구원의 이름임을 믿고, 그 이름을 굳게 잡고 그의 이름을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탄은 안디바를 무력으로 공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안디바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이긴 것입니까? 아닙니다. 안디바가 이긴 것입니다.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인 성도가 그 믿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잡고 있을 때에,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심지어 마귀로 인해 죽임을 당하더라도 결국 믿음의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에 굳게 잡아야 할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마귀를 이기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죄로 인한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탄의 강력한 시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욥에게 있던 사탄의 시험처럼, 불행한 일들이 가정에 닥치기도 하고, 때로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를 직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예배와 기도와 말씀으로 나아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믿음과 능력을 더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2. 그런데 사탄은 두려운 모습으로 교회를 공격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죄를 짓도록 미혹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안디바의 믿음에 대해서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버가모 교인들에 대해서 책망을 하십니다.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민수기에 발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가까이 갈 때에, 모압 땅을 지나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모압의 왕 발락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용한 주술가, 선지자라고 일컬어지는 발람을 고용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막으셨습니다. 발락왕이 제단을 쌓고, 발람에게 그 제단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저주를 하지 못하게 하시고, 도리어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3번씩이나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 발락왕이 화가 나서 더 이상 발람이 저주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발람도 사실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었습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만 있다면 발람왕이 그 대가로 재물과 명예를 준다고 했으니,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아쉬웠겠습니까?
그런데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발락왕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할 방법을 알려 줍니다.
“왕이여,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도 그들에게 타격을 입힐 방도가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도록 해서 스스로 해함을 받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발람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음하고, 우상에게 절하게 만들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발람의 말을 듣고 발락왕이 우상의 신전에서 일하는 모압의 창기들을 동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스라엘 진영으로 보내서 남자들을 유혹합니다. 그랬더니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왔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이방여인과 행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의 여인들이 우상을 섬길 때에 함께 가서 우상에게 절을 하고, 음식도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그냥 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날에 염병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판하셨는데 죽은 사람이 이만 사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일로 영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발람과 같은 가르침이 니골라 당의 교훈입니다. 그 당시 영지주의 사상이 세상에 유행했었는데 이것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영지주의는 영과 육을 구분해서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을 때에 영은 구원을 받지만 육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한 가르침이 교회안에 들어오니까 사람들이 자신들의 육신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은 육신은 악하기 때문에 육신에 고통을 주어야 한다는 부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금욕주의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차피 육신은 악하고 썩어질 존재이니, 육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즐기며 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쾌락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느 것을 더욱 좋아하겠습니까? 쾌락주의입니다. 그래서 버가모 교인중에 이러한 사상에 빠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행음을 하고, 우상에게 절하는 일들도 합니다. 세상 밖에서 일어나는 죄악된 일들이 교회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심각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우상을 섬기고 행음을 하고 있으니, 교회안에서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교회인데, 버가모 교회는 세상으로 인해서 그 믿음이 변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3.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을 따라가는 세속화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상에게 절하는 일과 같은 일들이 만연합니다. 이 땅에 우상을 섬기는 종교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신과 같이 섬기고, 사람, 과학 등을 우상화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교회안에 들어와 돈이 우상이 되었고, 육신의 배가 우상이 되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음하는 일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성적인 도구로 여깁니다. 성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성별도 자신들이 정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쾌락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는 일들을 세상 사람들은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안에서도,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익과 행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교회를 공격할 때에 우는 사자와 같은 모습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자가 얼마나 무섭습니다. 무서운 모습을 하고, 교회를 박해합니다. 안디바를 죽일 때에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는 사자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공격하기도 합니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와 같이 위장하여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하는 것이니,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즐기면서 살아가도록 사탄은 유혹합니다.
그런데 교회안에 세속적인 교훈이 들어오고, 문화가 형성되면 큰 일 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께서 니골라당의 교훈에 빠진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할 때에,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선 검을 가지고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을 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한 죄가운데서 행음하고 우상을 섬기는 교회와 싸우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사탄과 싸울 때에 예수님께서 날선 검으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죄악된 것들을 교회안으로 끌고 들어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적하십니다. 예수님과 싸우면 누가 우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대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악된 일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회개가 살길입니다. 예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입의 검은, 로마황제가 버가모 지역에 준 검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죄가운데 있는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검을 가지고 회개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두려움보다는 그분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버가모교회가 죄로 인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그 죄를 알려주시고, 돌이키도록 하시고자 서둘러 그들의 회개를 요청하십니다.
세속화는 오늘날에도 교회에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나 나나 별로 차이가 없다고 여겨지는 분들이 계십니까? 세상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시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믿음으로 살기위해 고생하는 것보다, 세상적인 즐거움을 택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것들을 회개하라고하십니다. 우리가 죄악을 용납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할 때에 예수님의 검은 우리의 죄의 더러운 부분을 도려내시고 치료하시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멸하시는 검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는 니골라당과 같이 육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가르침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육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니골라 당의 교훈을 받은 자처럼, 세상의 유익과 행음을 위해서 살아갔다면 이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예수님에게 대적하는 어리석음을 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권좌로 나아갑니다. 자신들의 육신의 욕망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사탄의 권좌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보좌로 나아가 주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인 우리가 세상의 음행과 우상숭배, 미혹의 영과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적해서 싸우고자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탄의 계교를 물리치고자 싸우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싸우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에 물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고 살아가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 가운데 늘 영적 승리를 이루는 교회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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