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f4Cq4Q63L0
피천득 작가의 수필집인 '인연 relationship'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인연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인연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좋게 만났다가 좋지 않게 헤어지는 야곱과 그의 외삼촌 라반을 봅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 간 것은 형 에서를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삭이 형에게 빌어 주려던 복을, 자신이 형인척 변장을 하고 들어가,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서 복을 가로채서 받습니다. 이 일로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고 생각해서, 야곱을 어머니의 오빠가 있는 하란땅으로 피난을 보냅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하란 땅에 있는 외삼촌과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외삼촌에가 가서 그의 딸들과 결혼도 했습니다. 자녀도 낳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외삼촌을 위해서 일할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외삼촌도 부유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은 야곱을 정당하게 대우해주지 않았습니다. 야곱으로부터 유익을 취하려고 부당하게 대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의 조상의 땅,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야곱은 라반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지난 20년간의 삶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떠날 때에 외삼촌 라반에게 알리지를 않고 몰래 떠납니다. 야곱의 아내들도,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떠나는 것을 동의합니다. 그만큼 야곱과 라반의 사이가 불편한 관계가 된 것입니다.
신희상이라는 시인이 쓴 ‘인연을 살릴 줄 알아야 한다.’라는 시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서로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만남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과의 만남을 주셨을 때에는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좋은 관계로 이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라반의 만남은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야곱이 가장 힘들 때에 라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라반에게도 소중합니다. 야곱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복이 자신에게 흘러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둘은 그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도망가듯 하란땅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지 삼일이 되었을 때에, 외삼촌 라반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쫓아갑니다. 그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야곱의 일행이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판입니다.
그런데 야곱을 만나기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 하십니다. 라반이 그토록 열심히 야곱을 따라갔던 것은, 야곱의 잘못을 따지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를 저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1.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은 다른 이들을 바르게 판단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일은 기독교인에게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나에게 선악을 제대로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자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통 우리가 어떤 것을 판단할 때에 내 입장에서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 중년 부인이 성당에 고해성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신부님,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울을 보면서 제가 너무 너무 아름답고 예쁘다고 항상 뽐내고 다녔습니다. 이런 저의 교만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고백을 들은 신부님이 얼마나 예쁘길래 이런 회개를 하나 궁금해서 칸막이 사이로 그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자매님, 안심하십시오. 그것은 죄가 아니라 착각입니다“
어떤 일을 판단할 때에, 내 입장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도 나 자신은 선하게 생각하고, 상대방은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성향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다윗과 사울왕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 여러분은 자신을 누구에 대입하시겠습니까? 대부분 다윗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울과 같은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자신은 선하고 약한 존재, 핍박받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야곱과 라반의 경우를 볼 때에, 누구의 편을 들 수 있을까요?
외삼촌인 라반과 같은 경우에 젊은 조카가 한 행위가 괴씸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집에서 도망 나온 조카를 20년간 먹여 주고 입혀주고, 그리고 결혼까지 시켜주고, 재산까지 많게 해 주었는데 아무 인사도 없이 나온 것입니다. 더군다나 라헬과 레아, 그리고 그 자손들은 야곱의 아내이기 전에, 자신들의 딸이고 자손들인데 아무런 인사없이 떠난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라반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야곱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볼 때에 외삼촌 라반이 참으로 악했습니다. 자신은 라헬과 결혼하려고 했는데, 그 당시의 풍습은 알려주지도 않고 두 딸을 자신에게 시집보내고 그 댓가로 14년간을 일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품삯도 10번이나 바꿨습니다. 자신이 오기 전에는 외삼촌 라반의 소유물이 많지 않았는데, 자신이 오고 외삼촌의 소유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외삼촌은 자신한테 정당한 몫을 주지도 않고 착취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볼때 삼촌은 나쁜 고용주와도 같았습니다.
이러한 둘의 상반된 입장을 보면서, 여러분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하다고 말하겠습니까? 어떤 분은 라반의 편일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야곱의 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선하고 악한지를 다수결로 정할 수 있는 문제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선악의 기준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하지만 에덴동산에 사는 아담과 하와에게 그 선악과일을 따먹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그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이후에 그들은 자신들이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은 선하고 다른 이들은 악하다고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담은 하나님까지 판단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무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12) 아담은 자신이 선악과를 먹은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원인이 있다고 잘못을 하나님께 씌우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선하게 여기곤 하지만, 실제로 선과 악을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선과 악의 절대적인 판단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17절에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선과 악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사람에게는 선과 악을 논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누가복음 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을 받을 존재이지, 스스로 다른 이들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여기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라반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우리에게 선과 악의 절대적인 판단력이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연들이 더욱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선과 악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무엇을 원하셨을까요?
라반이 7일동안 야곱을 쫓아온 것은 단순히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라반이 야곱을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행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라반은 야곱을 해하려고 쫓아온 것입니다. 야곱이 행한 악함을 정죄할뿐만 아니라,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자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는 야곱을 해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신 것을 경험하였기에, 야곱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라반은 야곱이 한 일들을 열거하면서 그의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다고 책망을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야곱도 라반에게 왜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이유를 말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자신을 변호하며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질 때에 서로 언약을 맺습니다. 야곱이 돌을 가지고 와서 기둥을 세우고, 그 형제들이 돌을 모아서 돌무더기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의 돌로 삼습니다.
라반은 야곱과 약조를 세우면서,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라고 말합니다. 라반은 야곱과 자신 사이에 하나님이 증거자로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반은 야곱에게 몇가지 부탁을 합니다. "자신의 딸들을 박해하지 말고, 자신의 딸 이외에 다른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라반이 야곱과 함께 있지 못하므로, 이를 확인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둘 사이에 증인이 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52절에,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고, 너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라반이 선악을 말함으로, 서로 논쟁하고 불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선악의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둘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서로의 관계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관계의 증거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있는지를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이들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을 막으신 대신에, 우리가 상대방을 용납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선과 악을 따지다가 서로의 관계가 어그러지고 정죄와 판단의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며 허물을 덮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모범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이와 같이 서로의 약함과 잘못을 사랑으로 덮어주고, 주님께서 주신 인연들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습니다. 가정, 교회,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만남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관계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 원하시는 좋은 관계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향하여 그의 잘못을 따지며 해하려고 가는 라반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악간에 상대방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는 서로의 관계를 해하는 대표적인 원인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허물을 덮어주셨던 것과 같이, 우리가 상대방을 품으며, 하나님께 주신 관계를 선하게 이루어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누군가에게 선악을 말하고 싶으신 일이 있으십니까? 선악의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주고, 서로 사랑함으로 허물을 덮어 줌으로, 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주신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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