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2024 - 살았다고 하는데 죽은 자다 [요한계시록 3:1-6]
https://youtu.be/TP0ZS3sCbNs
오늘은 소아시아 지역 7교회에 보내진 편지중, 다섯번째, 사데교회에 보내진 편지를 보겠습니다. 사데교회는 현재 터키에 위치한 루디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그곳의 특징은 아주 잘사는 도시였습니다. 사데는 상업적으로 번창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금광이 있어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사데는 금화를 첫번째로 만든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사데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데교회는 우리가 그 동안 보았던 네 교회와는 좀 다른 환경속에 세워졌습니다. 교회에 대한 박해도 심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궁핍합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행위를 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주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행위를 안다고 하셨을 때에 그것은 외적인 행동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2:23절에 두아디라 교회에게 말씀하시면서,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뜻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행동의 동기가 무엇이지, 그 내면까지도 다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행했는지, 아닌지도 다 아십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뜻과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이웃들을 사랑함으로 행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대로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산 살람 가운데 죽어있다는 것입니다.
'사데' 라는 이름의 뜻은 “남은 자, 새로 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데’라는 뜻은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 와도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에클레시아, “밖으로 부르심 받은 받은 사람들” 라는 뜻인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구원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데교회도 예수님을 믿어 구원의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데교회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명목상으로 사데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은 영적 죽음의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속했다고 해서 모두 영적으로 살아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죽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구원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건강한지, 아니면 죽어가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가 죽었다는 뜻이 무엇이고, 어떻게 죽은 자 가운데서 회복될 수 있는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먼저 교회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은 사데교회에게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니 죽은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죽고 산다고 말할 때에는 육신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죽고 사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로마서 5:17절에는, 이 세상이 왜 죽었는지, 그리고 누구를 통해서 살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내가 누구의 왕노릇을 받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혼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범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사망이 왕노릇하는 삶을 살게 되고, 그들의 영혼은 죄로 인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그 영혼이 죄로부터 구원받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사데교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었으니 살았다고 믿었지만,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왕이 되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사망 직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데교인들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훌륭한 시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는 온전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죽은 자들과 같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정작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았고, 예수님과의 관계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데교회는 외적으로 교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배도 드리고, 선을 베풀고, 사역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기초하지도 않고, 예수님과 교제가 없는, 종교적인 행위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호되게 책망하셨던 부류가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볼 때, 경건하고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었지만, 실제의 그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온전하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 보기에 경건해 보이려고 행동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이 하나님께 온전치 못함을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데교회가 사람 보기에는 대단한 존재처럼 보였지만,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습속에서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믿음의 근거한 행위가 되기를 원합니다.
야고보서 2: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우리의 믿음과 행함은 별개가 아닙니다.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 그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요,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라'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늘 굳건해 져서,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살아있는 교회와 성도로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은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데교회에게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일깨라, 그리고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일깨라는 것은 “일어나라. 정신 차리라”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죽어가는 상태에서 정신차리고 일어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추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잠자려고 하면 그 사람을 자지 못하도록 어깨를 흔들고, 뺨을 때리며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영적인 죽음에 상태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빨리 깨어 정신차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정신차리고,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고 하십니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연약한 믿음, 하나님과의 멀어진 관계를 굳건하게 다시 세우라는 것입니다. 사데교회는 경제적 풍요가운데 외형적으로는 교회건물도 좋고, 풍요하고, 걱정거리가 없어 보였지만, 그 믿음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보았던, 두아디라교회가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것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 섬김과 인내의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데교회는 시간이 갈수도록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의 풍요가 영적인 관심이나 갈망을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금전적인 풍요는 있었지만, 점차 믿음의 능력이 사라져간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갑니다. 그런데 성전 문을 지날 때에 선척적으로 못걷는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가 성전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보고 구걸합니다. 그들이 성전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자신을 구제할 만한 선한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 사람에게 말합니다. “우리를 보라” 합니다. 그러니 그 구걸하던 사람이 얼마나 기대를 하고, 베드로와 요한을 봤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 구걸하던 사람이 얼마나 실망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뒤에 베드로가 하는 말이 대단합니다.“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은 교회에는 구원의 이름, 생명의 이름인 예수의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고 기도하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데교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적인 풍요와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았지만, 정작, 교회에 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잃어 버렸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추구하는 것들이 사데교회의 모습과 같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교회에 많은 교인들이 오고, 재정적으로 풍요해지는 것이 부흥이라고 여기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데교회를 죽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거예요. 교회의 부흥은 영적 부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강건해 지고, 성령님의 운행하심이 있는 교회가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깨어서 예수를 믿는 믿음을 붙잡고 살아갈 때에, 우리의 영혼이 살며, 영적인 부흥을 경험케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교회가 살기 위해서 회복해야 할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사데교회에게 회개하라고 하시면서,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도둑이 오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뭔가를 약탈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둑이 사람이 알지 못하는 때에 오는 것처럼, 예수님도 도둑처럼 언제 올지 모르니, 늘 깨어서 좋은 믿음과 행실을 가지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 만나면 인사할 때에 “마라나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라며 인사를 했습니다.
성도는 늘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같이 늘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 앞에 갈지 모릅니다. 주님을 만날 날은 도둑과 같이 옵니다. 언제 예수님이 재림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언제 우리가 주님 앞에 갈지도 모릅니다. 장수하다가 돌아가시기도 하고,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서 전혀 기대하지 못할 때에 죽어 예수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언제 올지 모른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늘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제가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좋은 곳임을 믿습니까? 그리고 천국에 가기를 원하시죠? 그렇다면 당장 천국에 가고 싶으신 분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던지, 내가 가던지 상관없이 예수님 만날 때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집착하며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데교회에 예수님 재림의 소망이 사라지게 되니, 세상에 얽매여서 살다가 그 믿음을 저버리고, 죽어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 재림의 신앙을 늘 간직하시고, 언제일지 모르는, 사랑하는 주님과의 만남을 늘 준비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4. 그리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은 흰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 대해서 책망하신 후에, 사데교회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기에 합당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기에 합당한 사람은, 옷을 더럽히지 않고 그 흰 옷을 깨끗하게 유지한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흰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하면, 머리를 길게 늘어 뜨리고 흰 소복을 입고 있는 처녀귀신과 같은 모습이 상상이 될 텐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흰옷을 입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이겨 구원에 이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고, 그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했습니다. 흰옷입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 심지어 교회에 있는 사람들도 죄로 그 옷이 더럽혀질 때에, 끝까지 믿음으로 영적 순결, 거룩을 지켜낸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이긴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13-14절에 흰 옷입은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흰옷을 입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씻음받아 옷이 희게 된 자들입니다. 또한 세상에 있는 영적 더러움의 도전이 많지만, 끝까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낸 성결한 자들입니다. 사데교회에서 흰옷입은 성도들이, 그 옷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시험과 환난을 경험했겠습니까? 제 아내는 흰색을 좋아하는데, 어느날 흰색 운동화를 사 놓고, 이것이 더러워질까봐 노심초사를 하더라구요. 사데교회에 일부 성도는 보혈의 피로 깨끗해진 영적인 옷이 더러워질 새라 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고, 더러운 것을 피하며,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간 믿음의 증표가 흰옷이었던 것입니다.
흰옷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사탄은 흰옷입은 사람들만 보면, 어떻게 그 옷을 더럽힐까 하고 연구하는 존재입니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의 피로 옷을 씻은 사람들은 그 정결함을 지키는 사람이요, 사탄을 이긴 승리자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흰옷입은 성도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청결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살지만, 정작 속사람은 죄의 더러움 가운데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자 십자가의 보혈을 흘려 주셨습니다. 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셔서 우리의 죄의 더러움이 씼음바 되고,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거니는 동행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당신은 살아있는 교회입니까? 죽은 교회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그 믿음에 근거해서 살아간다고 하면 우리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하며 주님과 날마다 친밀해지는 사람이라면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된 흰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기에 합당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외적인 화려함과 풍요, 성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에서, 영적인 정결에 힘쓰며, 믿음으로 굳건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을 준비하며, 늘 흰옷을 더럽히지 않고, 영적으로 더욱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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