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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는,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 들어가서 430년 동안 살다가 그곳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주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인 야곱은 가나안에 닥친 흉년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애굽으로 들어가 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70여명의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거주를 하게 됩니다

그 동안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에 살면서 잘 지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야곱의 가족들을 선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에 가족들은 자손들이 늘어나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고, 애굽에 있는 동안에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후 출애굽을 하면서 히브리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불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인도하셨고, 그곳에서 기근을 피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커다란 민족이 되도록 자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사는 동안에 가장 무서운 때를 만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왕을 만난 것입니다. 그 왕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아들로서,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 정착하는 일과, 애굽과 야곱의 자손들이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야곱의 아들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닥쳐 올 7년 흉년을 예언하였고, 그 당시 바로 왕에 의해서 총리로 임명 받아, 애굽을 심각한 7년 흉년에서 구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나타난 새로운 애굽의 왕은 요셉을 알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대하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새로운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겪는 고통의 상황과 그 때를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시작부분에서 등장하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인물이 아닌, 이스라엘의 산파, 곧 아이의 출산을 돕는 두 여인이 나옵니다. 성경은 두 여인의 모습을 통해서 그 두려운 시대를 살아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져야 하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두 여인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마주하게될 두려운 존재와 상황을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두 여인의 모습을 통해서, 이 땅에 있는 여러 두려움의 존재와 상황들을 만날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는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그 당시의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셉을 모르는 바로왕의 등장으로 두려움에 빠집니다.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뿐만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노역을 시킵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스라엘 여인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그 즉시로 죽이도록 명령까지 내립니다. 바로왕은 잔인한 왕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하였고, 그러한 바로왕을 이스라엘 민족은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만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무섭게 다루는 것도, 바로왕이 어떤 두려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10절에, 바로왕은 말합니다. “, 두렵건데...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합니다

바로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은, 바로왕도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미 큰 민족이 되었는데, 혹시나 전쟁이 났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사람들을 대적하여 싸우게 되고 도망간다면, 이스라엘이 애굽의 큰 위험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왕의 강력한 권세와 잔인한 모습으로 두려워했지만, 사실 절대 권력을 가진 것 같은 바로왕은 이스라엘의 창대함으로 인해서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아무리 강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그 두려움을 근거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삽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 저희 학년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싸움을 잘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학교의 짱과 같은 아니였습니다. 그 친구는 몸이 아주 크고 근육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는데, 몸도 빠르고 힘도 셌습니다. 친구들은 되도록 그 친구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괜히 기분 나쁘게 했다가 한 대 맞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그 친구가 말하는 것이면 다른 말하지 않고, 기분이 나빠도 그 친구가 하자는 대로 합니다. 그 친구가 있으면 괜히 멀리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어떠한 것들을 결정하고 행할 때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 중에 하나가 두려움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움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될 것에 대한 두려움속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권력가들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습니다. 권력에 순종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속에서 살아갑니다. 물질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그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내가 무시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자존심을 세우며, 다른 이들과 대적하는 일도 있습니다. 내 인기가 떨어질까봐 두려워하고, 손해를 볼까봐 두려워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를 두려워하느냐는 것입니다.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를 두려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엉뚱한 판단을 하고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오늘 말씀에 나오는 두명의 여인은 우리가 누구를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왕은 이스라엘 민족이 점점 커져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했습니다. 특별히 전쟁이 나면 남자들이 애굽을 대적해서 싸울 것을 두려워해서, 남자 아이가 낳는대로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갓난 아이를 죽이는 일을,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맡깁니다.  

바로왕은 두 산파를 불러서, 히브리 여인, 곧 이스라엘 여인이 사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을 그 자리에서 죽이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잔인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아홉 달 동안 낳은 뱃속에 있던 아이가 세상에 나왔는데, 그 아기에게 젖도 물리기 전에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민족을 죽이도록 바로왕은 두 산파에게 명령했습니다

바로의 명령은 두 산파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바로왕의 명령은 거절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령이었습니다. 그 명령을 거절한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죽은 목숨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 두 여인은 바로왕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두 산파는 히브리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에 그 아이들을 살려 줍니다. 후에 바로왕은 이 두 산파가 사내 아이를 죽이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산파를 부릅니다. 이 때 이 여인 둘이 얼마나 두려웠을지는 짐작이 갑니다. 아마 죽을 때가 왔나보다 싶었을 것입니다. 그 때 그 산파는 말하기를, “히브리 여인들은 건강해서 우리가 가기 전에 스스로 아기를 낳기 때문에 자신들은 어쩔 수 없다.” 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 여인들이 행한 일의 이유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라고 했습니다. 산파들이 갓난 남자 아기를 살려 준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두 산파가 사내아이를 죽이지 않은 궁극적인 이유는 아이들이 불쌍하거나, 아니면, 인간적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 일을 거절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산파들은 눈에 보이는 바로왕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바로왕의 말을 따라서, 갓난 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아님을 그 여인들은 알고, 바로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그 여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로왕이었습니다. 바로왕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발각되게 되면 그 여인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과도 같이 취급당할 것인데, 그 여인은 바로왕의 명령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했던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바로왕이 두렵다하여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일임을 그 여인들은 알았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뜻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았던 것이 두 산파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두 산파 뿐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왕도 하나님을 두려워했어야 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차 많아지고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사실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자신의 잔인한 방법을 동원함에도 불구하고, 임신하게 하시고, 태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여야 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창대하고 강해지게 되는 비결이, 그 뒤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능력보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두 산파와는 달리, 바로왕은 그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는데, 바로는 눈에 보이는 사람만을 의식하고 그들을 해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함으로 드러납니다. 두 산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바로의 뜻에 관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의 뜻을 관심할 뿐만 아니라, 그 뜻에 순종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하나님, 제 형편을 아시지요하면서 그 뜻을 거역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상실했습니다.0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만을 강조하다가 보니, 자신들이 죄지은 것도 당연히 용서하실 것이라고 스스로 자신의 불순종을 정당화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이 땅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보다 세상적인 두려움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권력에 대한 두려움, 손해 볼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소외될 것 같은 것에 대한 두려움사람들은 이러한 두려움에 사로 잡혀 정작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두려워함으로 판단하고 행하는 이들에 대해서 기뻐하십니다. 어떻게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함으로, 어떤 일의 결정을 내리고 행하십니까? 아니면 세상적인 두려움을 근거로 판단하시고 행하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두 여인의 이야기를 출애굽 시작에서 드러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도 두려운 존재와 상황들을 만날 때에,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판단하고 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두 산파를 그냥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집안을 왕성하게 하셨습니다.

 

3.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이 세상의 두려운 존재들이 많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존재는, 바로왕과 같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강력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 세상이 운영되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에 강한 권력가들이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했습니다.

바로왕이, 번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출산을 막으려고, 죽노동을 시키고, 아이들을 죽이려고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도리어 더 증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유전자가 특별하거나 그들이 지독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해변의 모래알같이 무수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한 고난을 받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 하나님은 앞으로 그 자손에게 있어야 할 일까지도 말씀해 주십니다

창세기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경험할 일에 대해서 알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 나라 사람을 섬길 것이고, 400년간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힌 그 나라를 징벌하여서,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나오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큰 제물을 이끌고 나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땅에 들어가서 큰 민족을 이루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전락해서 고난을 받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세상의 권력자들에 의해서 되는 것 같은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맺으신 그 약속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자 그러한 일들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우연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강력한 권세자들을 통해서 이 세상이 운영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세상에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어떠한 판단과 행동을 할 때 그 두려움이 동기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원하셔서 입니다

아무리 두려운 존재가 세상에 있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은 바로와 같이, 눈에 보이는 강력한 존재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운영되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함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은 두 산파, 십브라와 부아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이 세상에 대해서는 담대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산파와 같이 비록 내가 죽임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할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 이외에 또 다른 두려운 대상을 제시합니다. 바로왕과 같은 무자비한 사람을 우리 인생에 등장시켜 두렵게 만듭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두렵게 할 때도 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을 주어서 절망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며, 세상에 대해서는 담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산파를 책임져 주셨듯이,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의 책임져주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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