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1611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저에게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는 주중에는 주로 기도원에서 봉사를 하셨고, 주말이면 집에 오셔서 함께 교회에 가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오실 때를 내심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집에 오실 때마다 그 동안 기도원에 계시면서 받으신 사탕이라든지 과자들을 챙겨가지고 오셔서 저와 동생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때 그것을 받아 먹으면서 궁금했던 것이, "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맛있는 것을 드시지 않고 가져다 주실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손자들이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챙겨주시려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좋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사도행전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고 합니다. 주는 사람은 무엇인가 줄 것이 있기에 복된 것이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기 힘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 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서 가장 귀한 것을 주면서 살았던 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부터 무엇인가를 가지기 위해 구걸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세상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주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실 때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 이득을 취하면서 그것을 내 것으로 누리면서 살아가는 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고 베푸는 존재로 우리를 불러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독교인으로서 꼭 가져야 될 것은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주는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오늘 말씀을 보면서, 같은 곳에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사는 두 종류의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구시,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으로는 오후 3, 기도시간이 되자, 예루살렘 성전에 기도하러 미문을 통과하여 올라갑니다. 미문이라는 이름은 그 문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두 제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문에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는 미문이라는 성전문에서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을 상대로 해서 구걸을 했습니다. 자신이 걸을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메고 와서 그를 성전 미문에 내려 놓았습니다. 그러면 하루 종일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구걸을 했습니다. 비록 앉은뱅이는 성전 문 앞에 놓여있었지만, 한 걸음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계신 성전을 등지고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서 평생을 앉아 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육적인 앉은뱅이일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앉은뱅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사람이 채워줄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 잡혀서 성전 가까이에 있었지만, 한 발자국도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으로 가지 못하고 사람만을 바라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더욱 가까이 나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앉은뱅이와 같은 신앙인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지만 더 이상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바라보며, 세상을 동경하며 왔다가 또 일상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앉은뱅이 신앙인이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분에게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러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을 지나, 사람을 지나, 교회의 문턱을 넘어서, 하나님께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앉은뱅이와 같은 신앙이 아니라, 날마다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힘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또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들이 꼭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앉은뱅이는 두 제자를 보고 구걸을 합니다. 두 사람의 주머니에서 뭔가가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합니다. “우리를 보라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기대치가 높아졌습니다. “무엇인가 줄 것이 있나보다.” 하고 더욱 기대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합니다. 얼마나 실망을 했겠습니까? 한마디로 자신이 구걸하고 기대했던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말하기를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앉은뱅이가 기대했던 은과 금은 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서 앉은뱅이에게 걸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걷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요청하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그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은과 금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멋진 건물이 없고 뭔가 멋진 조직과 프로그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부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유명인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꼭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이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무엇이기에 꼭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1)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로마서 10:13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살고 권력을 가진 삶을 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름을 불러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바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으로 백악관은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어림도 없습니다. 현재 로마 캐톨릭 교황의 권위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2013 1월의 조사에 의하며 세계인구는 71억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 있는 71억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부른다고 할지라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이름은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이름으로는 자기 자신 한 사람 조차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고 부를 때에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능력의 이름인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에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마치 베드로가 이러한 일을 행한 것처럼 대했습니다.

그럴 때에 베드로는 3:16절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향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히 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완전히 낫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낫다는 것은 단순히 육신적인 치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앉은뱅이가 걷고 뛸 수 있다고 해서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육신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영적인 치유가 있어야 합니다.

나면서 부터 앉은뱅이었던 그 사람에게서 우리는 그 안에 있는 내면의 상처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멸시와 천대의 상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무슨 죄가 있기 때문에 저렇게 불구가 되었을 것이라고 저주했습니다. 그러한 눌림 속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또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쓴 뿌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 나입니까? 제가 무슨 죄가 있다고 나면서부터 이렇게 걷지 못하는 불구자가 되어야 합니까? "

그런데 그의 다리에 힘이 생기고 일어나 걷고 뛸 수 있을 때에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미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서 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라 아직도 하나님은 자신을 관심하고 사랑하고 계심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사람을 온전케 치유하시는 능력의 이름인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귀한 이름을 저와 여러분들에 주신 줄로 믿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며, 그 능력에 힘입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입니다. 모든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귀신들도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무릎을 꿇습니다. 사탄의 강력한 권세도 사람의 이름으로는 이길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주님을 의지할 때에 대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온전하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까? 앉은뱅이와 같이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고 부서지고 상한 것들에 눌려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까? 가정이 온전하지 못합니까? 건강의 문제가 있습니까? 재정상의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들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은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이름으로 부르짖을 때에 그분은 우리의 형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세워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앞으로 나와서 그 이름을 부르십시오. 의지하십시오. 사람을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이름을 부를 때에 주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이들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상에 증거하며, 베드로와 같이 쓰러진 세상의 사람들을 온전하게 일으켜 세우는 일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두 제자들을 보고서 경이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두 제자가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니다. 이 일은 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심을 믿고 선포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회를 시작하면서 한 일년 동안은 어떤 분들이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요청을 하시면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대신에제가 그 기도제목을 알았으니 제가 따로 기도할테니까 돌아가십시오하고 그 문제를 가지고 혼자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기도할 때에 만약 기도했는데도 그 기도가 그대로 응답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제목을 받아서 기도하고 있는데, 그러한 주님의 음성이 강하게 때리더랍니다. "네가 하는 것이냐? 내가 하는 것이지..."

이러한 염려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동일하게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권세를 주셨다고 해서 그 일들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은 그 이름만이 구원의 이름이며,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름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고침을 받지 못하고,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역시 그분의 이름은 유일한 구원이요 완전케 하시는 이름인 줄로 믿기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부르짖는 자이지, 치유자가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믿고 부르짖을 때에 선하신 우리 주님께서 그 부르짖음에 주님의 뜻대로 응답하여 주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단순히 우리가 알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믿고, 부르짖을 때에 주시는 그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아가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면서 부터 앉은뱅이었던 사람을 고쳤을 때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들만 놀랐을까요? 아닙니다.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도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했으니까요. 그리고 또 베드로와 요한도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그 기분 좋은 놀라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경험되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의 이름을 의지하며, 앉은뱅이를 향하여서 손을 내밀고 일으켜 세웠던 베드로와 같은 믿음의 손길들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주님께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하여서 더욱 더 가까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서지고 온전치 못한 것을 완전히 낫게 해주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바로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요, 모든 것을 온전케 하시는 치유의 이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예수가 없다면 속이 빈 강정과 같습니다다른 것은 없어도 우리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의 능력을 경험하는 믿음과 삶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구원과 완전한 치유함이 필요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며, 줄 수 있는 복된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실시간 인터넷 예배 접속 Rejoice 2020.03.21 6329
525 04/13/2014 - 임금님의 용서 [마태복음 18:21-35] Rejoice 2014.04.21 16311
524 04/20/2014 - 예수님의 흔적 [요한복음 20:19-29] Rejoice 2014.04.21 16269
523 07/28/2013 - 넘어질까 조심하라(2) [고린도전서 10:9-13] Rejoice 2013.07.29 16243
522 07/21/2013 - 넘어질까 조심하라(1) [고린도전서 10:1-13] Rejoice 2013.07.24 16199
» 10/27/2013 - 내가 줄 수 있는 것 [사도행전 3:1-10] Rejoice 2013.10.27 16110
520 12/14/2014 -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누가복음 10:17-20] Rejoice 2014.12.17 15917
519 11/03/2013 -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 [마태복음 6:24-34] - 전교인 야외예배 Rejoice 2013.11.04 15909
518 11/17/2013 -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라 [시현 106:1] Rejoice 2013.11.19 15785
517 01/26/2014 -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 [마태복음 4:12-22] Rejoice 2014.01.27 15556
516 06/22/2014 -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열매 (오래참음,자비,양선) [갈라디아서 5:16-24] Rejoice 2014.06.22 15420
515 11/29/2015 - 시온의 대로를 품은 성도 [시편 84:1-8] Rejoice 2015.11.29 15252
514 06/15/2014 - 거룩한 열매 [갈라디아서 5:22-24] Rejoice 2014.06.17 15193
513 08/18/2013 - 나를 상관하시는 분 [마가복음 5:1-20] Rejoice 2013.08.18 15025
512 04/06/2014 -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 [사무엘상 15:10-23] Rejoice 2014.04.21 14933
511 08/04/2013 - 예수님의 물음에 응답하는 삶 [마가복음 8:27-34] Rejoice 2013.08.04 14890
510 10/25/2015 - 오직 성경, 은혜 그리고 믿음 [로마서 1:17]-종교개혁주일 Rejoice 2015.10.25 14745
509 12/06/2015 - 시므온의 기다림 [누가복음 2:25-33] Rejoice 2015.12.06 14701
508 10/12/2014 -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야고보서 3:1-12] Rejoice 2014.10.12 14624
507 09/30/2018 - 기름부음받은 성도 [사무엘상 16:6-13] Rejoice 2018.10.08 14611
506 08/11/2013 - 성도가 따라가야 할 자취 [베드로전서 2:18-25] Rejoice 2013.08.11 14596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29 Next ›
/ 2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연합감리교회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감리교회 Korean Global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