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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누리는 것 중에 하나가 희락, 곧 즐거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즐거워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즐거움을 잃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삶의 즐거움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찾으려고 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즐겁게 살려고 애를 쓰지만,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누리기를 원하시는 즐거움은 세상 사람들의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로마서 14: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육신적인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육신도 즐거워하고, 이에 따라 마음도 즐겁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문제가 해결 안되면 슬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누리기를 원하시는 즐거움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 즐거움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즐거움은 성령안에서 누리는 희락, 즐거움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시는 희락의 내용을 깨닫게 해 주시고, 누리게 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성도들이 누려야 할 즐거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소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즐거운 삶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삶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어떠한 소망을 주셨고, 우리가 왜 그 소망가운데 기뻐할 수 있는지를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2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영광된 일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재능과 능력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것을 명예롭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명예의 전당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서, 스포츠나 예술, 과학 등에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평가해서 그 이름을 명예의 전당에 올리고 그 업적을 기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한시적인 영광된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기뻐하며 살아가기보다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가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망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29절에, "그러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하십니다. 솔로몬 왕의 세상적인 부귀영화가 당대 최고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들의 백합화의 영광보다도 못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은 때로 아주 화려하고 사람들을 매혹시키기도 하지만 영원하거나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세상적인 영광을 받지 못하면서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뭐하나 특별하게 잘 한 것 없이 평범하게, 아니면 사회적으로 열등하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어떠한 영광도 얻지 못하고 살아갔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땅의 어느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3:23절에는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죄인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화평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람들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된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해서 돌아가셔서 죄값을 치르심으로, 이제 우리는 진노의 관계가 아니라, 화평의 관계가 된 줄로 믿습니다.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화평의 관계가 되었고, 이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나아간다고 할지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죄의 문제의 해결함을 받지 못해서 하나님과 불화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없는 삶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할 수 있고, 그것이 그림의 떡이 아니라,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은, 환란 중에서도 그 소망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으로도 즐거운 삶을 살지만, 또한 오늘날 이 땅 가운데 일어나는 환란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는 것이 성도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은 헬라어로들립시스인데, 그 동사형은들리보입니다. ‘들리보포도즙 틀에서 포도즙을 짜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도즙 틀에서 포도즙을 짜기 위해서 얼마나 눌러대고 고통스럽게 하겠습니까? 피와 땀과 눈물을 짜내는 그러한 고통을 환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 환난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환란을 통해서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환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란은 성도를 망하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환난을 만났을 때에 가장 먼저 가지는 것이 실망입니다. 그리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절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이것은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환란이 다가 올 때에 우리로 하여금 절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탄식하며, 자신에 대해서 비하하는 일들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난의 의미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란을 주심으로 우리의 능력과 그 한계를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소망하며 살아가도록 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환란이 소망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우리가 염려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염려의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관심하시고 돌보심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가정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아이가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길게 한 숨을 내 쉽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엄마는 딸에게 '무슨 큰 일이 있는가' 하고 무슨 고민이 있냐고 물으니까 그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그래요. 앞으로 제가 자라면 먹는 것, 입는 것들이 많아질 텐데 이를 어떻게 해결을 해요. 학원에도 다녀야 하는데 학원비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해요..."

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고민거리지만, 이를 지켜 보고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참 쓸데 없는 염려인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님이 해결해 주실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어떻게 먹고 입히실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에 염려하셔야 하는 문제이지, 우리가 염려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사야 40:31절에,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힘이 빠지고 절망적인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곧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그에게 둔 사람은, 새 힘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날아가고, 달려가고, 걸어가도 피곤하거나 곤비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힘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시어서,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 성도들이 해야할 일은, 염려하고 걱정함으로 힘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서, 하나님을 앙모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3. 그리도 성도가 즐거워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은 결코 부끄럽지 않은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 환난과 어려움들을 이겨냅니다.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좋은 학교나 직장에 가기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것을 소망하면서 그러한 환난을 극복해 나갑니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 환란을 당하지만 피하지 않고, 그것을 인내합니다. 그렇게 인내하다가 보면, 연단이 되어지게 되고, 자신의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적으로 영광스러운 일들을 해 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거나, 곧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위해서 수고했던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품은 소망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소망으로 인해서 이 땅에서 여러가지 환난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모함도 당하고, 돌에 맞아서 죽을 뻔하기도 하고, 또한 감옥에 갇히는 그러한 일들도 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는 참 부끄러운 일들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1:12절에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수감생활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했습니다. 소망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주실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한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철저하게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도리어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당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서 환란과 고난을 당하는 것 조차도 즐겁고 감사했던 일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도리어 자랑할 일인 것입니다. 즐거워할 일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는 즐거움은 세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즐거움에서 시선을 돌려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깨달을 때에 신앙의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영광도 성도들이 맞이할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소망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즐거움은 환란 때에도 이어집니다. 성도는 잘될 때에만 즐거워하고, 환란 때에는 슬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환란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더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그 소망을 끝까지 잡고있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더 확실한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도의 소망은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광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구원의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통해서 이 사랑을 우리로 깨닫게 하시고,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하늘의 소망, 사랑을 생각할 때에, 환란과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끝까지 성도들을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여러가지 환란이 되는 상황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시고, 그 가운데 새힘을 주시고, 끝까지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어려움 가운데서 기뻐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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