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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동네 근처에  H.E.B Grocery 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종종 유대인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이 유대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머리에 쓰는 테두리 없는 모자인 키파(Kippah)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검정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유대인 Tophat 을 쓰고서 가족과 함께 걷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 헤어스타일을 보면서 내가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독특한 모습을 보면서저렇게까지 티나게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 복장이 불편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복장을 고수하는 것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여러 민족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인들을 택하신 이유가 그들로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가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세상 사람들과 다른,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지닌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가 하나님의 사랑받을 만한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하며, 그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도바울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거룩하고 사랑받을 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옷을 입는 것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입는 옷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명품의 옷을 입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누가 환자이고 의사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그 사람이 입은 옷이 파란색의 환자복인지, 아니면 하얀색의 의사가운인지를 보면 됩니다. 그 입은 옷으로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토리노 대성당(Duomo di Torino)에는 특별한 옷이 보관돼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예수님의 몸을 쌌던 세마포 수의입니다. 그 수의가 진짜 예수님의 것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수의가 다른 옷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 것은, 그 옷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이 그 세마포 옷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옷을 입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14절에 사도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옷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그 삶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들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기독교인들이 입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가지 옷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

 

먼저, 사도바울은 긍휼과 자비의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기독교인에게는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긍휼은 다른 사람의 형편을 동정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긍휼의 마음을 잃어 버리고,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입어야 하는 옷은 긍휼의 옷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형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다가 놓고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안에서도 가족들이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서 이해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남편의 형편을 알아주고 동정하는 사람이 아내여야 할 것입니다. 아내의 고달픈 삶을 보면서 측은하게 여기며 함께 살아온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남편이어야 합니다. 옆집 사람이나 친구들은 내 형편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겨주는데, 함께 사는 가족들이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슬픈 일이 없을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도 서로를 평가하기 전에, 상대방의 형편을 살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병들고 가난한 이웃, 여러가지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의 형편을 보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긍휼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가장 긍휼이 풍성한 곳이 바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긍휼한 마음을 품게 될 때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자비(Goodness)입니다.

자비는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행하는 선한 행위입니다.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게 되면, 내 유익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을 찾은 문둥병자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서서 소리 높여 부르짖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형편을 잘 아셨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것도 억울하고 고통스러운데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죄인이라고 조롱하며 천대하는 것에 대한 상처를 예수님을 잘 아셨습니다. 문둥병으로 인해서 자신의 가족과 헤어지고 이웃과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 외로움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부를 때에도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없기에 멀리 서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의 형편을 아시고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그리고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보이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문둥병자가 병이 낫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의사가 그 일을 하겠지만, 예수님 당시에, 문둥병에 걸린 것과 나음을 받은 것을 진단하고 판단하는 사람을 제사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들에게제사장에게 가서 너희의 몸을 보이라고 말한 것은, 문둥병자들의 병이 고침을 받을 것을 예고하신 말이고, 실제로 문둥병자들은 제사장에게 자신들의 몸을 보이러 가는 도중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긍휼하게 여기게 되니,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의 유익을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이유도 사람들을 긍휼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죄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죄인을 구해 주시는 선하신 일들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긍휼과 자비를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람들마다 아픔과 상처가 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누군가 내 형편을 이해해주고 선하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는, 그러한 이들을 긍휼하게 여기며 그들에게 선함으로 대해 주어야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 받는 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긍휼히 여김을 받기 위해서는 또한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긍휼과 자비만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를 베품으로 또한 긍휼과 자비함을 받는 것입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들은 겸손과 온유의 옷을 잘 입어야 합니다.

겸손(Humility)과 온유(Gentleness)도 예수님의 성품이십니다. 마태복음 11:29절에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것은 상대방의 존귀한 가치를 먼저 깨닫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인격적으로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마음은 상대방을 업신여기지만 외형적으로 겸손한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겸손은 상대방이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귀한 가치를 가진 사람임을 깨닫고 자신을 낮출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당시에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추구할 만한 덕목이 아니었습니다. 종과 같이 비천한 자가 주인을 섬길 때에 자세가 겸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되셔서 진정한 겸손을 이루셨습니다.

마가복음 10:45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된 사람들을 섬기러 오실 정도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낮추신 것은 바로 사람들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죄인된 존재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을 드러낼 귀한 존재임을 아셨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셔서 사람들을 섬기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셔서 겸손함으로 섬기셨을 뿐만 아니라, 온유함으로 대하셨습니다.

온유함은 겸손한 자들이 가지는 태도입니다. 존귀한 이들을 대할 때에 윽박지르거나 감정적으로 화를 내고 대하지 않습니다. 온유함으로 부드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욱 우월하고 가치있다고 여기는 교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님과 같이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예수님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태도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에 따라서 사람들의 가치를 매깁니다. 실적이 좋지 못한 사람은 그 인생까지도 무가치한 것처럼 취급합니다. 학교에서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은 그 앞날도 별볼일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칫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무가치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는 사람이 가진 돈이나, 능력, 지적인 능력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에 별볼일 없어보이는 그 사람도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열등해 보이는 아이들도 부모의 사랑을 받는 누구보다 소중한 자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에게 겸손해야 할 것은, 우리가 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고 가치있다고 하시는 사람을 내가 맘대로 가치없다고 폄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강해지고 높아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무시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치를 알아서, 자신을 낮추며 온유함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겸손과 온유의 모습이고,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의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어야 할 옷은 오래참음의 옷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항상 기쁘고 편한 상황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였다고 해서, 모든 것들이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필요한 것이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오래참음은 헬라어로마크로뒤미아, μακροθυμα라는 단어를 쓰는데, ‘, 이라는 뜻의마크로스격정, 분노를 뜻하는뒤모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이는농부가 추수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조급해 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정해진 때까지 오래참고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것이 성숙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동안에 오래참음이 필요합니다. 과일 나무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비바람을 참아야 하고, 뜨거운 태양을 참아야 합니다. 끝까지 참을 때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시험과 환란입니다. 시험과 환란을 통과할 때에 그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오래참음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의 사람은, 조그만 시험과 어려움에도 그 마음이 격노케 되어서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그런데 어른과 같은 신앙인은 닥쳐오는 도전들에 대해서 이를 꽉 깨물고 인내하며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당신에게 닥친 고난을 참고 참으며 그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박해와 어려움을 참지 못하셨다면 이 땅에 구원이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 자신과 내 가정과 교회,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끝까지 참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신앙적인 도전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마시고, 참고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래참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룩과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거룩하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어서 그분의 삶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 입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 있습니다.

긍휼과 자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 땅에 자신을 이해해 주고 선하게 대해 달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님의 사람은  그러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받는 길이기도 합니다.

또한 겸손과 온유로 옷입어야 합니다. 세상은 높아지고 강해지는 것을 가르치지만,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보면서 스스로 낮아지고, 온유함으로 대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래참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참지 못하면 그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믿음생활을 할 때에 고통과 어려움은 성숙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것을 오래참을 때에 비로서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좋은 믿음으로 연단되는 줄로 믿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고, 그 삶을 드러낼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는 삶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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