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6/2014 -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누가복음 6:20-26]
이주 전에 라스베가스 거리를 구경하다가 '벨라지오'라는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로비에는 말의 해를
기념하는 커다란 은빛 말 한마리가 세워져 있었고, 호텔 안에 있는 정원에 들어가 보니 더 많은 달리는 모양의
말들의 모형이 역동감 있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원 한편에는 꽃으로 장식한 한자 한 글자가 있었는데,
‘복’이라는 글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복'자 앞에는 중국 엽전 모형을 잔뜩 만들어 쌓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연세 드신 동양 할머니께서
앞에는 복 글자를 두고, 뒤에는 돈을 배경으로 해서 사진을 찍으시는데 얼마나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는지 아직까지
그 인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랜드 캐년을 가다가 후버댐에도 들렀습니다. 후버댐 건설을 기념해서 만든 동상이 있어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어느 미국 여자분께서
그냥 찍지 말고 그 동상의 발을 만지면 행운이 있으니, 동상 발을 만지고 찍으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동상의 발을 보았더니 다른 몸은 구리빛인데, 그 발은 사람들이
하도 많이 만져서 반짝 반짝 윤이 나고 빛이 났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복을 받기를 원하고 복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방석에 앉는 것을 복이라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복이라고 여깁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것을 복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자녀복, 아내복, 남편복을 따집니다.
남편복이 없더라도 자녀복은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자녀복은 없어도 부부 복은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소유해도 복이라고 말합니다. 하는
일이 많으면 일복이 터졌다고 하고, 먹을 것이 많으면 먹을 복이 터졌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복을 가지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관심도 사람의 관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시작하는 초창기에 사람들을 모아 놓으시고 먼저 '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를 따르는 자들이 복을 받기를 원하셨고 이를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읽으신 말씀과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향하여서 복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세상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과 차이가 납니다. 사람들이 복 터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향해서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복에 대해서 들으면 헷갈리기조차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말하는
복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복을 알려주시고 그것을 누리게 하고자 이 땅에 오신 분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독교인으로서 어떠한 복을 구하며 살아야 할지를 함께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이와 동일한 내용의 본문이 나옵니다. 이 때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좋은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가난했고, 소외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향해
"너희들은 복 있는 자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감히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복이라고 말하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에
관심을 합니다. 가진 것이 풍요하고, 일이 잘되고 건강하면 그것을 복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정반대입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고, 주린 자는 복이 있고, 우는
자는 복이 있고, 사람들의 미움과 욕을 받고 버림을 받으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한 자들이 복이 있는 것은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형편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느냐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3절에,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의 상이 큼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기뻐하며 뛰노는 것을 원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복받은 사람이라고 말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아니라, 하늘에서 상을 받을 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복의 근거를 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사는 날만을 계수합니다.
이 땅에서 기뻐하며 뛰놀면 그것을 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고 출세를
하고 건강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는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이 세상에서는 가난해질 수도 있고, 주릴 수도 있습니다.
울기도하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버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서의 복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복을 꿈꾸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기준으로 보면 지지리도 복이 없으신 분입니다. 마태복음 8:2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복이 없는 삶을
살았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머리 둘 곳 조차 없는 삶을 사시면서도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삶을
예수님께서는 사셨던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복의 기준은, 지금 내가 어떠한 형편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나님의 큰 상급을 기대하며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2. 하늘의 복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이 땅에서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있는 사람을 말씀하시면서, 그 샘플로 선지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가난했고, 주리고, 울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는데 그러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기 보다는 거부를 당했습니다. 배불리 먹기보다는 주려야 했고,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으면 자기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스스로 가난해 졌습니다. 선지자가 활동했던 때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영적으로 타락했을 때입니다. 선지자들은 타락한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서 아파했습니다. 자신들을 미워하고 욕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애통해 했고,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인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아합왕과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열왕기상 19:4에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를 합니다. “…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낫겠다고 하나님께 간구할 정도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을 향하여 도리어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땅에서는 상이 없을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에서 받을 상을 기대하면서 살다가, 하늘의 복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을 받는 자들에 대해서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던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미 세상에서 그 보상을
받고 상을 받았기에 하늘에서 받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화인 것입니다. 진정한 위로와 기쁨, 상급은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이 땅에서 주리시고 우는 자를 위로해 주시고, 웃게 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1:4절에 보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선지자와 같이 눈물을 흘리고 애통하고
울었던 이들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그 모든 눈물을 하나님께서 손수 씻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칭찬과 위로를 받는 것도 복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로와 칭찬과 상급이 없다면 진정한 복이 아닌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비록 이 땅에서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칭찬을 받는 상급받는 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이 땅의 것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한 나라를 소유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에 한 프로골퍼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프로 골퍼에게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으로부터 자신의 나라에서 주최하는 골프대회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이 왔습니다. 골퍼는 이를 수락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은 자신의 전세기를 미국으로 보내 그 골퍼를 데려와 경기를 펼쳤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골퍼에게 왕은 자신에 초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선물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골퍼는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이 골프클럽을 수집하고 있으니, 골프클럽을 선물로 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골퍼는 여러 가지 상상을 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은 무척 부자이던데, 그 부자 왕이 보내주는 골프채는 특별하겠지?
순금으로 만든 걸 보내주지 않을까? 아니면 보석이 박힌 것을 보내줄 수도 있겠지?’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에게 도착할 선물을 기다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편지가 왔는데, “지금 선물을 준비중인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테니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골퍼에게 골프채가 아닌 우편물이 왔습니다. 그 우편물을 여러보니,
그 안에는 골프채가 아니라, 골프 코스가 있는 골프 클럽, 그러니까 골프장을 증여한다는 증서가 담겨 있었습니다.
골퍼가 선물로 원했던 골프클럽은 골프채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사우디 왕의 생각은 골프클럽이 골프장이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만큼만 생각하면서 복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준비하시는 복은 사람의
차원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 받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의 어떠한 사람들보다도 복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의 수여자가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이 땅에서 배부르며 기뻐하며 풍요를 누리는 것을 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주리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를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선지자와 같이 우리의 가정, 자녀를 위하여서 교회와 이 나라를 위하여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죄악된 모습을 애통해 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십니다. 그러한
일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급을 기대하며,
또한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해서 얼마나
가난해지고, 주리고, 애통해 하고 눈물을 흘렸습니까?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은, 자식 복, 남편 복, 일 복, 먹을 복… 세상에서 누리는 이런 복이기
이전에, 하늘의 복,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기뻐하고 뛰놀기 위해서 애쓰는 삶이 아니라, 그날에 하나님의 큰 상급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뻐하고 뛰놀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복이 저와 여러분들이 누리는 복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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