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3/2014 -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마태복음 5:38-44]
한국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되’는 조그만 네모 상자처럼 생긴 양을 재는 그릇입니다. 그리고 ‘말’은 ‘되’의 10배가 되는 양을 재는 그릇입니다. 그러니까 되로 준다는 것은 적은 것을 주고, 말로 받는 다는 것은 그 대가로 많은 것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주고 더 많은 것을 받으면 좋지만, 이 말은 주로 상대방에게 나쁘게 했을 때에 더 심하게 보복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성품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지고 싶지 않고, 자신이 당한 대로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르막 길을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걷지를 못했습니다. 이걸 본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업고 갔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등에 업혀가는 것이 좋긴 하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영감, 내가 좀 무겁지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머리고, 얼굴은 철판이고, 심장은 강심장이어서 무거워.” 이 말을 듣고 할머니 마음이 상했습니다. 얼마쯤 올라가다가 이번에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업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업히면서 말했습니다. “할멈, 생각보다 가볍지?” 할머니는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가볍지요. 머리는 든 것이 없고, 허파는 바람만 잔뜩 들었고, 속은 텅 비어서 엄청 가벼워요.”이 일로 인해서 서로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 다음 날 함께 병원에 가니 의사가 강연하고 있었습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설사가 나고 건강을 해치니까 잘못된 음식을 먹으면 안 됩니다. 이 가운데 혹시 음식을 잘못 먹고 큰 고통을 겪었던 분이 계십니까?” 할아버지는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습니다. “네, 웨딩 케이크요. 지금도 고생하고 있어요”
우리는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를 악하게 대하는 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하는 마음에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한 만큼 갚아주는 것이 가장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이러한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향하여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1. 먼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지적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곧 그 동안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해를 입은 것 만큼 똑 같이 갚아주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구약의 성경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신명기19: 20-21,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상대방이 해를 입힌 만큼 갚아 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래 의도는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이스라엘에서 악을 제거하기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약한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에게 악하게 대하는 사람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악하고 강한 사람도 자신이 행한 것만큼 보복을 당할 수 있음을 알려 주셨기에, 약한 자라고 해서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당한 만큼 갚아줘도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한국에서 한 여학생이 체육시간에 친구들이 다 운동장에 나간 틈을 타서 빈 교실에서 돈을 훔치다가 걸렸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했냐고 추궁을 하니까 자기도 돈을 잃어버려서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치는데 뭐가 잘못됐냐고 말하더랍니다.
다른 사람도 자신에게 그렇게 했으니까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설령, 악한자가 그렇게 했을지라도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대신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에 대해 악하게 반응함으로 또 다른 악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2.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나를 악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먼저, 오른뺨을 치는 사람이 있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뺨을 맞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다른 어떤 곳 보다 뺨을 맞는 다는 것은 지극히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뺨을 맞으면 자동적으로 때린 사람의 뺨을 때리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왼편도 때리라고 돌려대는 것입니다. 차라리 맞아도 참고 보복하지 말라고 하면 이해가 되겠지만, 다른 뺨까지도 돌려대라고 하십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송사하여, 곧 고소하여 속옷을 가지려고 한다면 겉옷까지도 주라고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아무리 채권자라고 할지라도 겉옷을 담보로 잡았을 때에는 저녁이 될 때에 돌려주라고 합니다. 그만큼 겉옷은 몸을 보호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어서 법적으로도 빼앗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당신의 것을 가지려고 고소한다면 그것을 그냥 빼앗길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똑같이 법적으로 대응을 해서 빼앗기지 않고 지켜내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정당합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속옷을 빼앗으려고 하는데 겉옷까지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까지도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 로마법에 근거합니다. 당시에 로마군인들은 일반 사람들을 강제로 징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로마의 군인이 오리, 곧 1마일 정도의 거리를 무엇을 운반하든지, 안내자로든지 함께 동행할 것을 요구하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도 로마군인에 의해 강제로 그러한 수고를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리도 힘들텐데 십리까지라도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무엇인가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이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없기 때문에 돈을 꾸는 것인데 그것을 갚을지도 묘연한 것입니다. 돈을 꾸어줄 사람의 신용을 체크합니다. 담보를 잡고서 돈을 빌려 줍니다. 그러한 것도 마땅치 않으면 빌려 주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이유를 막론하고 가난한 자의 요청을 거절하지 말라고 합니다.
실제로 어떻게 이러한 일을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상의 일들은 도저히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상적인 일인지는 모르지만, 현실성이 없는 예수님의 요청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불가능한 것 만은 아닙니다. 도리어 이러한 것들을 능히 잘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악하게 대하는 자를 사랑할 때입니다. 그를 불쌍하게 여길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생깁니다.
3.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 대해서 법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갚기를 원하십니다.
뺨을 때리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다른 뺨도 때리라고 내어 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토록 자신을 때리고 싶어했던 분노와 미움의 마음을 알기에 그렇게라도 해서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있고, 해결할 수가 있다면 다른 뺨을 돌려대는 것입니다.
속옷을 얻기 위해 고소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속옷뿐만 아니라 그 겉옷까지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고소하기 전에 주는 것입니다. 겉옷은 법적으로도 충분히 지킬 수 있지만 그것까지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말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십리를 가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도리어 자신이 더 가자고 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더 걷고 싶은 것입니다.
뭔가를 구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가 구하는 것보다 더 주고 싶은 것입니다. 어떠한 대가 없이도 그냥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들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나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만한 일들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 줄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했던 대로 나에게 악하게 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풀게 하기 위해서 맞아도 괜찮습니다. 속옷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에게 겉옷을 주어도 괜찮습니다. 도리어 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지만 십리가는 것도 힘이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뭐든지 주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사랑을 하게 되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로 바뀝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3-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행위가 율법적인 영역 안에서 의무적으로 행해지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법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인색하게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비록 악한 자라고 할지라도, 원수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선을 베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요구하셨는데, 예수님 스스로가 그러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적인 법을 집행하는 자세를 가지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행한 대로 우리에게 갚으셨다면 살아남아 있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율법에 정해진 것을 훨씬 넘어서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이를 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기 전에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께 수치를 보였습니다. 뺨을 맞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가복음 15:17-20).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다시 챔을 뱉거나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저희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주면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끝내는 그의 생명까지도 주시면서까지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그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니까 거져주시는 은혜를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행한대로 주시는 대가가 아니라, 사랑함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으로, 은혜로 대하며 상대방의 행동에 사랑과 은혜로 갚아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로마서 12:20-21절에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사람들의 관심은 사람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악은 악으로 갚아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악을 이기는 예수님의 법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세상의 법에는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없습니다. 도리어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을 부정하다고 하고 불평등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법은 세상의 법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입니다. 은혜의 법인 것입니다.
혹시나 뺨을 맞고 언제 다시 상대방의 뺨을 칠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까? 상대방이 눈을 상하게 하고, 이를 상하게 한 것으로 마음이 상하고 아픈 이들이 있습니까? 내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을 향하여서 미워하며 증오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억지로 가자는 사람의 요청으로 인해서 망설이는 분들이 계십니까? 뭔가를 구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거절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법은 사람들의 행동에 사랑으로 갚는 것입니다. 어떠한 행동이던지 간에 그것을 사랑으로 갚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빚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선함으로 갚는 것입니다. 비록 악한 자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선함으로 갚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져 주시는 은혜를 서로가 나누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증거되어지는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나에게 서운하게 하고, 악하게 하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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