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1524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우리교회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일, 오후에 지역 전도를 나갑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를 하다가 보면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반응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은 수고하신다며 격려해 주시고, 때로는 시원한 음료수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분들은 대체로 '예수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불편해 하시며 피하시려고 합니다. 별로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하지 않습니다. 지금 살아가면서 신경쓰고 상관할 것들이 많은데 예수까지 신경쓰고 상관을 해야 하는가 하는 반응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예수님을 만나러 왔던 귀신들이 예수님께 했던 반응이 그것이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말하자면 '나 좀 귀찮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신경 끊으시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알지 못해, 그것을 알기 위해서 고민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귀신들이 반응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마치 자기 자신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존재로 여기며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그 삶에 상관하시고 관심하시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거라사 인의 지방에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나오실 때 예수님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만나러 온 사람은 귀신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자주 받았던 질문 중에 하나가, "목사님, 정말 귀신이 있어요" 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마치 비신앙적인 것 같아서 묻는 말인데, 귀신의 존재는 성경에서 누누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귀신에 들린 고등학생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도 잘 다니고 얌전한 남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학생의 어머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로 들어가 보니 아이가 정말 이상했습니다. 표정도 이상했고, 목소리도 이상했습니다. 그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낮은 목소리에 음산한 목소리로 변해있었습니다.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배목사 잘 왔어"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예의 바르던 학생이었는데 반말이라니요. 그러더니 "네가 와서 어떻게 할건데... 네가 와도 아무 소용없어…" 그러면서 비아냥 거리더라구요. 참 한심하더라구요. 귀신들린 아이하고 대화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한참 아이의 말을 들으며 상태를 살피고 있자니, 그 아이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 아이를 두 팔로 꼭 안고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기도하다가 보니 점차 원래 목소리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도 같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지요.

괜히 센 귀신에 들린 사람을 만나면 참 곤란하거든요. 한 목사님께서 간증하시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본인이 전도사시절 때에 이러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귀신들린 여자를 데리고 왔대요.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당황했지만 기도 밖에 없구나 생각하시고,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눈을 꼭 감고 기도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달려들어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도망가더랍니다. 그래서 그 뒤부터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눈을 부릅뜨고 기도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귀신은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제어하려고 쇠사슬로 묶고 쇠고랑을 채워도 그것을 끊고 무덤 사이와 산들을 오가며 사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귀신은군대귀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시니, 그 귀신이 하는 말이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다."

‘군대’는 헬라어 원어로 '레기온(Legion)'인데, 이것은 6,000명 이상의 군인으로 구성된 로마군단을 말합니다. '그 사람 몸에 군대귀신이 들어갔으니 그 가운데서 역사하는 힘은 군대와 같이 막강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귀신을 제어할 만한 힘과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4절에,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가운데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그 지방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먼저 귀신이 알아보았습니다.그리고 그 귀신들이 한 일은 예수님께 와서 달려와 절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멀리서 보고 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절하며 말하는 것이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귀신조차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이니 모를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하는 말은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귀신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귀신을 괴롭게 할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지금 관심은 사실 귀신이 아닙니다. 무리로 뭉쳐 있는 그 군대 귀신들을 예수님께서 상관하시기 보다는 지금 누구를 상관하십니까? 그 귀신들이 함께 들어가서 역사하는 그 한 사람을 상관하고 관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악한 영 가운데 사로 잡혀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과 이 사회를 상관하십니다.

 

1. 오늘날 많은 이들이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서 예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군대귀신을 보면, 사람을 자신의 거처로 삼아서 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을 사로잡아서 자신이 원하는데로 그 사람을 움직이며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신이 하는 일은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되던지 귀신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뒤쳐 나와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자게 하고, 돌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악한 영의 관심은 그렇습니다.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상처내게 하고, 해롭게 하는 일들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사람들을 더럽게 만듭니다. 단순히 외형적인 더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하고 추한 일들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서 사람들을 더럽고 추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오늘날 이 세대 가운데, 이 땅 가운데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일들이 팽배하고 있는 것은 자연적인 일이 아니라, 악한 영의 권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사로 잡혔기 때문입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을 돈으로 유혹하여 사로 잡습니다. 돈을 최고라고 꽤어서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추하게 만듭니다. 부정직하게 돈을 모으고, 사람들을 착취하며 자신의 부를 채웁니다. 가정을 분열시켜서 서로를 저주하며 상처를 주는 추한 모습으로 만듭니다. 성적으로 타락하게 만들어서 성에 도착되어 어린 아이들을 유괴해서 가두어 놓고 성욕을 채웁니다. 사회의 지도자를 음란한 것으로 사로 잡아 지도력을 파괴합니다. 도박에 빠지게 하고, 마약에 빠지게 해서 사람의 인생을 추하게 만들게 하여 멸망의 길로 몰아 세웁니다.

요즘 이집트 사태는 국제적인 이슈입니다. 사회를 안정시킨다는 미명 아래에 정권을 잡기 위해서 총과 무력으로 사람들을 진압하면서 8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귀신에 들린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더럽고 추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을 제어할 수 있는 예수의 능력과 사람들을 단절시키고, 무관심하게 살아가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사로 잡은 악한 영의 관심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악한 영의 권세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더럽고 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결하고 귀한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종일관 귀신들린 그 사람에게 관심하셨습니다. 그리고 귀신들린 그 한 사람을 구하고자 하셨습니다. 사람들 조차도 그를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광기어린 사람을 위험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쇠사슬로 묶어 두려고 했을 뿐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누가 그토록 상관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한 사람을 만나시고자 그곳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거라사 인의 지방에 이르셔서 하신 일은 이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신 일입니다. 그 일을 마치시고 사람들이 떠나달라고 요청하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그 마을을 배타고 떠나셨습니다. 그 한 사람을 만나주시기 위해서 그곳에 배를 타고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한 사람을 상관하여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 내려고 하실 때에, 귀신들은 예수님께 간청을 합니다. 자신들을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고,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귀신들이 요청한대로 귀신들을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제 귀신들린 돼지는 미친 듯이 바다를 향하여 달려가 몰사합니다. 그렇게 해서 죽은 돼지가 이천여 마리나 되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귀신을 쫓아내시기 위해서 돼지 이천마리를 몰사시켰던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이렇게 못합니다. 귀신들린 한 사람을 위하여서 이천마리의 돼지 떼들을 희생시킬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뭐 예수님의 돼지가 아니었으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깝지 않게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후에 예수님께서 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귀한 목숨을 버려서 사람들을 구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편에서 사람들과 상관한다는 것은 늘 희생이 따르는 일이지만, 예수님은 늘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희생하며 사람들을 상관해 주셨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관심하시는 것은 잃어버린 한 영혼, 악령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관하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과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을 악한 영의 권세가운데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구원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절망의 무덤 사이에서 헤매고 있을 때에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께 나의 삶을 맡겨드리는 그것입니다. 그분은 거절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더럽고 추하고 병든 삶을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원래대로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에 우리의 추한 인생이 깨끗하고 거룩하게 세움을 받습니다.

고침을 받은 귀신들렸던 사람이 정상적으로 되자 원했던 것은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떠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허락지 아니하시고, 집으로 돌아가 이 큰 일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동안 귀신에 들려서 모든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 가족에게로 보내셔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그 가족까지 구원하는 일을 하도록 그를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을 때에, 나를 사로 잡고 있던 세상의 풍습과 악한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가정이 회복되고 온전한 삶으로 변화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과 상관하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의 풍조가 더욱 강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셔서 사람이 멀쩡하게 되고, 쫓겨난 귀신으로 인해서 이천마리의 돼지가 바다에 빠져 몰사한 소문이 동네에 들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보니 귀신들렸던 사람은 정상이 되어 앉아 있고, 자신들의 돼지는 바다에 빠져 몰살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요청한 것은, 자신들이 사는 그 지경에서 떠나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접하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지신 분이고, 귀신들린 자를 정산으로 회복시켜 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모시고 따라다녀도 시원치 않을텐데 예수님을 떠나달라고 그럽니다.

왜냐하면 그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 내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예수님은 자신들의 값진 재산인 돼지를 한 순간에 몰살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관심하는 것은 예수님의 관심과 달랐습니다. 그들이 상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관심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자신들이 재산인 돼지가 몰사해서 손해를 보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관심하는 것은 귀신에 들렸던 사람이 치유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곳에 계신다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기에 예수님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물질적인 손해를 주거나, 나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며 내 영역에서 나가달라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거절하고 상관하지 않기로 한 그 마을을 역사하는 것은 악한 영이 됩니다. 여러분 귀신은 자신을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했다고 했습니다. 떠나지 않고 악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마을에서 그 지방에서 떠나 주십시오.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떠난 마을에 무엇이 역사합니까? 귀신이 역사합니다. 악한 영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예수님과 상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나라가 기독교 신앙가운데 세워진 것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미국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워진 나라인데 그것을 외면하면서 관계없는 것처럼 행세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여전히,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상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그 한 사람을 만나시기 위해서 배를 타고 거라사 인 마을에 오셨던 것과 같이, 저와 여러분들의 형편을 아시고 우리에게 오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것과 같이 더럽고 추한 지경에 살아가고 있을 때에 불쌍히 보시고, 찾아와 주십니다.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기까지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깨끗하게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진정으로 관심하며 불쌍히 보시며 상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세상의 악한 영은 우리를 사로잡아 사람을 더럽고 추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습니다. 예수님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냐며 예수님을 떠나 살게 합니다. 예수님과 관계없는 사람들로 사회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상관하십니다. 적당히 상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까지도 희생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하며 회복하시고자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정말 상관하며 관심해야 할 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내가 상관없는 관계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 잡혀야 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삶을 예수그리스도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관심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경청하며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우리의 영육간의 삶을 회복시키셔서 온전히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관심을 기대하시고 체험하시면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친속에게 고하라고 하셨던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행하신 그 일들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실시간 인터넷 예배 접속 Rejoice 2020.03.21 7765
14 09/01/2013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라 [로마서 12:14-21] Rejoice 2013.09.02 13362
13 08/25/2013 - 나에게 붙어있는 레이블 [민수기 13:30-14:10] Rejoice 2013.08.26 14535
» 08/18/2013 - 나를 상관하시는 분 [마가복음 5:1-20] Rejoice 2013.08.18 15246
11 08/11/2013 - 성도가 따라가야 할 자취 [베드로전서 2:18-25] Rejoice 2013.08.11 14809
10 08/04/2013 - 예수님의 물음에 응답하는 삶 [마가복음 8:27-34] Rejoice 2013.08.04 15164
9 07/28/2013 - 넘어질까 조심하라(2) [고린도전서 10:9-13] Rejoice 2013.07.29 16474
8 07/21/2013 - 넘어질까 조심하라(1) [고린도전서 10:1-13] Rejoice 2013.07.24 16463
7 07/14/2013 - 가장 귀한 진주 [마태복음 13:45-46] - 조종건 장로님 Rejoice 2013.07.19 14529
6 07/07/2013 - 영혼의 갈급함 [시편 42:1-11] Rejoice 2013.07.07 17778
5 06/30/2013 - 고난 중에 기다리는 영광 [로마서 8:18-25] Rejoice 2013.07.01 26814
4 06/23/2013 -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한 여인 [누가복음 7:36-50] Rejoice 2013.07.01 20516
3 06/16/2013 - 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 [누가복음 7:1-10] Rejoice 2013.07.01 19103
2 06/09/2013 - 새로운 변화 [로마서 12:1-2] Rejoice 2013.07.01 16866
1 06/02/2013 - 수축된 단위의 불길 [열왕기상 18:30-40] Rejoice 2013.07.01 17212
Board Pagination ‹ Prev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ext ›
/ 3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연합감리교회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 감리교회 Korean Global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