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4/2016 - 자신을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2:15-21]
우리는
다음 주일에 교회창립 35주년을 맞이합니다. 1981년 9월 6일에, 미국 교회의 채플을 빌려서 처음 예배를 드린 것으로 시작된 교회가 이제
35년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세우셨고,
함께 하셨고, 지금까지 사용해 주고 계심에 감사를 드리며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교회창립 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교회를 원하시고, 우리교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관심하며, 오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자신의 영적인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편지를 통해서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이 충성된 하나님의 일꾼으로 드려지기를 원하고 이를 위해
힘썼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과 같이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디모데에게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리기에 힘쓰는 것은,
비단 바울과 디모데 같은 신앙의 위인들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모든 성도와 교회가 가져야 할 공통적인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리기에 힘쓰기 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을까에 관심하고 기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들로 드려지기를 위해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을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무엇을 하나님께 힘써 드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어떻게 하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힘쓰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많이 있지만, 가장 드리기에 힘써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전적인 드림의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5:2절에 기록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 되셨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합당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 힘쓰신 분도 없으실 것입니다.
온갖 고난과 수치를 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기 위해서 참으셨고,
그 때 십자가에서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토록 힘써서
하나님께 드린바 되었던 것은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 모두 죄인 된 저와 여러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그토록 힘쓰셨듯이,
이제 성도는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내 자신을 내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리기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각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로 자신을 드릴 수 있는지를 그릇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사도행전 9장 15절에서, 하나님의 그릇으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향하여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비유로 말합니다. “큰 집에는 그릇들이 많습니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귀히 쓰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귀하다고 여기면서 쓰는 그릇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입니다. 이러한 그릇들은 제대로 꺼내 놓지도 않고,
진열장에다가 두고 보다가, 아주 귀한 특별한 손님이 오면 그것을 꺼내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무그릇이나 질그릇 같은 것은 별로 귀하지 않게 사용합니다. 그릇이 보기에
싫증이 나거나, 조금이라도 흠이 나면 그냥 버려도 별 상관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한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릇된 우리가 주인되신 하나님께 쓰임받기에 합당한 그릇은 금이나 은과 같은
그릇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느니,
아니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벌과 같은 잘 사는 가정의 자녀로
태어나면 금수저,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집에서 태어난 사람을 흙수저를 물고 나왔다고 말을 합니다.
금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사람들도 그들을 잘 대접해 주고 대단한 인물처럼 받들어 줍니다. 그러나 흙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입니다.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 비해,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고, 사회적으로 높이 출세하거나 크게 사용받을 만한 기회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다고 귀하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을 나무로
만드실 수도 있고, 질그릇을 금그릇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깨끗한 그릇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깨끗한 그릇이 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성막을 만드실 때에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집인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머물면서 육개월 정도, 성막을 만드는 일에 힘썼습니다.
모세는 성막에 들어 갈 많은 물건들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만들었습니다. 십계명
돌판을 넣을 언약궤도 만들고, 성소를 밝힐 등잔도 만들었습니다. 떡을
올려놓을 떡상도 만들고, 향을 피울 향로도 만들었습니다. 성막의 마당에는
짐승을 잡아 제물로 태울 번제단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성막에서 쓰일 도구들을 만들 대에, 시시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언약궤나 떡을 올려 놓는 떡상은 조각목으로 그 틀을 만들고
그 나무에다가 금을 입혀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향을 피우는 분향단이나 등을 피우는 등잔대 같은 것은 모두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 38장에 보면 성막을 만들 때에 사용되었던
재료의 양이 나옵니다. 금은 27달란트 이상, 은은 100달란트 이상이 들었습니다. 한달란트가
34kg이라고 할 때에, 금은 1톤 이상이고,
은의 양은 3.4톤 이상이 성막 기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게
성막은 금과 은, 조각목이나 여러 천들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다 만들어진 후에, 즉시로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금이나 은과 같은 귀한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 쓰이기에 합당한 것은 아직 아닙니다. 그전에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그 물건들을 성별하는
과정, 곧 깨끗케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9:21-22절,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랴,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성막에
쓰일 모든 기구들에 기름과 피를 뿌려서 정결하게 했습니다. 기름과 피를 통해서 깨끗하게 된 후에야 비로서,
하나님께 쓰여질 합당한 성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정결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정결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더러운 세상의 죄를 씻어주셔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택해 주신 것은 사도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거룩한 그릇으로 쓰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깨끗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힘써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그런데 이렇게 깨끗하고 합당하게 사용되고자 원하지만, 깨끗하게 유지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선한
목적으로 사용되지 못합니다. 성도는 자신을 더럽히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더럽게 만드는 이런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된 것으로 인해서, 우리 안에 자꾸 더러운 것이 묻게 되고,
그것이 쌓이게 되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일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16절에서 말했듯이, 바로 “망령되고 헛된
말”입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이란 경건하지 못하고, 진리에서 벗어난 거짓된 말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말들이 성도를 더럽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사도 바울의 주위에 그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입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지 못한 사람들인데, 왜냐하면 망령되고 헛된 말에 현혹되어서
그 말들을 퍼트리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말이 얼마나 경건을 훼손하고 더럽게 영향을 끼치는지
악성종양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온 몸에 퍼져서, 피부를 짓무르게 해서
고름을 나게 하고, 가렵고 아프게 해서 사람을 흉하게 만드는 것이 악성 종양입니다. 그들이
했던, 악성종양과 같은 말들 중에서 하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거짓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유행했던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입니다.
영지주의사상은 플라톤의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서, 영적인 것은 선하지만,
물질적인 육체는 악한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영적인 부활은 인정하지만, 악한 육신적인 부활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보이셨던 그 몸, 도마가 만져 보아야겠다고 말했던 부활의
몸이 실체가 아니라, 환상과 같은 거짓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말이, 여기 계신 분들에게는 허황된 말과 같이 여겨지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실처럼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그러한 철학 사상 가운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그럴듯한 말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에 근거한 말이 아니라, 세상적인 철학 사상에 근거한
말입니다.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과도 같이 퍼져 나갔고, 그들의 말은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말 중에는 진리가 아닌 더럽고 거짓된 말로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사람들이 세상적인 지식과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악성 종양과 같이 성도의 믿음을 더럽히고,
무너뜨리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지금이 어느 때인데
하나님의 존재를 믿냐?"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업신여깁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세상의 종교가 다 똑같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산의 정상에 오르려고 할 때에, 여러 등산로가 있지만 결국 산 꼭대기와 연결되어서
정상에 도착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어느 종교를 믿던지 상관없이 모두다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
그렇게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러한 그럴듯한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을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불경건한 문화가 악성종양과 같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금지하고 있는 동성애가 합법화 되어서, 도리어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때가 되었습니다. 2015년 7월에
New York Daily News 라는 인터넷 신문에 이상한 기사가 떴습니다. "Dutch
woman to marry dog after cat-husband dies, 고양이 남편이 죽은 후에, 개와 결혼한 네달란드 여인" 입니다. 그 여인은
16년 동안 살아온 고양이 남편을 Kidney Failure, 콩팥이상으로 잃은
후에, 그리스에서 살 때 해변가에서 만난 집이 없는, 유기견을 남편으로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곧 그 개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그 당시에 보도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과 말들, 문화들은 망령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경건하지 못한 문화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악성 종양과 같이 이 사회에 퍼져 가고 있고,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주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빠져들게 되면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오염되고,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일꾼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를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불경건과 거짓된 것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 우리를 정결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와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불경건하고 거짓된 말들이 악성 종양과 같이 퍼져나간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분별하여서 진리 가운데 경건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사로 잡혀 있어야 합니다. 시편 119: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살아갈 때에, 우리의 정결한 삶이 유지되고,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사람으로 드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깨끗케 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자기를 깨끗한 그릇으로 드리기에 힘쓸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시고자 하시는 지를 말합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함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릴 때에,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에 사용하시기를 원합니다.
비록 세상이 악성종양과 같은 악한 말들로 인해서 세상이 악하게 변하여 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 앞에 드려진 깨끗한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하시고자 원하십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불러 주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선하게 사용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악성 종양과 같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서 어긋난, 망령되고 헛된 말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거짓된 것을 진리로 착각하며, 더러운 것을 깨끗한 것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말을 하게 되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괴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망령되고 헛된 말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행하는 깨끗한
그릇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 땅에 드러내는 사람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제물로 드리기에 힘쓰심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 땅에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사도바울을 당신의 그릇으로 택하셔서 이방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선한 일들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우리들도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드러내는, 당신의 그릇으로 사용하고자
원하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주님의 몸으로 세워주신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의 악성 종양과 같은 더러움들을 분별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 땅에 드러내는 깨끗하고 신령한 주님의 몸이 되고, 각 지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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