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8/2016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마가복음 5:21-43]
설교: 마가복음
5:21-43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사람이
살다 보면, 두려운 상황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내 앞에 놓인 일들이, 나의 능력 안에서 그럭저럭 해결될 일이면 두렵게 여겨지지 않지만,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여겨지면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이럴
때 두려움을 해결하는 방법 중에서 하나가 그 상황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능력이 없지만,
내가 의지하는 사람의 능력을 믿기에 안심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에 공동묘지를 근처를 지나가는데 왠지 무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공동묘지를 거의 다
지나가는데 어떤 꼬마 여자 아이의 웃음 소리가 나서 보니 깜짝 놀라서 주변을 살펴보니, 한 아이가 공동묘지
근처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겁 없는 아이를 보면서 묻습니다. "넌 공동묘지가 근처인데 무섭지 않니?" 그러자 이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뇨, 하나도 안 무서운데요? 우리
아빠가 이 공동묘지 관리인인데요, 귀신 나오면 이 아빠가 다 없애 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놀라고 그랬어요.우리 아빠가 여기서 최고로 쎄다고 그랬어요." 비록, 아버지의 허풍이 좀 문제이긴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그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때로
성도의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적으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에는 두려운 상황에 있어도 두려움에 사로 잡히지 않고 담대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작은 것에도
두려워하며 불안해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두려움 가운데 예수님을 찾아온 한 회당장이 나옵니다. 이 회당장은 자신의 딸이 병들어 죽을
것 같은 두려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이러한
회당장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 맞은 편, 바닷가에 도착하셨습니다. 그 때에 한 남자가 예수님께 와서 발 아래 엎드려서 간절히 구합니다.
"예수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합니다. 1. 그 남자는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입니다. 회당장은 회당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 생긴 유대인들의 모임장소입니다. 바벨론에는 하나님을 제사하는 성전이 없으니까 제사는 드릴 수 없고, 함께 모여서 율법말씀을
배우고, 간단하게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회당이 된 것입니다. 이 회당은
예수님 당시에도 지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회당장은 회당건물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예배순서를 작성하고, 회당의 질서를 유지하고, 일부 재판의 일도 관여했다고 합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회당장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회당장 야이로가 지금 딸이 병들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가운데서,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서 딸 아이를 살려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야이로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딸 아이가
다 죽어가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안수해 주시면, 아이가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안고서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절망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만이 진정한 소망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뛰어 나오게 만들고, 예수님을 더욱 간절히 바라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두려운 일을 만날 때에 가장 사모하며 바라보아야 할 것은, 나를
두렵게 하는 문제도 아니고, 그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세상적인 권력자나 물질이 아닙니다. 야이로와 같이 두려움이 엄습할 때에 주님 앞으로 뛰어 나와 무릎 꿇는 자가 믿음있는 자요, 지혜로운 자입니다. 2. 야이로는 자신에게 닥친 그 두려움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찾게 되었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야이로의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말에 따라, 딸을 고치러 회당장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런데
야이로의 집으로 가던 중에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여인은 야이로의 믿음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더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혈루증이라고 하면 피를 하혈하는 병입니다. 혈루증은 부정한 병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고통당하는 여인을 당하여서 불쌍한 마음이 아니라, 도리어 멸시하는 눈으로
대했습니다. 그 여인도 어떻게 하면 그 병을 고쳐 볼까해서 많은 의사를 찾아 다녔지만 돈만 허비하고,
병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그 여인이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다고 했는데, 12는 성경에서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곧 그 여인이 이 혈루증에 완전히 사로잡힌 세월을 지내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별로 소망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가지고 있던 믿음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그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소망을 가지게 했고, 그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자신의 몸에 있는 병이 사라지고 건강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능력이 그 여인에게 나가신 것을 아시고서, 그 여인을 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라고 말씀
하시고, 보내십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그 믿음의 대상자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은, 회당장 야이로와 혈루증여인을 예수님께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두려운 삶의 순간에 예수님 앞에
무릎 꿇게 했고, 그 옷자락을 만지게끔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예수님께로 나를 이끌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며,
자신을 만져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이끌려
간다고 한다면, 예수님보다는 다른 것을 더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당신에게로 온 혈루증 여인을 그 믿음대로 고쳐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에 대해서 더욱
신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반드시 자신의 딸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더 확실해 졌을 것입니다.
3. 그런데, 그 때에 야이로에게 아주 슬픈 소식이 날아 옵니다. 예수님과 혈루증 여인이 대화하고 있는 사이에,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병든 아이를 고쳐주실 예수님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은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고 여기서 끝내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생각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딸이 죽기 직전이라도 살아만 있으면 그 병에서 살 가능성이 있겠지만 이제 죽었으니 모든 소망이 끊어졌고,
믿음도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생활을
하다가 보면 야이로와 같은 상황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야이로처럼 예수님 앞에 나와서
부르짖고, 예수님께 매어 달리며 살았는데, 그 믿음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절망스러운 일만이 잇따르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다 필요가
없다고 회의에 들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목숨을
가져 가신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필요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더 크고 굳건한 믿음의 단계로 이끌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딸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야이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야이로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과연 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뭘 믿으라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회당장의 두려움을 아셨습니다.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두려움과 좌절의 상태를 아셨습니다. 내가 그토록 믿고 매달렸던
것들이 끝났다는 두려움을 아셨습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아이가 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었는데,
이제 딸이 죽었으니 이제 모든 믿음의 내용들이 허무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회당장에게 있어서 이제 딸이
죽었다는 그 두려운 현실은 회당장의 몫인 것입니다. 이 때는 예수님도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고, 예수님은 나와 멀리 있는 것 같고, 별개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야이로야,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말씀은 곧,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가 두려워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더 악화되었어도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죽을 병든 딸 아이를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말고, 도리어 죽은
딸 아이까지도 살리실 수 있음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사람에게는 죽는 것이 두려운 일이고 절망적인 것이지만,
예수님께는 병이 들었던지, 죽었던지 상관없이 능히 살리실 수 있는 분임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원하셨던 믿음이었고,
저와 여러분에게 요청하시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한
성도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데도
자꾸 상황만 악화됩니다. 이번에 일로 인해서 제 인생의 바닥을 친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러한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목사님, 바닥을 쳐서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밑에 또 바닥에 있더라구요." 이
때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해라"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고 놓아드려야겠다고 생각되어지는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고, 그 보이는 것이 절망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만 믿으라고 합니다. 그럴 때에 그 두려움이 물러가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이 더욱 더 굳건하게 세워지는 줄로 믿습니다. 다윗
같은 경우에는 두려운 상황을 많이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그가 시편 56:3-4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라고 도리어 반문합니다. 두려운
날들은 다윗과 같이, 야이로와 같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닥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두려움에 사로 잡힌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을 두렵게 것이 어떠한 형태이던지 간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믿을 때에 두려움에 사로 잡히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의 상황은 변함이 없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더욱 의지할 때에,
더 이상 그날은 두려운 날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날이 되었던 것입니다.
4. 회당장 야이로에게도 딸이 죽은 그날이 두려워하는 날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시고, 계속 가십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로 인해 통곡하며, 장례로 시끌 복잡한 사람들에게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이가 죽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가셔서 죽은 아이에게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신 후에 죽음에서 깨어난 그 아이를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십니다.
아이가
죽었다고 슬퍼하며 통곡하던 사람들이,
죽은 아이가 살아난 일로 인해서 크게 놀라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두렵고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서 의지했던 야이로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야이로에게 이 날은 더 이상 두려움과 통곡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의지했을 때에 그 두려움이 변하여 기쁨과 찬송이 되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갈 때에,
야이로나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과 같은 일들을 종종 경험합니다. 자기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랑하는 딸이 병에 걸려 죽을 것 같고, 평생 혈루증가운데서 고통 받으며 살다가 말라 죽을
것 같은 상황도 있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려움 상황을 주시는 것은,
그 두려움을 해결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의지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싸인인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인생의 해결자 되심을 믿고 찾아 그 발 앞에 엎드리고, 그 옷자락을 만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러한 소망까지도 거두어 가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것으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여기가 제 믿음의 한계입니다.
이제 저희 집에 그만 오셔도 됩니다."라고 생각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도 여전히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 내가 내 집에 가야겠다.
너의 더 심각해진 그 삶의 현장으로 여전히 내가 가야겠다. 다만 너는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망의 순간을 주실 때에,
우리로 바닥에 떨구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의 믿음을 더욱 높은 단계로
이끄시고자 하심입니다. 내 경험과 지식에 제한된 믿음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의 능력에 입각한 믿음으로 이끄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보기를 원하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그 두려움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야이로와 같이, 혈루증을 앓는 여인과 같은 일들이 닥쳐올 때에, 다윗과 같이 두려운 날이 닥쳐 올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도리어 두려운 날이, 주님을 의지함으로 찬양의 날로 바꾸어지고, 그 믿음이 더욱 더 강건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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