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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한 부대가 무인도에 정찰을 나섰다가 적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정찰을 갔던 군인들이 적의 공격에 무참히 쓰러지고, 병사 하나만 겨우 진지로 귀환했습니다. 진지로 돌아온 병사는 상사에게 전투 상황을 보고 한 후, 부상 때문에 남겨 두고 온 전우를 꼭 찾으러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중대 하사는 이미 전우는 죽었을 것이고, 그곳에 가는 것은 자살행위니 가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전우와 함께 부대로 귀환할테니 허락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중대 하사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알고, 어쩔 수 없이 그를 다시 현장으로 보냈습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그 병사는 몸에 중상을 입은 상태로 낙오한 전우를 들쳐 업고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등에 업힌 전우는 이미 숨이 끊어져있었습니다. 하사는 안타까워하며 말합니다. "봐라, 내가 가지 말라고 했을 때에 말았어야지, 전우는 죽고 너도 이렇게 큰 부상을 입었으니 이게 무슨 헛고생이냐?" 그 때 병사가 말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 친구가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는 '네가 올 줄 알았어'라고 말하며 기뻐했습니다."

전쟁터에 있는 군인들 간에는 전우애라는 것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상황에서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각별한 관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의 관계도 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기 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먼저 죽음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심을 기억하며, 나 자신도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영적인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에 우리도 그와 함께 죽음에서 다시 영생의 생명을 얻었음을 함께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동일한 경험을 맛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경험을 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죽고 다시 살았으면 과거의 죄 된 삶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함께 죽고 사는 것이 어떠한 의미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변화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곧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임을 깨닫고 체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외면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은 살리면서 왜 너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느냐면서 조롱을 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을 했습니다. 예수 자신의 문제이지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나와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자신을 죽음을 외면하는 그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또한 그들의 죄를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예수님의 죽음이 나와 상관이 없고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나의 죄로 인한 것이고,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돌아가셨음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로 인해서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죄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야 함을 깨닫고 경험해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의 삶에서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못 박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 죽은 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실 때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서 영생을 얻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들에게 말합니다. 과거 다시 살아나기 전의 삶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명령하는 것이 위의 것을 찾으라그리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살아난 사람들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골로새교인들에게 사도바울이 한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아직 땅의 것만을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하늘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관심이 위의 것, 곧 하나님의 나라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사신 후에 하나님의 나라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믿는 자들이 땅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올라가신 그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와 같이 죽었다 살아난 너희들도 나와 같이 이곳에 있어야 하니, 이 곳, 위의 것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2.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위의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땅의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위의 것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아직도 이 땅에 있는 지체에 얽매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있는 지체’라고 함은, 이 세상을 근거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본성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근거가 이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보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있는 육신의 소욕에 충성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겉으로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영적으로는 병들게 만드는 삶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죽이지 않으면 영적인 삶이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2011년에, 우리교회에 다녔던 유학생들과 뉴멕시코에 있는 산타페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한 미술관을 들어갔습니다. 그 미술관은 한 미국 원주민, 인디언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가 있었습니다. 많은 작품들이 미국 원주민의 시각에서 서양의 문화를 바라본 비판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한 방이 있었습니다. 그 방의 이름은 "Last Supper" 였습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제목이 왠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관련된 기독교적인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가 해서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방안에 놓여있는 만찬테이블에는 눈처럼 하얀 물건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습니다. 눈에 보기에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게 최후의 만찬인가 궁금해 하며, 가까이 가보니 그 음식들은 모두 하얀 설탕가루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기에, 그리고 혀로 맛보기에는 좋은 것 같지만,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건강치 못한 음식이, 서양문화의 음식문화임을 비판하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살다가 보면 그것이 이 땅에서 좋아 보이지만, 우리의 영은 병들고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우리의 육체의 소욕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5절에, 우리의 영적인 삶을 병들게 하는, 우리가 죽여야 할 땅에 있는 지체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요약을 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우상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우상을 만들고 절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더 많이 벌고 잘 살게 해달라고 나무와 돌을 조각해 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밤낮으로 비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나의 욕심으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내 성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음란한 일을 합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부정과 악한 일들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탐욕은 우상숭배요,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야보고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로부터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이 다시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탐심을 가지고 믿음생활을 한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상화시키는 것이 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생활하는 자들은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욕심의 마음을 죽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이 쌓아놓고 채우고, 만족하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영원하지 않고 허무한 것임을 잘 아시기에, 이제 나와 함께 다시 살아서는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위의 것을 찾고 생각하면서 바라보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라고 말하면서, 그 위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위의 것을 찾고 생각하는 삶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셨던 분이고, 그 영광 중에 하나님의 우편에 낮아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8절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이에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셨고, 이제 그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된 모습으로 이 땅에 다시 나타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자신의 영광, 자신의 높아짐과 자랑을 위해서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만이 높아지기를 위해서 사셨던 분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 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셨듯이, 예수님과 같이 다시 살아난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빌립보서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하셨습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낮고 천한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장차 저와 여러분도 우리가 이 땅에서 영광을 돌렸던 우리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땅에 있는 내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는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탐욕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주님의 영광 중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린아이가 길을 가다가 동전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그 동전은 커다란 돈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떨어진 동전을 찾기 위해서 걸어다닐 때마다 땅만 쳐다보면서 다녔습니다. 그래서 일평생 땅에 떨어진 많은 물건들을 주었습니다. 잠시라도 다른 곳을 바라보면 땅에 떨어진 것을 지나칠까봐 제대로 머리도 들지 못하고, 평생을 땅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땅만 바라보다가 목과 허리가 땅을 향하여서 굽어서 그는 제대로 하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 삶을 마감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자꾸 땅을 향하여서 구하는 땅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서 영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날마다 땅으로 향한 우리의 허리를 펴고, 목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살아난 자들이 살아가는 법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구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땅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 영광의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하늘의 영광된 것들을 관심하며 바라보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 있는 지체의 삶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영광을 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탐심을 하면서 그 욕심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자신의 삶의 것이 잘 채워지고, 부족함없이 넉넉하게 살면 그것이 영광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 땅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영광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이 땅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에 있습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이 땅에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서 마련해 두신, 하늘의 것들을 바라보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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