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4/2024 -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 [시편 119:105-112]
https://youtu.be/cq34UhH0rpc
최근에 한 뉴스를 보고서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6월 19일에,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회에서 루이지애나의 모든 공립학교 교실에 기독교 십계명을 게시하도록 의무화한 법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유치원부터 주립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립학교 교실에 ‘크고 읽기 쉬운 글꼴’로 기독교 십계명이 포스터 크기로 만들어져서 게시될 예정입니다. 이 법안이 통과된 후 이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내겠다고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 소속의 도디 호튼 하원의원은 “십계명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법은 교실에 도덕적 규범을 두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사실, 과거에는 미국의 공립학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관공서나 공공건물에 십계명이 새겨진 조형물이 서 있고,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 시절, 정치과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미국 공립학교에서 십계명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것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았는데, 당시 러시아와 무기 경쟁, 과학경쟁을 하면서, 과학을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진화론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번에 루지애나주에서 십계명을 공립학교에 붙이기로 한 것은, 단순히 도덕적 가르침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신앙적인 고백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 하나님의 말씀없는 하나님의 백성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율법, 말씀이었습니다. 다른 이방 민족들은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두고 제사하며 섬겼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을 주셔서, 이방 민족들과 같이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여기고 섬기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내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을 주셨고,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손수 새기신 십계명 돌판을 두개를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기독교인의 차이입니다. 성도가 영이신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분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면서 사는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니다.
사람들끼리도 상대방이 내가 말을 할 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통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할 때에 주의하여 경청하며, 말할 대로 행할 때에, 그 사람이 나를 존경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말할 때에, 소홀하게 여기며, 그 말을 따르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고 여겨서 아주 기쁜 나빠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며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하게 여기며 살아간다면,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말씀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광야를 지나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며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를 광야에서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시편 19편에 보면, 다윗은 많은 순금보다 여호와의 법을 더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또 다른 임재의 형태임을 깨달아, 늘 귀하게 여기며,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으신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할 인생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끝을 향하여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이 걷고 있는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저 눈 앞에 놓인 갈림길을 보고서, 좋아 보이는 길, 쉬울 것 같은 길, 나를 즐겁게 해 줄 것 같은 길,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 등을 택하여 갑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의 성향을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믿는 제자들이 그 길을 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의 끝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13-14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사람들중에 자신이 가는 길이 멸망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도 그 길을 택할 사람이 누가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회사에서 퀴즈 대회가 열렸습니다. 오, 엑스 퀴즈인데, 사회자가 낸 질문이 맞다고 생각하면 오른쪽으로, 틀리다고 생각하면 왼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회자가 역사문제를 냈는데 제대로 답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오른쪽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를 보고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오른쪽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한 사람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답은 엑스 였습니다. 왼쪽에 있는 사람만이 정답을 맞힌 것입니다. 사회자가 그 어려운 질문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그 사람은 자신은 정답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다만 아침에 회사에 오기전에, 아내가 사람이 많은 곳에 덩달아 가지 말라는 말이 기억나서 사람이 많이 가는 곳에 가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하더랍니다.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해서 그것이 곧 바른길이라고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어야 생명으로 간다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고 편안한 길을 따라 가며, 자신들이 바른 길을 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어느 길로 가든 그 결과는 같으니 상관없으니 네가 원하는 길을 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원주의’ 라고 불리는 신학사상이 있습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과 같이, 이 신학이 주장하는 것은 모든 종교는 하나로 통한다고 주장합니다. 산의 정상으로 갈 때에 여러 다른 길들이 있지만 결국 정상에서 만날 수 있는 것처럼, 각 시대와 지역마다 다른 종교들이 있지만 그 종교들은 결국 구원으로 이끈다는 사상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말을 한 사람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존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이 우리 앞에 생명과 멸망의 서로 다른 길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세상 사람들이 가지 않는 좁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불안해 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이 넓은 길에 함께 있다면 이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은 우리로 세상 사람들이 택하기를 주저하는 좁은 길을 택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예수님이 걸으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생명되신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걷지 않은 길을 이 땅에서 걸으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고, 지금은 부활하시어 영생에 이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세상 사람에게는 인기없는 좁은 길위에서 입니다. 비록 좁은 길은 많은 사람과 함께 하지 않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이고, 영생에 이르는 길이 분명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인기없는 길을 걷는 것이 성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2. 그러면 그 영생의 길을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를 안다고 해서 그 목적지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나 안내문이 있어야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적지를 주셨을 때에는, 그곳에 이를 수 있는 방법도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본보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에 이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가나안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가는지 전혀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말씀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가나안 갈 수 없는 무지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나안 땅에 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은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에 어둡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영적인 어둠과 무지함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빛이 되시는 분이 있으십니다. 요한복음 8:12에는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빛된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고, 생명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 집에 닭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닭을 닭장으로 넣으려고 하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닭이 잘먹는 배추 잎을 찢어서 배추잎 조각조각을 닭장까지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닭이 그 모이를 따라 먹으며 닭장까지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는 재물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유행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길은, 생명되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를 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재물, 사람, 이 세상에 어떠한 것도 우리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방자함입니다. 잠언 29:18절,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없으면 사람들이 방자해져서 자기 마음대로 무질서하게 삽니다.
우리의 삶이 말씀의 조명을 받아서 살면, 잘 정돈된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자녀가, 우리의 가정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면, 그 안에 하나님의 계시, 말씀의 빛 아래 있는지를 살펴 보십시오. 성도는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을 복이라고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복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고 그 말씀을 따라갈 때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영생의 복이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106절에, 시인의 말씀에 대한 결단이 나옵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선하고 의로운 일이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니,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과 차별을 당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는 당장 나의 죄성이 하나님의 의로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못들은체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말씀을 지켜살기고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환경과 형편에 따라서 지키기도 하고, 지키지 않기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의 결단을 하고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결단을 축복하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108절에, 시인은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가르쳐달라” 고 구합니다. 자원제물은 기쁨으로 자원해서 드리는 제물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고 자원제물과 같이 기뻐 찬양하며, 그 말씀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한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주의 증거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시인은 말씀을 영원한 기업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재산, 유업으로 물려주는 삶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인 풍요와 성공, 물질과 같은 것들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주의 증거들, 하나님의 말씀을 유산으로 물려주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의 즐거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의 말씀이 유산으로 물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유산으로 물려줄 때에, 자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생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살아가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결단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하셔서,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결단한 대로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로 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에, 그 좁은 길을 걸으셨던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믿음의 선조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 여러 시험과 도전들, 유혹들이 있지만, 주님을 대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며, 순종하는 이들에게,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또한 기쁨도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걷지 않아서, 생명으로 가는 길이 좁고 또렷하지 않을 지라도, 우리가 빛되신 말씀에 순종하며 함께 길을 걸을 때에 생명으로 가는 길이 더욱 넓어지고 또렷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더 확실하게 말씀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 만나는 끝날까지, 늘 말씀의 길 위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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