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5/2018 - 한 알로 시작되는 풍성함 [요한복음 12:20-25]
오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명절을 예배하러 온 헬라인 몇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빌립에게 가서 예수님을 뵙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해서 헬라인들이
자신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헬라인으로 하나님을 믿고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관심하는 자들이었고, 그러한 이유로
개종했고 또한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헬라인들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들으신 예수님은 동문서답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영광된 역사를 이루게 될 때가 왔음을 그들에게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한 알의 밀알에 관한 말씀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얻으실 영광은, 자신이 한알의 밀알과 같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을 때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얻으시는 영광은, 이 세상에서 어떠한 권세를 얻고, 높은
자리를 얻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추대받고, 인정받고, 인기를 누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임할 영광은 예수님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죽으심으로 더 많은 열매를 맺을 때에 그것이 참된
영광이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열매를 맺는 풍성함은 예수님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구원받은
자들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죽으신 것은, 우리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데,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것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을 때에 원하셨던
것은 단순히 이 땅에서 생존하면서 살아갈 것을 원하신 것은 아닙니다. 생존이 아니라 풍성한 삶을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0: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했을 때에, ‘더 풍성히’는
‘페릿소스’라는 단어를 쓰는데, “풍성한, 필요 이상의, 충분하고도 남는”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은 단순히, 이 땅에서 생존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을 위해 낮과 밤으로 일하면서 살아야 하고, 생존을 위해서 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 공부하고, 생존을 위해 돈을 벌고, 생존을
위해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싸워야 하는 삶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우리로 풍성한 삶을 이루게 합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뉴져지에 있는 아콜라 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에 다녀왔습니다. 이 번 총회를 통해서 어느 때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누렸습니다. 특별히 예배시간과 기도회시간을 통해서, 영적인 회복과 힘을 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흘간 있었던
총회 기간 중에, 오늘날 교회들이 처해있는 상황들을 진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처한 상황들은 그렇게 좋은 상황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노령화되어가고, 교인들의 숫자도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성정체성에 관한 이슈들로 인해서 교회가 더 큰 위기에 닥칠 것 같은 위기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을
까에 관심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가 생존만을 위해서 힘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번성하고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총회 기간을 통해서
우리는 생존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풍성함을 이룰 것인가를 관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연합감리교회에서
행하는 사역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난 2월에 달라스에서 있었던 여선교회 세미나의 강사로 오셨던 그레이스 오 목사님의 사역도 소개되었습니다. 그레이스 오 목사님은 시카고의 우범지대에 있는 흑인교회에 파송을 받아 흑인 분들을 섬기고 계십니다. 그레이스 오 목사님께서 남자도 하기 힘든 그 일을 하시게 된 것은, 오목사님게서
한국인들의 이기성을 질책하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고 합니다. 한국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흑인분들을 상대로
가게를 운영하고 사업을 하면서 잘 살게 되었는데도, 이를 그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 도리어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 말씀을 듣고 흑인분들에게 빚진 것을 갚는 심정을 가지고, 흑인 공동체를 섬기는 일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총회 두번째 날에는
한 그룹은 연합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홈리스분들에게 음식을 나누어드리고, 생활에 필요한 옷과 물건들을
나누어드리는 기관에 가서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저는 멘하탄에 있는 유엔본부 길 건너편에 위치한 연합감리교회
여성들이 건립한 The church center for the united nations 를 방문하여
세미나를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사회적인 약자들과 소외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또한 여러가지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고,
길 건너편에 있는 유엔에 지속적으로 개선안을 제안하고 관철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며 헌신하는 그러한 사역들을 통해서, 이
땅이 더 풍요로워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의 삶을 보면 생존을 위한 삶으로 보여집니다. 죽지 못해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의미로서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단순한 생존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있던지,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풍성한 삶을 기대하시고, 또한 그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교회에
연로하신 한 여자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매 주중에 교회에 나오셔서 교회를 청소하시는데, 워낙 연세가 많으셔서 목사님께서 그 권사님을 보시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권사님, 힘들지 않으세요? 이제
그만 하시고 좀 편히 지내시는 게 어떻세요?”라고 말씀을 드리니, 그
권사님께서 정색을 하시면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제가 하나님과 이 교회에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커서, 조금이라도 이를 갚으려고 하는 것이니 그런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하시더랍니다. 우리교회에도
여러가지 모습으로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시고, 선교와 전도, 교육의
일들을 감당하시는 분들을 볼 때, 그분들의 삶이 생존의 삶이 아니라,
이 교회와 이 세상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는지 보게 됩니다. 나이가 많고
적고, 몸이 연약하고 강하고,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2.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의 시작은, 먼저 한 알의
밀알과 같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씨앗을 따진다면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씨앗들일 것입니다. 1800년대에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발굴할 때에 미이라와 함께 발견된 것들이
밀알들입니다. 고대 이집트 장례의식에서 씨앗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데 그 밀알들은 매장(burial)과 부활(resurrection)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불멸을 믿는 이집트인은 부활의 의미로, 씨앗을 죽은 시체와
함께 묻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의미하는 밀알들은 2000년이
훨씬 지나도 다시 살아나지 않고 그대로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다시 살아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한 필수과정입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곧 땅과 만나는 과정이고, 땅으로부터 부활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순간입니다. 밀알은 스스로 부활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땅에 떨어져 죽어 땅과 만남으로 부활의 생명, 풍성한 열매를 맺을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생명력을 저희집 앞 도로에 난 잔디를 보면서 느낍니다. 여러분들이
집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큰 과제중에서 하나가 잔디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주택을 관리할
때에 잔디를 잘 관리하려고 애를 쓰지만 제가 생각하는 만큼 잔디가 잘 자라지 않아 고민입니다. 봄에는
잔디와 더불어 잡초들이 파랗게 마당을 채워서 그럭저럭 잔디밭처럼 예쁘게 보이는데, 여름이 되어 비가
내리지 않고, 물주는 것을 신경쓰지 않으면 이내 매말라 갑니다. 그래서
잔디밭이 아니라 황량한 광야와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집 앞을 지나는 아스팔트의 틈새로 나와
있는 잔디들이 있는데, 그 잔디들은 희안하게도 그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늘 푸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잔디밭이 있는 그 아스팔트가 지대가 좀 낮아서 비가 오면 늘 물이 고이는 장소이고, 또한 아스팔트가 틈이 생겨서 물이 그 안으로 들어가 물을 저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은 다 말라도 그곳은 아스팔트 밑에 있는 물들과 접해 있어서 늘 푸르릅니다. 잔디밭도 아닌 아스팔트위에 생긴 잔디들이라서 제발 죽어줬으면 하고 잔디를 긁어 내는데도, 며칠지나면 또 다시 푸르게 올라옵니다. 한 알의
밀알은 그 자체로 부활할 만한 생명력, 많은 열매를 맺을 영양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땅에 떨어져 죽어, 땅과 만나 하나될 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싹이 나고, 줄기가 올라와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2: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의 사람들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나를 부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접하게 되고, 그분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게 됩니다. 내가 부정되어지는 순간이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순간이고, 그분으로 주시는 영양분을 가지고, 주의 뜻을 이루는 풍성한 열매의
삶,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3. 우리의 삶이 풍성해 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은,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죽임으로 부활을 경험하고 열매를 맺어가는 삶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죽음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었던 것은 사랑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은 나의 생존을 위해서 힘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힘쓰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 자신을
죽이는 사람이 기독교인입니다. 텍사스에서
한 가정을 이루고 살던 남자가 자기 만을 위해서 살아보겠다고 아내와 네 자녀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30년
동안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돈 한푼 없이 죽었는데, 마지막 유언을 남기기를 자기의 시체를 고향 텍사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자녀들에게 남겼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던 자식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모두 분노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와 무슨 상관있어? 그가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그 사람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왜 우리가 그 시체를 장사하기 위해 돈을 들여 수고해야 하지?”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큰 아들은 아무 말없이 동생들의 불평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은 캘리포니아로 가서 아버지의 시체를 운구해 오기 위해 자기 트랙터와 농기계들을 저당잡혔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큰아들은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씌어 있을 뿐, ‘어떤 부모’라는 말은 없단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내 자신을 죽이고, 사람을 사랑하기에 나 자신을 죽이는 삶이, 생존을 넘어 이 세상에서 풍요를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법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나를 죽이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를 잃어 버리고 사는 가정이 있습니다. 교회안에서도 나를 죽이지 못해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교만이 땅에 떨어져 죽게 되면 겸손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혈기가 땅에 떨어져 죽게
되면 화목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의 오만과 편견을 버릴 때에 하나님의 뜻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자존심 하나 붙잡고 사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것도
놓아 버려야 합니다. 성도는 나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열매를 맺고 영광을 올려드리기 위해서, 내 자신을 죽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드러내는 영광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구세주로 오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삶으로 살아가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통해서 많은 열매를 맺는 풍요와 번성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열매가 있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보내심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은 내가 땅에 떨어져서 죽을 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죽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에
땅과 같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하나님 안에서 싹을 틔우고 성장해서, 주의 뜻을 이루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나를
죽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죽이는 것이 쉽지 않으셨습니다. 27절에 말씀하시길,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한 알에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은 그 죽을 때를
위함입니다. 내가 죽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열매를 맺어 영광을 돌리기 그 때를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는 삶이 되기를 원하고, 단순히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요하심을 경험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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