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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상대로 참 절망적이고 답답한 전쟁을 치릅니다. 그렇게 답답한 것은 블레셋에 있는 골리앗이란 거인 장군 때문이었습니다.  

24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 곧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다.” 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골리앗을 보니까 두려워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사울왕도 그 골리앗이 눈에서 사라져 주었음을 기대하며,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재물도 주고, 그의 딸도 주고, 세금도 면제해 주겠다고 공포합니다. 그 정도면 누군가 목숨 걸고 싸울만 한데,  누구하나 나서지 못하고, 두려움과 답답함 속에서 대치해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왕을 비롯해서, 이스라엘의 군대가 바라보는 것은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군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아주 좋은 이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용사였고, 몸도 크고 무기도 대단했습니다. 장군이었으니 그만한 전투력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만 골리앗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해서 전쟁에 이긴 양 자신 만만해 하고 거만하게 굴 수 있었던 것은 골리앗 장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도 골리앗은 커다란 의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에게 있어서의 싸움의 중심에 골리앗이있었습니다. 블레셋은 골리앗이 자신의 편에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우리에게도 골리앗과 같은 인물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커다란 위협이요 방해가 되었는지를 모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골리앗이라는 인물을 동경하며 부러워 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골리앗을 의지하고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골리앗과 같은 힘과 명예를 가졌으면 합니다. 세상의 인기와 권력을 누리면서 살아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골리앗에게로 향했던 사람들의 시선을 거부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 버린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과 싸울 것을 자청하였고,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해서 일대일 대결에 들어갔습니다.

그 싸움은 외형적으로 볼 때 누가 보더라도 결과가 예상되는 싸움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다윗이 쏜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강타하고, 골리앗은 그대로 쓰러집니다. 그리고 다윗은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빼어서 그의 목을 자릅니다.

그리고, 전쟁은 순식간에 역전됩니다. 골리앗이 죽은 모습을 본 블레셋 군대는 겁에 질려 도망가게 되고, 이스라엘 군대는 도망하는 블레셋을 그들의 성까지 추격해서 죽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라보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골리앗을 바라보며 한쪽에서는 두려워하고, 한 쪽에서는 의기양양하고 있을 때에, 다윗은 골리앗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기독교인의 과제 중 하나입니다.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라는 말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882년 자신의 저서인즐거운 학문(The Joyful Pursuit of Knowledge and Understanding)’에서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 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라고 그 당시의 신의 죽음에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니체는,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사고가 계몽되어지면서, 사람들이 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고, 관심하지 않는 모습을신은 죽었다.”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도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돌아가신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하지도 않고, 언급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여기고, 골리앗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이 세대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드러낼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들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굳건히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나타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나아갈 때에 어떠한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을 믿게 되고 담대하게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속에 있는 사울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낙담하지 마십시오.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터에 가게 된 것은 싸움에 참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전쟁터에 있는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안부를 살피고 오라고 했기 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터에 와 보니 이스라엘 군대가 완전히 절망가운데서 이미 정신적으로는 패배를 당한 상태였습니다. 골리앗 장군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서 조롱하고 모욕하는데도 감히 맞대어서 응수하지 못합니다. 골리앗이라는 사람으로 인해서 사기가 꺾여서 싸워보지도 않고 진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골리앗을 향해서 담대하게 달려갔던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은 골리앗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담대하게 외칩니다. “너는 칼과 창으로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칼과 창, 무기들이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그랬고, 이스라엘 군대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블레셋과 같은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여기는 이스라엘은 낙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사람이나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에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내 가정을 절망 가운데 구원해 줄 것이 돈과 권력과 같은 세상적인 것이라고 믿으며 그런 것 없으면 절망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구원자로 삼는 이들은 다른 것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해 담대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담대하게 행했던 것은 골리앗을 상대하기 전에, 이미 훈련된 것입니다.

다윗은 원래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을 치다가 보면 사자나 곰이 와서 다윗과 양떼들을 해하려고 공격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도 다윗은 맹수들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서 담대하게 맹수와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 믿음과 담대함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기 전에 사울왕에게 이렇게 담대하게 말합니다. 말합니다. 37절에,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라

다윗은 소년이지만 목자로서 자신과 양을 해하려고 오는 사자와 곰과 맞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다른 사람보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517년 독일에서, 마틴 루터가 천주교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에, 천주교회의 커다란 반발과 위협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마틴 루터는 외형적으로 볼 때 거대한 천주교 세력에 상대가 되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러기에 루터는 종종 좌절과 공포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절망 가운데 있던 어느날, 그의 아내 카타리나가 루터 앞에 상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루터가 아내에게누구 돌아가셨냐?”고 묻습니다. 그 때 아내, 카타리나가 루터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이 말을 들은 루터가 화를 내며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며 나무랬을 때에 아내가 대답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죽지 않고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이렇게 좌절하고 낙심할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하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쉽고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힘들고 절망스러운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도리어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더욱 경험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담대함을 주셔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또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은 믿을 때에,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강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기에는 여러 면으로 부족했습니다. 다윗은 양치는 목동에 불과 했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을 만나러 전쟁터에 왔을 때에, 큰 형 엘리압은 다윗의 모습을 보고서 화를 냈습니다.

네가 할 일은 양을 치는 일인데, 이곳에 와 있는 이유는 교만과 완악함을 가지고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온 것 아니냐?”

형 엘리압이 다윗을 볼 때에, 다윗은 이스라엘 적들과 싸울 수 없이 연약하고 어린 목동이었습니다. 철없이 전쟁이나 구경하러온 동생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형은 동생의 연약한 부분만을 보았지, 다윗이 가지고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다윗을 사용하십니다.

다윗은 변변한 무기도 없었고 군사훈련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골리앗을 이길 지혜를 주십니다. 골리앗을 칼과 창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물맷돌을 가지고 상대하도록 하십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과 같이 골리앗과 겨루기 위해서 칼과 창으로 상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다고 했을 때에, 사울왕은 다윗에게 갑옷을 입히고, 놋투구를 머리에 씌워 줍니다. 그리고 칼을 그에게 줍니다. 다윗이 사울이 주는대로 무장하고 한번 걸어 다녀 봤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렇게 무장하고는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골리앗을 칼로 상대할 것이 아니라, 물맷돌을 가지고 치면 되겠다는 지혜를 주십니다.

다윗은 사울이 준, 갑옷과 투구, 그리고 칼을 벗어 버리고, 막대기를 듭니다. 그리고 시냇가에 가서 부드러운 돌 다섯개를 골라서 자기의 가방에다가 넣습니다. 그 막대기는 그냥 막대기가 아니라, 끈이 달려 있어서 그 끈의 넓은 부분에 돌을 넣고 막대기와 같이 돌리다가, 끈을 놓으며 돌이 날아가서 표적을 맞추도록 하는 막대기입니다.

다윗의 모습은 모든 면으로 볼 때 연약하고 하찮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들고 있는 막대기도 별 볼일 없어 보였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다윗을 보면서, 골리앗도 다윗이 자신의 싸움 상대로 나온 것이 못 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저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 짐승들에게 주리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대단한 무기를 그에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양을 치면서 사용했던 막대기와 돌맹이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골리앗을 죽이고,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이고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강하신 일들을 행하기도 하십니다.

우리에게 경험되어진 것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지는 부분들에 대해서 우리는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하찮게 보이는 사람, 재능, 물질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7절에도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약한 것일 줄 모르지만, 하나님의 손에 들릴 때에 그러한 것들을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약한 다윗을 사용하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언제든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작고 연약해서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들려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간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존재하지 않거나 죽은 존재로 취급하는 사람들로 만연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직장이나 학교, 공식 모임에서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쓰지 말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며, 하나님으로 부터 시선을 돌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때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2013, 로이 코스트너 4 (Roy Costner IV)라는 고등학교 졸업생이, 졸업생을 대표해서 연설하기 위해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이는 졸업식 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학교 당국의 승인을 받은 연설문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연설문 대신 주기도문을 암송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연설문을 찢어 버리고, 사람들 앞에서 주기도문을 암송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모습을 본 청중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게 되고, 로이는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 채 주기도문 암송을 끝냈다고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다윗과 같은 어린 학생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속에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배 드리는 시간에만 잠깐 하나님께 집중했다가, 그 외에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처럼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처럼 행동하는데, 가정이나 직장에 가면 하나님이 여전히 죽어계신 듯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가족 간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대화와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가정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성도들이 모였을 때에도 세상적인 화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을 은혜를 나누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을 믿는 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이를 감당힐 담대함을 허락해 주십니다. 골리앗과 같은 상황을 만났을 때에 위축되지 마십시오. 성도들에게는 골리앗과 같은 세상적인 힘이 없어 연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존재와 같이 무관심하게 취급하는 이 세상을 향하여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 믿음의 가정, 믿음의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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