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7/2018 - 풍랑속에서의 믿음 [마가복음 4:35-41] - 웨슬리회심주일
우리의 인생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평안하기를 원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풍랑으로 인해서 두려움과 좌절을 경험하기 일쑤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게 되고,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믿음의 상태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셨는지 배에서 잠을 주무시고 계셨고, 그렇게 평안하게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면서 바다가 요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도 풍랑에 요동하면서 곧 침몰할 것 같았습니다. 이 때 제자들이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보니까 예수님은 그 풍랑 가운데서도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급하게 깨웁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잠에서 일어나신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 졌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배가 뒤집혀 죽을 것 같은 가운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텐데, 예수님은 그것이 믿음이 없어서 무서워하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있지 않다면 모를까,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 제자라면 비록 풍랑이 인다고 하더라도 두려움 가운데 있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갈릴리 호수에 일어나
풍랑보다 더 심하게 요동하는 것은, 제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을 자신의 스승으로, 그리고 구세주로 믿고서 따라다닌다고 했지만, 정작 풍랑의 위험속에서 그들의 믿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러한 풍랑의 유익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잔잔한 바다가운데 있을 때에는 다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풍랑 가운데 있을 때에 내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임을 믿고 살아가는지, 그 믿음의 정도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감리교 운동을
시작하신 존 웨슬리 목사님의 삶속에서도 나타납니다. 풍랑 속의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존 웨슬리 목사도 항해 중에 풍랑을 만나게 될 때에, 자신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자신의 믿음의 현실을 대면하면서 힘든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머무른 것이 아니라, 그 풍랑 이후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영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은 웨슬리 회심주일이라고 해서,
존 웨슬리 목사님이 1938년 5월 24일에, 영국 올더스게잍이라는 곳에서 경험한 영적인 변화를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신앙의 풍랑 속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와 존 웨슬리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믿음의 상태를 점검하기를 원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믿음의 도전을 극복했는지를 보면서, 영적인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감리교회는 존 웨슬리
목사님의 신앙적인 열심에서 일어난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의 목사인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청교도 신앙의 소유자인 어머니, 수산나
아네슬리의 열 아홉명의 자녀가운데 열다섯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존 웨슬리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지도로 어려서부터 기도훈련을 받았고, 성경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해서도 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친구들을 모아서 신성클럽, Holy Club 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신성클럽의
학생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늘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했으며, 고아원이나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그들을 돕고 또한 복음을 전하는 일들에 열심을 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볼 때에 존 웨슬리를 비롯한 신성클럽의 학생들은 별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신성클럽에 속한 학생들을 보면서 ‘Methodist’라고
부르면서 놀렸습니다. Methodist 는 “규칙쟁이”라는말인데, 신성클럽 학생들이, 자신들이
정해 놓은 경건의 방법을 철저하게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융통성도 없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놀리기 위해
만든 말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해진 시간과 방법대로 철저하게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들에게도 참 인상적이었던 것입니다. 감리교회의 중요한 유산중의 하나는 규칙적인 신앙생활입니다. 때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자신의 기분이나 처해진 상황에 따라 변덕스럽게
믿음생활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신앙이 지속적이지 못하고 잘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감리교회 스타일이 아닙니다. 감리교인들은 자신들이 기독교인으로서 행해야 할 마땅한 일들을 답답할 정도로, 근면하고 성실하게 잘 감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와 말씀, 예배생활과 같은 신앙생활이나 다른 이들을 돕고 구제하는 사회생활도 마땅히 해야 할 바로 여기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신앙인들이 감리교인들이었습니다. 2. 그런데 존 웨슬리 목사님에게, 갈릴리에서
풍랑을 만났던 제자와 같은, 그의 믿음을 흔들어 놓는 커다란 풍랑을 만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존 웨슬리는 옥스퍼트 대학을 졸업한 후,
옥스퍼트 링컨 칼리지의 교수(Fellow)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이후에 목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735년, 당시 영국의 식민지 중 하나였던 아메리카 조지아 서바나(Savannah)에 선교사로 가게 됩니다. 존 웨슬리는 조지아에 가기 위해 시몬즈호를 타고, 4개월 23일간의 긴 항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는 사이에 시몬즈 호가 몇 번의 풍랑을 맞게 되고 배가 전복될 것 같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풍랑을 만난 승객들은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리고
존 웨슬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풍랑을 만났던 제자들과 같이 죽음의 공포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존 웨슬리의 눈에 희안한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배가 요동하는 풍랑의 공포속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하며 평안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라비안(Moravian)이라고 불리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원래, 보헤미아(체코)의 모라비아라는 지역에서 개신교 기독교인으로 살았었는데, 로마 캐톨릭에
의해서 박해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모라비아의 개신교인들이 박해를 피해서 피난민으로 살다가 독일의 진젠
돌프라는 백작이 자기 땅에 그들을 거주할 수 있도록 해 주고, 그곳에서 안정된 신앙공동체를 형성합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경건한 신앙생활을 추구하였고, 또한 선교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존 웨슬리와 마찬가지로, 조지아로
선교를 가기 위해서 그 배에 올랐던 것입니다.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명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한 모라비안 교도에게 묻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모라비안 교도가 대답하기를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대서양을 건너 조지아 서바나에 도착해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서바나에서의 선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1년 9개월 동안 선교를 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고, 더 이상 선교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영국으로
돌아오는 항해길에서도 웨슬리는 풍랑을 만나게 되고, 그 때도 역시 웨슬리는 죽음의 공포속에서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때의 자신의 심령을 이렇게 그의 저널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인디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갔다. 그러나 오! 나는 누가 구원할 것인가? 이 불신앙의 악한 마음에서 나를 건져줄 자는 누구인가? 나는 맑은
여름 종교를 갖고 있다. 나는 위험이 없을 때에는 나 자신을 믿는다.
그러나 죽음의 위험이 가까이 올 때에는 나의 마음은 공포에 빠진다. 오호라! 누가 나를 이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할 것인가?" 이러한 웨슬리의 고뇌는 예수님을 믿는 과정에서 성도들이 종종 경험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정작 위기와 환란에 올 때에 예수님의 구원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 하며 두려움 가운데서 살아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풍랑 가운데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신 그 꾸지람이, 마치 나를 믿음을 보시고
꾸지람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해서, 실제로 구원이 없고 , 예수를
믿는 믿음이 헛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믿음이 없다고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주님이 함께 하시니
우리를 구원 받는게 사실인데, 단지 그 구원의 확신이 부족한 것입니다.ㅊ
3.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믿음 없는 모습을 그냥 내 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변화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더 큰 믿음의
상태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그 이후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의 사람으로 죽을 때까지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붙잡고 있던 것은 죽음의 공포였습니다. 풍랑으로 인해 죽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 혹시나 예수를 죽인 사람들이 자신들도 죽일까봐 무서워서, 한 집에 모여서 꼭꼭 숨어서 있었던 사람들이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담대하게 외쳤던 베드로도 죽을까봐 두려워서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방에 숨어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이 예수님
승천 이후에 다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고, 그들의 믿음의 모습은 180도로 바뀝니다. 전에는 예수님의 제자라서 죽을까봐 두려워했는데, 성령님을 받은 이후로는,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니, 이
제자들이 죽음의 두려움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구원의 확신이 있고, 담대하게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셔서, 육신의 살고 죽음에 관계없이 영생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았던 사도바울에게도 나타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4: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살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는 것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을 때도 주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이러한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존 웨슬리도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성령님의 만져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존 웨슬리가 조지아 선교에서 돌아온 후에 큰 실의에 빠졌습니다. 풍랑을 통해서 자신이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에 독일에서 온 모라비안 목사 피터 뵐러(Peter Boehler)가 이러한 웨슬리를 보면서 권면합니다. “믿음을
얻을 때까지 믿음에 대하여 설교하시오. 그리고 그 믿음을 얻게 되면 그 얻은 믿음을 가지고 설교하시오”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그의 권고에 따라 존 웨슬리는 믿음에 대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존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오후에, 세인트
폴 교회에 있는 기도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올더스게이트 거리(Aldersgate Street)에 있는 네틀턴 코트 (Nettleton
Court)에서 모이는 모라비안 교도의 기도회에 가기 위해 세인트 폴 교회를 나와서, 모라비안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때 웨슬리는 그 기도회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로마서 서문을 듣고 있던 중,
8시 45분, 마지막 구절을 읽는 소리를 듣는
순간 웨슬리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신 구세주라는 것을 확실히
믿는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이날 저녁에 일어난 일을 다음과 같이 자신의 저널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신도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 경에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ly warmed).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으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음과,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 이후 존 웨슬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설교하며
영국의 곳곳을 순회하며 목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존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은, 산업화로 인해서 영적으로 메말라가는 영국 사회를 영적으로 변화시키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커다란 영적인 부흥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렇게 웨슬리는 1791년 3월, 88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존 웨슬리에게 인생의 커다란 풍랑을 주셔서 그 믿음의 상태를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평생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닥치는 풍랑의 시간들이 있습니까? 그 시간들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의 믿음의
상태를 확인하고, 더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간들입니다. 풍랑의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성령님을 통해서 그 풍랑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속에서 풍랑이 일던, 잔잔하던지
상관없이 감리교인답게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충성스럽게 믿음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존 웨슬리는 인생 말년에 그의 저널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감리교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들이 단지 능력 없는 종교의 형식만을 가진 일종의 죽은 종파로 존재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만약에 그들이 처음 출발할 때 가졌던 가르침과 성령과 신앙훈련을 모두 견고하게 붙잡지
않을 경우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두려워야 하는 것은 풍랑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경제적인 풍랑, 육신적, 세상적인 풍랑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도리어 두려워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없이, 성령의 능력없이 살아가는 영적인 상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아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그들을 도우셨던
것과 같이,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 상태에 있던지 간에, 꾸준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해 주시며, 사나 죽으나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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