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8/2018 -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드시다 [고린도후서 5:15-21]
이탈리아의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윗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도시 피렌체(Firenze)의 시의외에서는 도시의 위상을
높이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그 도시를 대표하는 예술품을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작지만
강한 승리의 인물로 성서속의 다윗을 조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상을 조각할 6미터 높이의 거대한 대리석을 구해 놨습니다. 피렌체 시는 1464년에 아고스티노(Agostino Di Duccio)라는 조각가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를 못하겠다고 거절했습니다. 10년
후에 안토니오(Antonio Rossellino)라는 조각가에게도 그 일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대리석의 결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작업을 포기하고, 이
거대한 대리석은 시의회의 뒷마당에 버려진 채로 있었습니다. 그 이후
1501년, 시의회의 요청을 받은 미켈란젤로가 결이 좋지 않다고 버려졌던 그 대리석 덩어리로
조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3년의 작업을 통해서 다윗상이라는
걸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버림받은 돌이 미켈란젤로의 손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당신들도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받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라고 자신들의 모습을 보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진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사람들은 세상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치와 문화를 따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세상에서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고린도교인들을 향해서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새로운 피조물로 잘 살아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자꾸 새로운 피조물로가 아니라, 예수님
믿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입니다. 그러한 고린도교인들을 향해서 사도바울은 “너희들은 이전의 존재가 아니야. 새로운 피조물이야. 그러니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냐?” 라고 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안에
머물러있지 않고, 자꾸 세상으로 가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피조물을 통해서, 기존의 피조물이 감당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시고자 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또 새로운 피조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시고자 하시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피조물을 지으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고자 하셨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과 사람은 화목의 관계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함께
사는 관계였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와 함께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피조물이 당연히 창조하신 분의 만드신 목적에 맞게끔 살아가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목적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처음 사람을 속이기를, 창조주의
뜻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이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유혹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의 목적에 관심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과 사람의 불화의 관계가 됩니다.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름답게 만드셨던 피조물이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불화한 관계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절망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으로 이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불화의 원인인 피조물의
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화목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롭게 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피조물의 가장 큰 변화는 삶의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대신 죽으신 것은, “이제 사람들을 그들 자신들의 육체를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하고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의 삶은, 나의 육신을 위한 삶이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에 나의 유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내 삶의 목적이 아직도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피조물의
삶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내 유익과 목적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화목의 관계는 제대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2. 두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피조물들이,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케 하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자신들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하나님과 고린도교인들을 화목하게 하고자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화목케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일 부터, 우리교회 단기 선교팀이
코스타리카를 갑니다. 선교팀이 그 먼 곳에 있는 낯선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가는 것입니다. 코스타리카에
있는, 아직 하나님과의 화목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신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사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모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때를 얻던지 못얻던지, 그리스도의 화목의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노문환’이라는 찬양사역을 하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 찬양 집회에서 그분은 자신의 모습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섹소폰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세상 노래를 불렀던 섹소폰이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가 된 것과 같이, 자신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서 하나님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며
기쁨으로 찬양집회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속한 소유물들 조차도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이끕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 능력, 물질 등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함으로 그 물질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화목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지음받은 피조물은, 하나님과의 화목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속에서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화목을 위해서도 힘쓰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새롭게 지으신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 사람은 사람들을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만약 사람들과 불화의 관계를 만들어간다면, 그
사람을 향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딸입니다.”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과의 화평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님도 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불화가운데 있는 사람과 안 보고 살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뿐만 아니라 주님도 보지 못한다고 하니, 화평을 만들어가는
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직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화목을 만들어 가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싸우는 것은 쉬운데 화평을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요즘 남북한의 애쓰는 모습을 보면 실감이 납니다. 남한과 북한이 1950년부터 삼년 동안 죽기 살기로 싸웠습니다. 휴전을 한 이후에 서로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 국가로 서로 다투며 불화한 가운데 65년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화의 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남북의 화해보다 더 어려웠던 것이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도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을 이루셨는데, 그 방법은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싸움은 자신을 죽이지 못해서 일어납니다. 자신이 더 옳다고 주장하며 고집하기에 서로 불화합니다. 자신이
더 강하고 똑똑하다며 그것을 드러내려고 자존심을 내 세우다가 서로 다투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내가 강하고
똑똑하고, 많은 것을 가진 것을 내 세우는 것보다 더 귀한 가치는, 서로
화평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을 내세우다가 불화하는 것보다 겸손히 상대방의 소리를 들어주며
화평을 만들어가는 것이 새롭게 지음받은 피조물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며 다른 이들을 억압하며
불화하는 것보다, 자신의 권력으로 약한 자를 도우며 화평을 만들어가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똑똑해지고, 물질이 많아지고, 권력이 많아졌다고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러한 것이 있던지
없던지에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들과 화목하게 살아갈 때에, 비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피조물들이 이 땅에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지음받은 사람들과 화목의 관계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화목을 유지하는 일은, 이제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인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를 그 삶의 동기를 보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셨듯이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쓴다면,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이 하나님과의 화목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화목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지으신 것은,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죽이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지음받은 피조물임을 세상에 보여 주기를
원하십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불화와 다툼이 많은 이 땅에, 하나님께서 화목하라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으니,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잘 감당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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