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9/2020 - 풍랑가운데 오신 주님 [마태복음 14:22-33]
오늘 읽으신 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폭풍우로 인해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헤매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배를 타고 건너편 마을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배를 타고 건너편 마을로 먼저 가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서둘러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을 보내신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보내시고, 자신은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갈릴리는 호수입니다. 그런데 바다라고 불릴 만큼 수평선이 보이는 넓은 호수입니다. 비록 갈릴리바다가 크지만 제자들 중에는 어부도 있으니 그들은 그 바다를 건너는 일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람이 거스르므로 사경이 되었는데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물결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시각으로 밤 사경이면 새벽 3시에서 6시까지를 말하는데, 그때까지도 갈릴리바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이 육지를 출발할 때는 바다도 잔잔하고, 어둠이 내리기 전이었을 텐데, 지금 제자들은 풍랑이 이는 바다가운데서 오랫동안 불안과 공포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넓은 물위에서 요동하는 배위에 있는 것은 불안한 일입니다. 언제 배가 뒤집혀서 물에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삶이 이러한 풍랑에 잡힐 때가 있습니다. 원치 아니한 풍랑을 맞아서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속해있는 공동체가 위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도 전진할 수 없는 고난의 상황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때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우리의 삶속에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에, 그래서 우리의 삶이 물결에 요동치는 조그마한 배위에서도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왜인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고난 가운데 헤매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인생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보통 때는 그들은 그 바다를 배를 타고 무사히 건너갔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바다라고 하는 곳은 평소에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파도가 일어서, 사람이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세력이 바다를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다 주변의 마을에는 미신이 많이 있습니다. 바다의 신을 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신을 달래는 제사를 드리며 바다가 평온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서도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바다를 어둠의 영이 지배하고 있는 혼돈의 지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바다를 건너는 제자들에게도 실제로 이러한 일이 닥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풍랑은 언제든지 올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 일기예보가 여러가지 기상 이변들을 예상하고, 그것을 대처하도록 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잘 대처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전에 코퍼스 크리스티 지역에 하나라는 허리캐인이 지나가면서 상당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요즘 한국,중국,일본이 장마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가지고 왔습니다. 비가 내려와서 둑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납니다. 가옥이 무너지고, 농경지가 물과 흙으로 뒤 덮힙니다. 사상자도 발생했습니다. 물난리를 경험한 분들은 흔히 불보다 물이 더 무섭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폭풍들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경험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갈릴리를 급하게 건너게 됩니다. 예수님의 지시에 순종해서 떠났으니 그들의 여정에 아무 문제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가는데도 풍랑이 일고, 목숨을 건 고난을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원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떤 제자는 예수님께서 그들로 배를 타라고 재촉하지 않았어도 그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도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는 가정과 교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인생의 풍랑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2.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실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그들이 탄 배로 오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물에 빠져 죽게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물위를 걸어서 그들에게로 접근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서 기겁을 합니다. 풍랑이 이는 그 밤에 물위를 걷는예수님을 볼 때에 제자들은 유령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물위를 걷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물을 걷는 존재는 유령, 영적인 존재라고 그들은 생각했고, 더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유령이 좋은 존재가 아닙니다. 귀신들과 같은 영적 존재는 사람을 병들게 만들고, 정신을 이상하게 만드는 해로운 존재였기 떄문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을 죽음으로 데려가려는 귀신으로착각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니까 예수님께서 즉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그들의 두려움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두려움가운데 사로잡히지 않도록, 지체하지 않으시고 즉시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Take courage! It is I. Don't be afraid) ” 만약 제자들이 자신들이 보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은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글런데 베드로가 이 말을 듣고서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Lord, if it's you, tell me to come to you on the water)”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어떤 마음으로 이러한 요청을 했을까요?
사실 생각해 보면, 베드로의 요청은 무모한 요청입니다. 만약 바다위를 걷는 존재가 예수님이 아니라 진짜 유령이라면, 베드로는 물에 빠져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는 베드로의 어리석음보다는 베드로의 믿음에 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풍랑가운데서도 예수님께로 가면 괜찮을 것이라는, 예수님은 피난처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예수님께로 이끄시고자 바다 위를 걷도록 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를 믿고 배 밖으로 발을 내디딥니다. 이것은 굉장한 믿음입니다.
번지 점프를 하시는 분들 중에는, 모든 안전장치를 착용하고서도, 두려움에 그 한발을 내딛지 못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풍랑이는 시커먼 바다물 위로 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가 그렇게 바다위를 걸어, 예수님께 도착했으면 좋을텐데, 잠시 물위를 걷는 것 같더니 곧 물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할때에 물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모습은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러한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고 우리가 믿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에,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하기를 방해하는 것들이 눈앞에 옵니다. 두려운 것들이 우리를 방해합니다. 손해볼 것과 위험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주님께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fixing our eyes on Jesus, the pioneer and perfecter of faith.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어떠한 방해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훈련을 지속해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도 있고,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도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에게 시선이 빼앗기게 되면 예수님께로 제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이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처음에는 믿고 그렇게 했지만, 도중에 실패하고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에 빠져 가는 베드로를 향하여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작기에 의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의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하지 못했을 때에 생깁니다.
베드로는 작은 믿음이라도 있었기에 물위를 걷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바람으로 인해서 두려움에 빠지고 예수님을 의심하게 될 때에 그 믿음의 역사가 방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가진 믿음이 작음을 스스로 보게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베드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걸어 예수님께로 간다는 것은, 굉장한 믿음이 아니고는, 시도도 못할 일처럼 보입니다.
3. 그런데 감사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을 가지고는 예수님께로 온전히 갈 수 없지만,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로 가기는 커녕 중간에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다급하게 외칩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가 얼마나 급하고 간절히 소리질렀겠습니까? 어부인 베드로가 죽을 것 같을 정도로 바다는 험난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을 향하여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구원해 달라고 간구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실 때에, 제자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바람도 그쳤습니다.
때로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갈만한 믿음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사나운 파도에 휩쓸려 다니는 상황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원해 주십시오 라고 주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길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911과 같아 보입니다. 우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위태함에 빠졌을 때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수 없지만, 911에 전화하면, 구조요원들이 와서 구해 주곤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911에 전화를 걸지 못해서 생명을 잃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입을 열어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의 부르짖음을 아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세상의 풍랑,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사탄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예수님으로부터 떨어뜨리기 위해서 더 유혹하고 고통스럽게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예수님께 간절히 구원을 요청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직접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을 때에 사나운 바람과 물결이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요동치는 삶에 모셔드릴 때에 우리가 주님으로 인해 평안케 되고, 그 바다를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그 풍랑이는 바닷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풍랑이는 바다는 그들을 죽이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소였고,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하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풍랑과 환란에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제자들이 경험했던 은혜를, 우리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삶이 평안하기를 원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언제 풍랑이 일지 모르는 바다를 자그마한 배를 타고 건너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 전체를 흔들어 놓을 만한 풍랑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베드로와 같이 그 풍랑 이는 바다를 걸을 만한 능력도 주시기를 주님께 원합니다. 그런데 요청과는 다르게 우리의 믿음이 적어서 주님께 가까이 가기에 실패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건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풍랑이 일고, 요동치는 배 위에서, 죽을 것 같은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강력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부르짖는 일입니다. "주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의 고난과 혼돈의 시간을 지나간다고 할지라도, 마치 풍랑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을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구원을 부르짖는 이들을 주님께서는 외면치 않으시고,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의 삶속에 풍랑을 만나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에, 주님을 바라보시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의 요동치는 배위에 올라오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우리를 평안케 하시는 은혜를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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