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5/2014 - 거룩한 열매 [갈라디아서 5:22-24]
지난
주일에 성령님의 강림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능력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각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 강건하게 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권능을 가지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이민자로서 저와 여러분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해서 고향을 떠나서, 지금 이곳, 미국,
샌안토니오에 서 있는 것입니다. 내가
밟고 있는 곳이 바로 땅 끝이라는 선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가정에서 자녀와 배우자에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또한 이웃과 지역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의 믿음의 여정의 처음과 끝,
모든 과정에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의 올무로
부터 해방되어 의로운 구원의 자녀로 변화됩니다. 이것을 칭의(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원래 죄인이지만, 믿음을 통하여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해 주십니다. 이제,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과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의로운 사람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레위기 11:45절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향하여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예수님께서 사셨던 거룩한 삶을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성화는 내가 거룩하게 살겠다고 결심하고 노력을 하는 것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인지를 알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살아갈 만한 능력이 사람에게는 부족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에 비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면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역사하시면, 우리의 내적인 성품의 변화가 나타나고,
외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희
집 마당에는 삼 년 전에 심은 감나무와 배나무가 있습니다. 가게에서 나무를 사올 때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봄에 꽃을 피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열매가 되겠지 하고 무척이나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꽃을 피운 후에 곧 시들해져 버리더니 열매가 맺히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꽃을 피우고 제법 많은 열매가 달렸습니다.
그런데 비바람이 몹시 치던 날에 대부분의 열매가 떨어지고 지금은 감이 1개,
배가 5개가 남아 있습니다. 열매를 볼 때마다
떨어지지 말고 끝까지 잘 커서 익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의 거룩한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기대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시험과 유혹속에서 열매가
미성숙하거나 떨어짐 없이 끝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실
때에 맺게 되는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22-23절 말씀을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에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앞에 있는 세가지 성령의 열매,
“사랑과 희락, 화평”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통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 중의 하나이십니다.
요한1서 4:16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사랑과는 구별되는 거룩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영혼을 향한 사랑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자기 중심적이고, 외모와 외적인 조건에 근거한 사랑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쁜 여자, 잘생긴 남자가 더 사랑을 받을만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학벌이 좋고 돈이 많으면 사랑받기에 충분한
조건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사람들의 사랑은 상대방의 외모를 보고, 가진
것을 보고 자기가 원하는 조건에 맞을 때에 사랑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외모보다는 그 사람의 중심,
그리고 그 사람의 영혼을 보시며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그 영혼을 보시며 죄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거룩한
사랑의 열매는 한 사람의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서 죽음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지만 아직도 죄성과 연약함 속에서 실수하고 낙망해
하는 그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은,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신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죽이신 사랑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살린 사랑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다른 사람을 살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신을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사랑하지를 못합니다. 이번에
세월호가 침몰하는 사고가 생겼을 때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사람이 있습니다. 박지영 승무원은 기울어져가는 배에서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누어주면서 끝까지 배를 지키다가 죽었던 것입니다. 학생들이 같이 나가자고 할 때에
“승무원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너희들이 다 나간 후에 나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 하면서 아이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침몰하는 배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죽이신 사랑이었습니다. 그것도 죄로 인해서 죽어 마땅한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계시기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며, “자기를 저주하는 자를 향하여서 축복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중에 누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럴만한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맺어야 할 사랑의 열매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세속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죽여서 다른 이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열매로 맺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사랑은 거룩한 것입니다. 2. 두 번째의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실 때에, 희락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주는 희락, 기쁨에 익숙합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처럼 그러한 것들을 발명해 내는 사람들도 드물 것입니다. 각종 방이 있습니다. 노래방, 비디오방, 채팅방, PC방 등이 있습니다. 술집들도 즐비합니다. 사람들이 실컷
즐기고 놀 수 있도록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것은 심각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젊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도
교회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세상에서 추구하는 그러한 즐거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부에서 오는 희락을 누리기 위해서 수고를 합니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을 찾아서 희락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비도덕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주시는 희락은, 세상에서 주는 희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맺게 하시는 희락의 열매는 거룩합니다. 희락은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즐거움을 회복케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로 받은 사랑이 깨달아지며,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깨달아 집니다. 그리고 내가 창조주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고, 그분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 희락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청년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사사를 받으며 바이올린을 배우던 그녀는 14살에,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음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총연합 청소년 음악 콩쿠르에서 2002년과 2003년
2회연속 1등을 차지하면서 ‘바이올린 천재’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독일 정부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무료로 대여해 주는 세계3대 바이올린 중에 하나인 1735년에 제작된 ‘페투루스 과르니에리’를 지원받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부러워 했고 그녀의 연주를 들으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녀는 점차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을까봐 두려워 지고,
부담스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방안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바이올린을 몇 년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폐인이 되었다고 수근거렸습니다.
그
중에도 어머니는 그 딸을 위해서 기도하셨고 기도 중간에 바이올린도 연주하곤 하셨습니다. 어느 날 반복되는 어머니의 바이올린 선율이 우울했던
지혜양의 마음에 깊이 와 닿으면서 위로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바이올린을 통해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다시 바이올린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면서 간증을 하고 연주를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을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자신 안에 있는 은혜와 복을 깨닫게 되었고, 그녀 안에 있는 희락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상황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녀 안에 있는 그 은혜를 깨닫게 되고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희락을 회복하며 그것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이
주는 여러가지 세상적인 염려와 걱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십니다.
살아가면서
짊어지는 삶의 짐들을 주님께 가지고 오십시오.
우리를 걱정하는 것을 주님께 맡기십니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을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주신 은혜와 복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이 주는 희락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부어주신 희락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성령의 거하심이 있을 때에 화평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미움과 증오로
인한 많은 다툼과 분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많은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들을 화평케 하는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9절에 예수님께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었던 불화를 화평케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을 화평케 하신 분입니다. 바로 예수님 한 분의 중재로 하나님과 사람이 다시 화평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평하게 하였던 사람 중에서 모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과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홍해를 갈라서 건너게 하시고, 만나를 주셔서 먹을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그렇게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동안에, 산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크게 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멸하시고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모세는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를 중재합니다. “하나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중재하였고,
화평케 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모세 한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화평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궐에서 왕자로 자랄 때에 그는 애굽사람이 자신과 같은 히브리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서 견딜 수 없어서 돌로 쳐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려고
했다가 자신이 애굽사람을 죽인 것이 들통이 난 것을 알고서 광야로 도망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와 동행하면서 하나님과 사람을 화평케 하고 사람과 사람을 화평하기 위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가운데서 꼭 필요한 사람은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는 더욱 더 많은 미움과 갈등과 싸움과 전쟁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안에도 있고, 나라간에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마음 아파하며, 성령님의 화목케 하심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화목케 하심이 있을 때에 그것은 열매로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한 화평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육신의 열매입니다. 육신의 위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육신의 욕망을 따라서는 성령의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위해서는 육신의 욕망을 버리고,
성령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 가운데서
하실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비워 드릴 때에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사랑을 말하고 희락을 말하고 화평을 말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는 거룩합니다. 사도바울은
그가 열심히 하나님을 따르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욕심속에서 행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그는 육적인
공로, 외적인 가치를 따라서 따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까?
우리가 그 부분을 내 육신의 주장이 아니라, 성령님께 맡겨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연약한 점이 있으면 그분께 맡겨드리기를 원합니다. 성령님게
사랑의 자리를 내어 드리십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희락이 있습니다. 화평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우리도 그 열매를 누리고, 그 열매를 맺어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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