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6/2014 - 든든히 서가는 성도, 교회 [사도행전 9:31]
두 사람이 각자 자기가 살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은 가장 단단해 보이는 땅을 찾아서 반석이 나올 때까지 파더니 그 반석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사람은 땅을 파기 쉽고 편한 곳을 찾아 다니더니 모래밭 위에다가 집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을 보면서, 모래
위에 지은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집을 짓기는 편한지 모르지만,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리고, 그 동안의 수고가 모두 헛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을 해 주시면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믿음의 사람이 되지 말고,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고 열심히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주초가 어디에 놓여져 있는지를 늘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
믿음의 주초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 위에 무엇인가를 세우면 세울수록 더 위태롭고 허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늘 내 믿음의 기초, 근거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초대교회들의 모습은 반석 위에 터를 닦고
짓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곧 교회의 지체된 성도들의 믿음이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져서
성장하고 부흥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 제대로 된 반석위에 교회가
세워질 때에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안하여 든든하게 서는 것입니다.
그 기초가 제대로 되어 있으면 그 위에 세워지는 것은 그것이 건물이던지, 믿음이던지 평안하고 든든하게 섭니다. 바다 위에 작은 돛단배를 타고
있으면 괴롭습니다. 바다의 작은 물결에도 흔들려서 편안하지 않고 멀미가 올라옵니다. 그러다가 작은 풍랑이라도 오는 날이면 쉽게 파선되어 물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항공모함과 같은 큰 배에서는 그 요동함이 없습니다. 거친 파도가 쳐도 너끈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실 때에 흔들리지 않는 교회의 터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린도전서 3:11절 “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때에 교회는 기초가 든든히 설 수 있었던 그
터를 예수 그리스도께 두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없어져도, 결코 요동하지 않으시는,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신앙의 근거로 삶을 때에는 요동하지 않고 평안하여
든든하게 서가게 됩니다.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하게 서갔다고 했는데, 초대교인들이 믿음생활 했던 때가 편안한 시대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만큼 어려움을 당한 때는 드뭅니다. 원래 처음 교회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교회가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냐하면, 박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를 하게 됩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있게 되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고, 그 흩어진 곳에서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위기 가운데 세워진 교회들이 평안하여 든든하게 서갔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들 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터전으로 해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견고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이 종이는 너무 쉽게 찢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못으로 찌른다고
한다면 쉽게 구멍이 뚫립니다. 그런데 이 종이를 철판에 강력한 풀로 짝 붙여 놓으면, 이 종이를 쉽게 찢지도 뚫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종이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 뒤에 받치고 있는 강철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결코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비바람과
창수와 같은 시험과 환란이 닥쳐 오면 도저히 맞설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거짓과 속임수와 맞설만한 지혜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날마다 요동하고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반석이 되시고 흔들리지 않고 너머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십니다. 승리케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당장 이 시간에 모여 있는 이유도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 때문이어야
합니다. 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예배하고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그 후차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흩어져서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도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잠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의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고 살수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믿음의 삶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의 가장 근본적인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에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요동치 않는 믿음으로 평안하여 든든하게 서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또한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는 주님을 경외하는 교회입니다.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교회에는 주님에 대한 경외가 있었습니다. 경외한다는 것을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요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 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온 교회와 사람들을 크게 두렵게 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입니다.
아니니아와 삽비라는 초대교회의 성도였고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들의 소유를 다 팔았을 때에 사탄이 그 마음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 판 것의 일부는 숨기고
일부만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이미 사도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판 것의 일부를 가져온 남편 아나니아를 향해서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에 대해서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아나니아는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 이후에 남편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는 아내 삽비라가 와서 남편과 같이 똑같이 거짓말을 할 때에 그 아내도
죽게 됩니다.
이 소문이 퍼지게 되면, 사도행전 5:11절에 보면,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 일을 보고, 교회에서 하나님을 속이는 일을 하시겠습니까? 감히 거짓말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지 아니하시는 일들을 거리낌없이 하실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 39장에는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이 애굽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보디발 장군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모든 소유를 요셉의 손에 위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의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한 것에 반해서 함께 동침하고 싶어서 요셉을 여러 번 유혹을 합니다. 요셉은 여주인의 말을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합니다. 결국
여주인의 요청을 거절함으로 인해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은 세상의 어떠한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경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죄와 불의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두려움, 경외함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된 일들을 하면서도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그 말씀에 불순종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다가
보니 교회들이 평안하지 못하고 든든하게 서가지 못하고 너머지기 쉬운 것입니다. 성도 개인의 신앙도 방종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에 대한 경외함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주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온전하게 세워지는 줄로 믿습니다.
3. 마지막으로 교회가 성령의
격려하심이 있을 때에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됩니다.
초대교회의 또 다른 특징은 성령의 위로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위로라고 한다면 성령님께서 격려해 주시고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누리던 평안은 사람이나 상황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얻지 못하는 위로가
교회안에 있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있어도 그들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왠지 교회에 오면 위로가 되고 힘이 났습니다. 성령님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하늘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늘에 소망이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해도 더 큰 복과 상급이 있기에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케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교회에 힘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성령님이
계시는 곳에는 힘이 있습니다. 교회가 든든하게 서가는 것은 성령님께서 그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며 그
능력을 행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힘을 잃은 교회를 보게 되면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힘이 되시는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그 분에게 전권을 내어드리지 못함에 있습니다. 인간적인 계획과 생각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믿음의 역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황이나 인간적으로 볼 때에 초대교회는 힘이 없는 사람들로 모였습니다. 지배층의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핍박을 피해 예루살렘을 도망해야
했던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자신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힘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성령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믿음생활을 할 때에, 사람의 격려와
칭찬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성도들이 새가족들이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봉사하는 것을 보시면서 격려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곤 합니다. 그러면
더 힘이 나서 믿음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견고하게 서기 위해서는 사람의 응원을 믿음생활의
원동력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견고하게 서는 성도와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의 위로와 격려 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이 땅의 교회와 성도를 격려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위로와 격려, 힘의 공급이 있을
때에 성도와 교회가 온전히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교회가, 그리고 성도가 평안하여 든든하게
서가는 것은 환경이 평안해서가 아닙니다. 사탄은 늘 교회와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공격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22절에,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예수님은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교회의 기초가 되고, 머리가 되신다고 한다면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의 믿음이 굳건히 서기 위해서는 주를 경외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의 죄된 행위들을
사람들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누가 보던지 안보던지 주님을 두려워함으로 우리의
온전한 믿음을 세워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때에 죄악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위로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의 힘은 성령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힘을 교회가 가지려고 욕심하면 제대로 설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일단 많으면 힘이 있고, 물질이 많으면
힘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힘이 있을 것 같지만, 교회는
무엇보다 성령의 위로와 능력이 있을 때에 성도가 온전히 서며, 교회가 바로 설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에게, 주님을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와 능력으로 요동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평안하고 든든한 믿음으로 날마다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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