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5/2020 - 생수를 부어 주소서 [요한복음 4:5-14]
성지순례를 가보면 세겜지역에 세워진 정교회가 하나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안에는 야곱의 우물이라고 불리는 우물이 있습니다. 야곱이 판 우물이라고 여겨지는데 지금부터 약 4천년 전에 판 우물입니다. 그 우물은 아주 깊습니다. 50미터나 되는 깊은 우물이기에 두레박이 없으면 물을 퍼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 이렇게 깊은 우물을 파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물을 위한 간절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샘이 올라오기 때문에 아무리 가물어도 그 우물물은 마르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몇천년 동안 그 우물은 목이 마른 사람들이나 가축들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주변이 가물어서 메말라서 죽을 것 같더라도 이 우물에 와서 생수를 얻고 다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이 우물과 같이, 사람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시는 분이고, 그 생수가 곧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0절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생수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야곱의 우물을 찾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갈함을 해결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생명수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생수로 잘 알고 있으며, 또한 예수님께 생수를 구하는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먼저, 우리의 영적인 갈급함은 육신적인 욕망을 채움으로 만족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면서 사마리아 땅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 이르십니다. 그 때는 유대인 시각으로 6시라고 했는데, 오늘날 시각으로 정오 12시입니다. 그 뜨거운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는 사람들이 일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지도 않습니다. 그늘에서 쉬면서 날이 저물때를 기다렸다가 날이 선선해지면 일하고 생활하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우물곁에 계셨습니다. 우물곁에 있다고 해서 그 우물물을 마실 수도 없으십니다. 아무리 시원한 물이 있다고 해도 두레박이 없으니 퍼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물 물을 달라고 하신 것은, 실제로 그 물을 마시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영적인 목마름에 관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영혼의 메마름을 메마름을 보시고, 그녀에게 영생의 생수를 부어 주시기 위해서, 그 뜨거운 날씨에 우물가에서 그녀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예수님은 이미 이곳에 계시며 우리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적인 생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이곳에 계신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목마름에 민감합니다. 왜냐하면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얼마 동안 숨을 쉬지 않으면 죽겠습니까? 보통 3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며칠간 물을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습니까? 보통 3일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몇년 동안 World Vision 에서 하는 6K for Water 라는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에 우물이 없어서 물을 구하기 위해서 평균 6K이상을 매일 걷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힘들어도 매일 그렇게 걷는 것은 그 물이 육신의 생명과 직결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여인을 보시면서, 그 여인은 육신적인 물도 필요하지만, 영적으로 목말라 죽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 여인의 삶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갈증이 외부로 표출되는데 그 여인은 성적인 욕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예수님은생수를 말씀하시다가 려인이 그 물을 달라고 하니까 사마리아여인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십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합니다. 물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남편 이야기를 합니다. 그 여인은 자신은 남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그리고 지금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여인의 영적인 상태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남자를 찾으며 사는 것이 육적인 갈함이 아니라 영적인 갈함, 목마름의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여인에게 여섯이 아니라 더 많은 남자가 있다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영적인 빈곤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물질적인 것으로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그 삶을 만족으로 이끌어 줄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사람들에게 눈치를 받으며 사람들을 피해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영적인 궁핍함은 세상적인 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영혼의 빈곤함을 성공으로 채우고, 사람으로 채우고, 물질로 채우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빈곤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2. 그런데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육적인 만족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영적인 빈곤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삽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편 63편은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지은 시입니다.
시편 63:1-2편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 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다윗은 물이 없고 황폐한 땅을 지나면서 목마름과 궁핍함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먼저 해야 할 일이 빨리 물을 찾아 그 목마름을 해결해야 할텐데, 그는 육신의 해갈을 위한 물을 찾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간절히 주를 찾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육신적인 궁핍과 어려움을 있을 때에 그로 인해서 육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힘쓰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형편을 두고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육신은 메말라가더라도 영혼은 메마르지 않도록 하나님을 찾고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을 구하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럴 때에 그 영혼이 평안과 만족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3:7절에 고백하기를,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비록 다윗이 육신적인 갈함으로 인해서 고생하지만, 하나님을 찾고 그의 능력안에 거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평안을 주시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눈에 보이는 부족함과 갈증이 있을 때에, 그 육신의 소욕을 채우기 위해서 힘쓰기 보다, 하나님을 찾으며 주님앞으로 나아갈 때에, 영혼의 만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을 감당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 영혼의 생수를 얻기에 중요한 통로, 우물과 같은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를 하면서,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묻는 것이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산에 제단을 세우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은 것이냐” 고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산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예배를 영과 진리로 드릴 때에 그것이 참된 예배이고, 그럴 때에 영혼을 시원케 하는 영적인 생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는 진리로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의 예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사마리아 인들의 영적인 문제점은 그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알지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한 신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예배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자손입니다. 북이스라엘을 이루고 있었던 사람들인데, 앗수르 나라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앗수르 사람들을 북이스라엘로 이주시켰습니다. 이방사람들과 같이 살던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혼합해서 살게 되면, 종교와 문화가 혼합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도 혼합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남미를 선교하다가 보면 천주교 성당이 많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일간지 El Pais 2010년 7월 10일자 보도에 의하면 중미의 경우 인구의 평균 50~65%, 남미의 경우 약 80% 정도가 가톨릭 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선교할 필요가 있냐라고 궁금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중남미 지역의 카톨릭은 각 지역의 민간신앙과 Spiritualism 과 혼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 있는 우상이나 신도 믿고, 예수님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영적인 해갈함을 경험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진리가운데 예배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말씀에 나와 있는 창조주 하나님, 이 땅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예배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영혼의 만족이 있는 예배를 위해서는 영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도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서 이에 근거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이 찬양이 내귀에 들리고,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의 말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예배가 참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적인 생수를 받아 누리며,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4. 감사한 것은, 영적인 빈곤 가운데 우물 물을 길으러 왔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영적으로 풍요케 되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여인과 대화하시면서, 자신이 메시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에 그 여인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게 됩니다. 자신을 구원해 주실 메시야라는 것을 믿게 되고, 그 기쁨속에서 자신이 사는 동네에 가서 메시야를 만났다고 광고를 하면서 다닙니다.
그녀가 동네에 갈 때에 그 여인이 물을 길으러 가지고 왔던 물동이를 어떻게 하시는지 아십니까? 물동이를 그냥 버려 두고,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전했습니다.
원래 그 여인은 동네 사람들 만나기를 꺼려했던 사람입니다. 여섯이나 남편을 두었던 여자를 곱게 볼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 그 뜨거운 정오에 우물물을 길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까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가지고 그 꺼려하던 사람들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증거하며, 그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동네사람들도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이틀을 더 유해달라고 해서,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영혼의 만족을 얻게 됩니다.
사마리아의 수가동네이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올 때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영적인 은혜가운데서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은 어떤 다른 곳에서 해갈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풍요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그 생수가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싱싱한 나무도 물이 없으면 얼마 있다가 시들해지고 말라 죽습니다. 하지만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시절마다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그 나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뿌리를 물에 두고, 그 생수를 들이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풍성할 수 있는 것은, 생수되신 주님과 가까이 하며, 그 생수를 공급받을 때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배의 자리로 나오고, 말씀의 자리로 나오고, 기도의 자리로 나와서 예수님과 가까이 살아갈 때에, 나도 모르게 영혼의 만족을 얻으며 세상이 줄수 없는 참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영적인 갈급함을 세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해결해 보려는 헛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갈급함은 영이신 하나님을 통해서 해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그분께로 나아갈 때에 우리의 영적인 해갈뿐만 아니라, 가뭄속에서도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열매를 맺는 생명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많은 이들이 육신적인 만족을 위해 헛된 수고를 하며 살아가지만,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참되게 예배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 메마른 세상속에서도, 영적인 풍성함과 능력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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