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7/2020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에베소서 5:21-33]
설교: 에베소서 5:21-33,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관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천국을 유업으로 물려 받게 됩니다.
그리고 또 사람들과의 관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에 보면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 당시에 중요한 인간 관계인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 전제되는 가르침이 있는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종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의 복종에 대한 가르침은 그 당시의 가르침과는 차이가 납니다. 그 당시에 복종은 일방적인 복종이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해야 하는 것이고, 자녀가 부모에게 하는 것이고, 종이 주인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가르치는 복종은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 ‘피차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자신을 상대방보다 낮은 위치에 두고, 상대방을 존귀한 존재로 여길 때에 가능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0: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존재적으로 볼 때,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 낮아지셔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러기에 상대방에게 나를 낮추고 복종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입니다.
사도바울은, 피차 복종하는 것이 억지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곧 피차 복종하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경외함이 교회안의 예배를 통해서만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삶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피차 복종의 관계를 말할 때에, 맨 처음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부부간의 관계가 서로 복종할 관계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를 드러내는 관계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남편과 아내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서로 어떠한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복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아내에게 주시는 말씀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요즘과 같은 남녀 평등의 시대에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은 시대적으로 적당하지 않은 말처럼 여겨집니다. 그것도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는 ‘큐리오스’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종이 주인을 부를 때에도 ‘큐리오스’, 라고 부릅니다. 6:5절에, 종들과 상전의 복종의 관계를 말할 때에도 ‘큐리오스’ 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주인, 상전’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할 때에, 주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남편에게도 복종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리스도가 아닐진데, 그리스도께 하듯 복종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말입니다. 남편이 예수님과 같으면 복종하지 말래도 복종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남편이 그리스도와 같이 복종해야 할 대상인지를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어떠한 형태의 복종을 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하듯이, 아내도 남편들에게 그렇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가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분께 복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남편을 자신의 머리라고 여기면서, 복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남편이 그리스도와 같이 경외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별로 다를 것이 없고, 부끄럽고 부족한 모습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것은, 남편이 그리스도와 견줄만한 존재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내의 머리로 남편을 세우셨고, 그 남편에게 복종할 때에, 그것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으로 여겨주시기 때문입니다.
남자인 저도, 제가 아내의 머리고, 아내의 복종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럴만한 제 자신이 그럴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다음에는 남편은 아내에게 어떻게 대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남편에게 주시는 말씀은 아내에게 주시는 말씀에 갑절이나 됩니다. 남편에게는 더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해야 하는데, 그 복종의 형태가 다릅니다.
1. 먼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결혼식때에 이미 사랑할 것을 서약하며, 손에 물 안 묻히게 해 주겠다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결혼을 합니다. 결혼식 당시의 사랑만하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아내가 사랑의 대상임을 담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쓰이는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하신 사랑은,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이십니다.
누가 당신의 아내를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해 줄 수 있겠습니까? 결혼 전에는 부모에게 그러한 사랑을 받았다고 하지만, 결혼 한 후에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아가페의 사랑을 경험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남편도 아내말고 다른 여자에게 더 큰 사랑을 하는 것도 잘못된 일입니다.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해 주셨던 그 사랑을 바로 아내에게 갚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구나” 라는 것을 경험케 해 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심방을 가다보면 돌아가신 남편을 말씀하시면서, 내 남편이 나를 이토록 사랑해주셨어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으신데, 참 행복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다른 남편들과 비교해서 이만하면 괜찮은 남편이야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고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아내는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일컬음입니다. 이 모습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속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교회를 대하기를 자신의 몸과 같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멀리 있는 교회까지 찾아가서 기독교인들을 탄압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대제사장에게로 가서 말하기를,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결박해서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하니까, 다메섹에 있는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다메섹으로 가게 됩니다. 다메섹은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는 240킬로미터(150마일)나 떨어진 거리입니다. 그 먼곳까지 기독교인들을 잡아 오겠다는 일념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에, 하늘에서 아주 강한 빛이 그를 비춥니다. 예수님께서 빛가운데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십니다. 그때 까지만 하더라도 바울은 누4ㅏ 그 말을 하는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 때 음성이 들려 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예수님은 사울이 교회를 핍박한다고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핍박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회심한 후에 교회를 어떻게 여기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누구보다 사랑하며, 그 교회를 세우고, 견고하게 하고자 온 생명을 다했던 것입니다. 교회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들의 정체성을 말하자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함부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몸과 같이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또한 마땅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1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2:24장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결혼한 남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서로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더욱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사도바울은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대한다고 하면, 아내를 양육하여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누구든지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는 것입니다. 양육하는 것은 장성하기까지 잘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보호하다.’라는 것은 따뜻하게 유지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몸이 귀하면 다른 사람의 몸도 귀한 법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신경쓰는 것 만큼, 아내에 대해서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 남편의 사랑법이 되어야 합니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 중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의 한 도시에 가난한 젊은 부부가 살았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선물하고 싶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아내, 델라는 남편이 아버지께 물려 받은 유일한 유산인 주머니 시계가 있었지만 시계줄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시계줄을 사기 위해,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금발 머리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남편 짐이 저녁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반기며 당신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시계줄을 사왔다며 주었습니다. 이를 받아든 남편은 또한 주머니에서 포장지에 싼 선물을 하나 꺼내놓았습니다. 아주 값비싼 머리빗 한 세트였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가 물려받은 유일한 시계를 팔아 사온 것입니다.
Jim과 Della이 서롤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자신의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할 때에, 아내도 남편을 자신과 한 몸으로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경외함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모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가 사람을 대할 때에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억지로나 함부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경외하듯이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은 상대방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귀한 자로 깨닫고 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을 낮춤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가 이루어지는 첫번째 관계는 부부의 관계입니다. 가정안에서 부부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삶을 실천하는 관계가 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복종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했듯이 자신과 한몸으로 여기며, 사랑함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몸과 같이 대하고 사랑함으로,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은 교회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삶의 터전인 가정에서, 그것도 부부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부부를 비롯한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에게 복종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