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2023 - 갈망과 채우심 [요한복음 4:10-14]
https://youtu.be/7TG-oAx_hbU
동물에 관한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자 한 마리가 물가에서 물을 열심히 들이키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충분히 목을 축였을 것 같은데도 계속 물을 들이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마신 물이 목부분으로 다시 흘러 나왔습니다. 목덜미에 구멍이 나 있어서 마신 물이 그 구멍으로 다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짐승과 싸우다가 목부분이 뜯겨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입으로 물을 들이켜도 그 물이 배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사자가 얼마나 목이 마를까요? 그리고 그 갈증을 해갈하기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 물을 들이마시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니 참 측은해 졌습니다. 그 사자는 누군가 그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 뻔한 노릇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도 이 사자와 같이 채우지 못할 갈증을 위해 죽도록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도 사자와 같이 이러한 종류의 육신적인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다닙니다. 추울 때에는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다닙니다. 불안할 때에 안정감있는 곳을 찾아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적인 욕망을 채운다고 해서, 우리 삶의 만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하는 것이있는데 사람에게는 세상적인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동물들과 같이 육신으로만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는 영이 있습니다. 육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듯이, 영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영적인 존재임을 알지 못하고 육신적인 만족만을 위한 동물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해갈이 필요한데, 이를 세상적인 것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여전히 목마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그녀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갈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영적인 갈증을 가지고 주님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먼저 하나님은 사람을 완벽한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부족한 존재, 그래서 갈망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서 다시 갈릴리로 가시게 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의 수가라하는 동네에 이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야곱의 우물을 지나는데 , 때는 대낮 정오였고, 예수님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물가에 앉아서 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한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정오에 물을 길으러 오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보통 물을 길으러 언제 옵니까? 날씨가 시원한 아침이나 저녁에, 동네 여인들과 함께 오기 마련인데, 그 여인은 가장 더울 때에, 혼자서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온 것입니다. 그 여인에게 무슨 사연이 있던 것입니다.
그 사마리아 여인을 본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긴 여행길에 목이 마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결핍함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육적인 필요에 대한 갈증이 있으셨습니다. 여행에 지치셨을 때에 휴식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식사때가 되면 배가 고프시니 음식이 필요하셨습니다. 뜨거운 길을 여행하다가 보면 목이 마르니, 물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여인도 물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우물에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육신의 갈증에 민감합니다. 몸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감지해서, 먹고, 마시고, 쉬고, 운동하고, 잠을 잡니다. 그리고 이러한 육신적인 갈증들은 사람들을 통해서 공급을 받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다. 몸의 목마름은 물을 길으러 온 그 여인을 통해서 해갈할 수 있습니다. 배고픈 배는 음식을 파는 사람을 통해서 허기를 채울 수 있습니다. 돈을 가지고서 육신의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통해서 육신의 필요한 것들을 채움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2. 그런데 사람을 통해서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이 사람에게는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갈증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에 그 여인은 예수님을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부정하다고 여겨서 상종도 하지 않는데, 유대인 청년이 나타나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반문합니다. “왜 유대인인 당신이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그 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10절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육신의 물을 얻기 위해서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여인에게 주실 것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께 생수를 구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물은 영의 갈증을 해결하는 생수 Living Water 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생수를 구하게 됩니까? 바로 “하나님의 선물,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사람” 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선물은 우리의 영의 필요를 채우는 선물, 구원의 선물입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구원의 선물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에 우리의 영적인 갈증을 채우는 생수를 주십니다. 아니 예수님 자체가 영적 기갈을 해소하는 생수 Living Water 가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살아계신 Living God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안에 있을 때에 메마른 우리의 영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적인 궁핍을 세상을 통해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궁핍은 세상에서 만족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적인 갈증을 해결해 주시고,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생수가 되십니다.
요즘 샌안토니오 지역에 비가 없어서 가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가 없으니 잔디며 들판이며 바짝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집앞 마른 잔디를 보면, 물 좀 줘… 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없이는 우리의 영이 바짝 말라 죽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인지해야 합니다. 내 영이 말합니다. “생수이신 주님께로 나를 데려다가 줘…” 내 영은 생수이신 예수님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영적인 갈증을 해결해 주시고자 그 여인에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여인은 생수인 예수님이 자신 앞에 있는데도 여전히 육신의 갈증만을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영이 목말라 호소하는 것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여러분, 우리의 영이 지금 어떠한 상태인지를 알고 계십니까? 혹시나 우리 영이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시편 42:1절에 시인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팔레스틴은 보통 비가 없는 간조한 땅입니다. 산과 들의 풀들이 말라 있고 사슴은 그러한 풀들을 먹고, 뜨거운 광야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목이 마르겠습니까? 그 메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사슴은 시냇물을 찾고자 애를 씁니다. 그리고 그 시냇물을 찾았을 때에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아 그분과 함께 교제할 때에 갈증을 해결할 수 있고, 만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통해 영적인 풍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적인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요량으로 주님을 찾기도 합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쓰신 “하나님께 굶주린 삶, A hunger for God”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고파하는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존 파이퍼 목사님은 금식과 절제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우리의 영적 굶주림을 채울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분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갈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실컷 마시고 배불러서가 아니라, 세상의 식탁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은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영혼은 시시한 것들로 가득 차 있어 위대한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하는데, 세상의 시시한 것들로 가득차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내 영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인 기쁨을 누리기 보다는, 세상적인 갈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적으로 풍요하고 편안하거나, 내가 원하는 육적인 만족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삶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영의 갈증을 세상의 Junk Food와 같은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모시며 살아야 하는데, 세상의 재물, 사람, 명예, 편안함으로 우리의 영은 채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로 하나님을 찾기에 갈망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탄의 계략인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갈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배는 우리가 영의 목마름을 가지고 주님을 찾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예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깨달은 여인은, 어디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른지를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께 드릴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할 때가 이르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제대로 된 예배는 장소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의 이 예배는 하나님을 찾는 예배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들, 이방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할 수 있게 됩니다.
1.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위해서, 먼저 영으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예배는 영적인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이곳에 계시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과 기도, 예배를 통해서 높임받기를 원하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 예배는 내 육신이나 정신적인 만족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혼의 만족이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하는 영적인 민감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육신의 감각에 민감하다면, 성도들은 영적인 감각이 민감해야 합니다.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영의 눈이 떠져서 주님보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의 귀가 열려서 이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입이 열려서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간절히 찾으며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영적인 감각이 민감해지고, 주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은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기초해서 드려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들이 예배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진리가 없는 삶은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를 구하며 그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만나는 영적으로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성도님들께 듣는 가장 좋은 말씀 중에 하나가 “목사님,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예배 시간이 기다려 집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갈망하시는 분들입니다. 저도 이런 말씀을 들으면 참 기쁜데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갈망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만나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요, 우리의 영이 주님을 만나 영적인 풍요를 누리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요한복음 7:37절에, 예수님께서는 명절 끝날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시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이 우리의 영을 풍성케 하는 생수를 주시는 분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영적 목마름을 느끼는 자라야 예수님께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영적인 목마름을 가지고 주님을 찾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도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갈망하며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합니다. 영혼의 갈급함을 가지고 주님을 찾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한 분들에게 주님은, 찾아가셔서 생수를 부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해 주십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영적으로 기갈인 이 때에, 주님이 부어주시는 생수로 우리의 영혼이 기뻐 만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적인 풍성함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요, 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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