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6/2023 - 사랑의 증표 [요한복음 14:21-24]
https://youtu.be/NG6ihHakJvw
여러분은 사람에게 사랑을 잘 표현하십니까? 어떤 분은 자신의 사랑을 잘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서슴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백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노래를 불러 주거나, 선물을 사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랑 표현이 서투신 분들도 계십니다. 혼자 짝사랑을 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뺏기기도 합니다. 특별히 한국의 옛날 아저씨들은 사랑의 표현이 참 서틀렀던 것 같습니다. 가족들에게 "사랑한다" 는 말 한마디 하기도, 자녀들을 안아주는 것도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신 분이 있으신데 누구신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것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시고 그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로마서 5:8절에 예수님의 사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사랑을 확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커플링을 하던지, 결혼식을 통해서 사랑을 확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세 폴란드의 에릭 왕은 바사 공작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종신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때 공작의 아내 카타리나는 왕을 찾아가 애원합니다. “저도 남편과 함께 복역할 수 있게 선처해 주십시오” 왕은 깜짝 놀라 카타리나에게 물었습니다. “부인은 종신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소.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서운 형벌이오. 아무 죄도 없는 당신이 왜 옥살이를 하려는 거요?” 카타리나는 손가락의 반지를 빼서 왕에게 보여주며 애원했습니다. 그 반지에는 ‘모스 솔라(Mors sola)’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뜻은 ‘죽음이 갈라 놓을 때까지…’ 였습니다.
“종신형을 받았어도 남편은 여전히 저와 한 몸입니다. 결혼식 때의 약속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저를 감옥에 함께 넣어주십시오” 결국 카타리나는 남편과 한 감방에 투옥돼 17년을 복역했습니다. 에릭 왕이 죽자 부부는 함께 석방됐습니다. 카타리나는 남편과 고난을 함께 나눔으로 그 사랑을 확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의 확증은 이보다 더합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도 십자가에서 사랑을 확증하시기는 실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신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더욱 감사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선한 존재여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처럼 확실한 사랑을 하신 분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 방법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어떠한 사랑을 우리로부터 받기를 원하시는지,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을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명, 곧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는데, 그 말씀은 곧 하나님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인 말씀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가운데 오셔서 하신 일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삶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당연히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실 때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일을 앞두고 계실 때였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그들과 함께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있고, 이를 지키며 살아갈 때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명령,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복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내 말을 좀 들어라" 고 했을 때에, 그 이유는 자신이 자녀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은 그 자녀를 사랑해서, 그 자녀가 잘 성장하고,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는 마음에 하시는 것입니다.
회사와 같은 조직에도 회사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그 법을 통해서 회사가 질서있게 잘 유지되고, 또한 목적하는 것를 함께 잘 이루어가기 위해서 법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했을 때에,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죄악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영생의 삶, 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는 것은, 사실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인 것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계명들을 지키는 원동력을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랍비 전통에 따르면, 구약성경에 총 613개의 계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라'는 명령과 '하지 말라'는 금령이 있는데, ‘하라’는 명령적 계명은 248개 (Mandatory Laws), 그리고 ‘하지말라’는 금지의 계명은 (Prohibition Laws)는 365개라고 합니다. 그러니 ‘하고’ 싫은데 ‘하지 말아야 할 것’ 도 많고, ‘안하고’ 싶은데, ‘해야 하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는 것이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4:15에도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기꺼이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의 확증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힘들어도 듣고 행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들어주는 것이 사랑의 척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부탁을 잘 들어 줄 수록, 더욱 사랑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 계명들을 지킴으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예배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확증이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킴으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쌓여갑니다. 부모를 공경함으로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확증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살아가다가 보면,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시편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종일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묵상하며 내 삶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의 계명을 사랑하여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의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지키는 것은 별개입니다. 안다고 다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것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할 때에, 내가 아는 말씀이 삶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몸인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27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22-23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의 몸인 교회를 또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이들을 잡으러 갈 때에, 예수님이 빛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는데, 예수님은 바울이 예수님을 핍박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자신의 몸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교회가 예수님의 몸인 줄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목숨을 버리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24-25절에,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핏값으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특징은 영광이 아니라, 고난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이 기뻐하는 것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위해서 받는 괴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고난을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여기며, 그 고난 받는 것을 도리어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그것 또한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위한 사랑의 고백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말씀을 경청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분의 계명을 듣고자 하고, 실행하고자 하는지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증표들이 많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가족을 섬기고, 교우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시는 분들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사랑은 그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함께 사랑을 나누고,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증표가 많았습니다. 그가 교회를 위하여 당하는 모든 일들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증표 였습니다.
우리의 남은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그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사랑의 증표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충만해지시기륵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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