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2016 - 할렐루야의 삶 [시편 148:1-14]
오늘은 "할렐루야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할렐루야"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들려 드리겠습니다.
한 목사님이 멀리 여행을 다녀올 일이 생기셨습니다. 그래서 이웃 마을에
있는 목사님께 가서 말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이웃마을 목사님은 흔쾌히 말을 빌려 주시면서, 그 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일러주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 말을 훈련시킬 때에, '할렐루야'라고 말하면 달리게 했고, '아멘'이라고
하면 멈추게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말을 빌린 목사님은 알겠다고 말하고 말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말에게 "할렐루야"
라고 했더니 정말로 말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넓은 들판을 한참을 달리는데 앞에 깊은
낭떠러지가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은 멈추지는 않고 계속 달립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당황해서 어떻게 멈춰야 하는지를 까맣게 잊어 버렸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하니까 말이 '아멘'소리를 듣고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이 일이 너무 감격되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면서 "할렐루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 가운데서 하나가 "할렐루야"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에도 많이 나오고, "할렐루야"로 서로 인사하기도 하고, 설교 때에 설교자가 "할렐루야"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헨델이 작곡한 메시야라는 오라토리오가
있습니다. 헨델은 메시야라는 오라토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53곡의
노래를 작곡했습니다. 그 중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속죄'를 다룬 파트에서 마지막째 곡인 44번째 곡이 널리 알려진 "할렐루야"라는 곡입니다. 이 '할렐루야'라는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할렐루야가 무수히 반복되는 곡인데, 헨델이 이 노래의 작곡을 마친 후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앞에 영광스러운 천국이 나타나는 것과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았노라"
"할렐루야"라는
뜻은 이렇습니다. 히브리어로 '할렐루'는 '찬양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야'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시편기자는 이 시편을 읽는 사람들에게 "할렐루야, 찬양"을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할렐루야의 삶을 살아가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람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만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열거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할렐루야"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할렐루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우리가 "할렐루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그것은 곧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들이 당신을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을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영적인 존재, 하늘에 있는 태양과 달과 별들,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자연만물들, 거기에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과 사명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우주만물에 존재하는 것이 가진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창조물들을 통하여 찬양받기를 원하고 기대하고 계십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하늘의 달과 별,
산들과 같은 것들은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기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그것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살아있는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죽은 존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지으셨는데
그것을 좇지 아니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그것이 곧 죽은 인생인 것입니다. 피조물이 그 창조주를 기억하면서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기억할 때에 경의를 표하며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139:14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다윗이 자기 자신을 살펴보니까 너무 기가 막힌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 지으셨는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면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과학자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과학이 신앙과는
상반되는 것 같지만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를 연구하고, 몸을
연구하고, 자연을 연구하다가 보니까, 사람의 이성과 지혜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들을 보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창조주를 기억하면서, 그 만드신 것에 대해서 감탄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세상의 만물들을 보면서, 말씀한마디로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 대단하십니다. 위대하십니다. 아이디어가 정말 훌륭하십니다." 라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더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이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다스리고 계심을 믿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존재 중에서 8절에, "말씀을 좇는 광풍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광풍은 말 그대로 미친 바람입니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것과
같이 불어 닥치는 갑작스럽고 거센 바람이 광풍입니다. 이 광풍을 맞을 때에는 마치 누구의 통제자도 없는
듯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그 광풍에 대해서 말씀하기를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광풍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창조되고, 그 말씀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광풍, 미친바람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말 잘
듣는 온순한 바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이 하나님의 손안에, 주권가운데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믿을 때에 또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불어 닥치는 광풍과 같은 일들을 만날 때에 하나님을 찬양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 때에도 우리가 "할렐루야"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손에서 통제하시고 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우리가 "할렐루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지으실 때에 폐하지 못할 명령, 사명을
주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저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우연하게 임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연만물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명령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전도서 12장에 "젊었을 때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이고, 이 말씀은 곧 너를
만드신 그 목적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지으신 하나님께 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목적대로
살아갈 때에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할렐루야의 삶이 됩니다.
한 건망증이 심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고서 기사에게 자신의 목적지를 말합니다. "기사님, 서울역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택시가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보니까 건망증 심한 남자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택시기사한테 다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서 그 기사한테 물었습니다. "기사님, 죄송하지만
제가 어디로 데려가 달라고 했는지 좀 알려주시겠어요? 목적지를 까먹어서요." 그랬더니 운전하던 기사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면서 하는 말이,
"아니, 아저씨 언제 택시에 타셨지요?"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그
방법도 잊어 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룰 삶의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자신과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고 할렐루야의 삶을 살아갈 때에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이 있음을 믿고, 그 목적에 따라서
살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찬양의 삶은, 단순히 목소리로 찬양하고, 예배로만 찬양하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만드신 그 목적과
방법대로 살아갈 때에 그것이 찬양의 삶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무생물들은 비록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만드실 때에 세우신 그 법칙에 따라 움직임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스럽게
하는 할렐루야, 찬양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5:23-24절에,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찬양하라고 해 놓으시고는, 노래와 악기로 찬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찬양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불의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법,정의,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살아가면서, 입술로만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듣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할렐루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지키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찬양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할렐루야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찬양을 엉뚱한 곳에 돌려드려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분은,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가 사람뿐만이 아니라, 해와 달, 산들, 바다, 식물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창조주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고서 그것에 취해서 그것을 찬양하며 숭배하는 일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찬양하지 말아야 할 존재들에게 찬양하며 숭배를 했습니다. 시편이 쓰여지던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숭배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그 피조물들을 바라보면서 찬양하고 경배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태양을 자신들의 신이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서 그 앞에서 힘을 달라고, 복을 달라고 엎드려 찬양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권력을 행하는 사람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대의 범죄 중에서 하나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인도해 줄 것이라고 믿고서 그 앞에서 기뻐하며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였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할렐루야를 엉뚱한 곳에다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날에, 하나님의 찬양을 가로채는 존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찬양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질이 찬양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할렐루야를 다른 것들을 향해서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스스로가 찬양받고자 원하는 마음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이
루스드라라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복음을 듣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 앉은뱅이를 보니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향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합니다. 그랬더니 평생 한번도 걸어 본적 없던 그가 일어서서 뛰어 걸었습니다. 앉은뱅이가
걷는 그 기적을 본 사람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라고 하면서,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 때에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으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4:15절, 말하기를 "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향하여서 더 이상 이러한 잘못된 경배와 찬양을 하면서 살아가지 말고, 이제는 천지만물을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전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만물이 찬양의 대상이 되고, 사람이 찬양의 대상이 되고, 사람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돈과
명예와 인기, 권력이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찬양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저와 여러분,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만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모든 피조물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말씀은, 온 땅의 사람들만이 아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공통적으로 관심해야 할 것이,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먼저 입술의 노래로 찬양하고, 그의 선하심을 전파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할렐루야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50:6절은 모든 시편의 마지막 절입니다. 그런데 그 구절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모든 호흡을 가지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목적, 삶의 말씀의 법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법에 따라서 살아갈
때에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고의 찬양, 할렐루야는 고난 가운데 드리는 찬양일
것입니다. 일이 잘되고 기쁘고 즐거울 때에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며,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슬픈 일을 당하고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순간들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의 창조주되심과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고 "할렐루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최고의 찬양일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이러한 순간을 경험하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한다면, 이제 최고의 찬양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때가 왔음을
기억하며, "할렐루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최고의 유일한 찬양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온 우주만물이 그러하듯이, 하나님께 어떻게 최고의 할렐루야의 삶을 드릴지를 관심하시고 연구하시고 행하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저와 여러분에게 진정한 삶의 목적과 기쁨을 주는 사명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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