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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월 첫 번째 주일입니다. 2016년을 시작한지 어느 덧 반년이 지났습니다. 이럴 때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는 것도 신앙의 유익이 될 것입니다. 올 해 우리교회의 신앙표어는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에베소서 1:23절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한 교회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셔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하시고자 원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로 충만하지 못해서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지지 못하고, 세상의 미움과 싸움, 거짓된 가치관으로 인해서 교회의 모습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남은 시간 동안, 우리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로 더욱 충만한 교회가 되어서 주님을 드러내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교회안에 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가리켜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 말고도 이스라엘의 목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종교나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의 방법대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서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삯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진정으로 양을 사랑하는 선한 목자는 자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선하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우리교회에 충만하게 채워져야 할 그리스도의 선하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선하심은, 자신의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시는 모습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로서의 당신을 삯군 목자와 비교하고 계십니다. 삯군 목자라고 하면,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양을 돌보기 위해서 고용된 사람입니다. 삯군 목자는 아무리 많은 양을 쳐도 그 중에서 자신의 양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받는 삯만큼 양들을 돌보며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러기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이 해를 받을까봐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 목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치는 양들의 목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목숨입니다.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는 목자의 모습이 악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악한 것은 양을 해하는 이리이지, 이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목자를 선하다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릅니다. 목자 예수님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양들을 이리로 부터 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양들을 살리기 위해서 죽는 목자가 있다면 선하다기 보다는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목자의 목숨이 얼마나 귀한데 그 목숨을 양들의 목숨과 바꾼다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양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은, 양들의 목숨이 목자의 목숨보다 가치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양들을 자신의 목숨과 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대신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충견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김개인이라는 사람에게는 충직하고 총명한 개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김개인이 동네 잔치에 갔다가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다가 풀밭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들에 불이 나서 김개인이 누워있는 곳까지 번져왔습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개가 주인을 살리기 위해서 주인을 깨워보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개는 근처 개울로 뛰어가 물에 뛰어들어 자신의 몸을 적신 다음, 불이 난 풀밭 위에 뒹굴면서 불을 끄려고 했습니다. 그 개는 불이 주인에게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적셔 불 위를 뒹굴기를 여러 번 해서 주인을 불길로부터 구하기는 했지만, 개는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지 다른 이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선한 일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면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선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흩어버리고 죽이려고 하는 이리와 같은 악한 사탄이 몰려올 때에 이를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죄악의 죽음의 권세로부터 죄인된 사람들을 구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줄로 믿습니다.

요한복음 10:18절에,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신 것은, 양들을 사랑하셔서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자발적인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선한 사랑은 위기에 때에 판명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해하려고 하는 이리가 달려 올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불태우려는 불길이 몰려올 때, 자신의 목숨이라도 버리면서까지 구하고자 하는 사랑을 품고 산다면 그것으로 선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은, 양들을 위하여서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하시는 사랑이십니다. 그러한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경험하였고, 그 사랑이 우리교회 안에 충만해야 할 사랑입니다.

 

2. 그리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사랑은,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안다라는 말은 단순히 상대방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이론적으로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안다라고 했을 때에 사용되는 헬라어는기노스코라는 단어입니다. ‘기노스코는 부부가 한 잠자리를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상대방을 경험하면서 실제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각 양들의 이름 뿐만 아니라, 양들의 모든 상태에 대해서 알고 있으신 것입니다. 양들의 발육상태를 알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양들 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지도 목자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양의 상태에 대해서 잘 아시면서도, 그 양들을 버리지 않고 목숨까지 버리시면서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푸른 초원에 새하얀 털을 한 깨끗한 양들이, 평화스럽게 풀을 뜯으며 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런데 양들에 대해서 좀 더 알고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얀 양의 털은 들판의 먼지와 오물로 인해서 더러워지기 십상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자신을 깨끗하기 위해 혀로 자신의 몸을 핥기도, 물로 씻기도 하지만 양은 여기저기에서 묻은 더러운 오물들을 그냥 묻히고 다닙니다. 스스로 씻기도 않습니다.

그리고, 양들은 참 연약합니다. 자신을 보호하지도 못합니다. 다른 동물은 빨리 도망갈 수 있는 스피드도 있고, 느린 동물들은 나름대로 자기 보호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멜레온은 주변색과 몸색깔을 맞추어서 잘 들키지 않도록 합니다. 고슴도치는 몸에 가시를 세워서 나름대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양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고, 다른 동물들과 맞서서 싸울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맹수의 습격을 받으면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양들은 참 우둔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방향감각이 있어서 길을 잃었어도 다시 돌아오기도 하지만, 양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죽기 일 수 입니다. 멀리 보지 못하고 가까운 것만 보고 살기에, 멀리 있는 풀밭과 시냇물을 찾아 스스로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양들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 알게 되면, 그렇게 더럽고 우둔한 동물을 위해서 죽어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양들의 상태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아시면서도 그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다고 했습니다.

서로를 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알면 알수록 더욱 사랑스럽고 정이 가는 사람도 있지만, 도리어 알면 알 수록 실망스럽고 멀리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면서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점차 서로의 본 모습을 알게 되면서, 서로 실망하게 되고, 그래서 외면하며 살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더 알게 되면서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들이 보입니다. 어리석은 부분들이 보입니다. 연약한 부분들이 보입니다. 때로는 더러운 부분들도 보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실망하게 되고, 그래서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신 사건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죽으실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여서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 더러움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고, 그 연약함과 무지한 양과 같은 존재인 것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도리어 더욱 관심하시고,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로마서 5:7-8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들의 더럽고 추한 죄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더욱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부족하고 연약할수록 더욱 측은히 여기시며 사랑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러한 사랑 덕분에 저와 여러분이 구원에 이르게 된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은, 양들을 위해서 그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이러한 선하신 목자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할 자격이 없는 자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지 못할 자격없는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조건을 상대방에서 찾지 않으시고, 바로 예수님이 사랑의 주체가 되어서 사랑받을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고, 세워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으로 사랑을 확증해 주신 분입니다. 선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하여서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삯군 목자와 같은 사랑도 있습니다. 잘 돌보다가 나에게 손해가 있으면 버리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 예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환난과 위험가운데 있는 상대방을 위해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 끝까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선한 사랑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양과 같은 존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알고 나니까 양과 같이 연약하고 우둔하여서 그렇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그러한 이들을 외면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도리어 더욱 관심하시며 사랑하시는데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그 사랑을 기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함으로 그리스도의 선하심이 더욱 나타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이 가정으로 교회로, 그리고 세상으로 흘러갈 수 있고, 그 사랑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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