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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귀결이 됩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의 내면에는 사랑이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상대방을 사랑의 동기를 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가장 우선적인 관계와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입니다. 성경은 자녀들이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비롯해서 성경 곳곳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이 부모님이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부모를 공경함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자녀들이 부모를 대할 때에, "내가 부모님을 공경해야지..."라는 결단을 하고 대하는 자녀는 드물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편하게 부모를 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부모가 자녀들의 공경의 대상, 존경을 받을 만한 대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부모에 대해 일방적인 편애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는 부모님의 모습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그 육신의 생명을 주실 때에 부모님의 몸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왔지만 부모님의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손길을 통해서 자녀를 돌보게 하시고 성장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자녀들이 진정으로 잘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주셔서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자녀들을 향한 이해할 수 없는 사랑과 헌신은, 사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하신 이해할 수 없는 사랑과 헌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님에 대한 공경은, 그러한 부모님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부모님이 어떠한 분이셨는지를 한번 나누어 볼 수 있기를 바라고, 또한 나아가서는 우리가 어떠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한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 왔다고 했습니다.마가복음 7장에 같은 내용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그 가나안 여자를,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찾아 온 이 여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천시하는 이방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소리질러 말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합니다.

이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찾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들에 들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흉악한 귀신에 들렸다는 것은, 지금 딸 아이가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예쁘고 사랑스럽던 모습의 딸이었는데, 이제는 귀신에 의해서 흉악하게 된 것입니다. 분명 딸 아이의 모습이 흉악한 얼굴로 바뀌었을 것이고, 그 행동도 흉악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흉악한 일을 행했을 것입니다. 아비, 어미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그 딸의 흉악한 행동으로 봐서는 그 아이에게 자비를 베풀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말합니다. "그 흉악한 귀신에 들린 그 여자 아이는 제 딸입니다."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한 여자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한 아이의 엄마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엄마는 자식의 모습이 비록 흉악하더라도 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엄마는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불쌍한 자신의 딸의 모습이 곧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자녀들을 바라볼 때에 그 부모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는 다릅니다. 자녀들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가 됩니다. 자녀들의 기쁨이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삶에 대해서 진정으로 축복하며 안타까워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부모입니다.

사실,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이, 흉악하게 귀신에 들려 괴로워하고 있는데, 오늘날 이 여인의 딸과 같이 악한 영의 사로잡혀서 주님을 잃어버리고 흉악한 길로 가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들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며 주님 앞에 나가는 분들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님인 것이고, 그러한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녀의 영적인 상태를 바라볼 수 있고, 그 영혼을 바라보면서 내 아픔으로 여기면서 주님께로 올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왔던 것처럼, 우리 주님께로 나오는 것이 부모의 모습인 것입니다.

 

2. 그리고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때로 자녀를 위해서 자신 자신의 모습을 부인하고 내려 놓기도 하십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서 아이를 구해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으십니다. 곧 그녀의 소리를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냉대하시는 모습을 보고, 도리어 제자들이 민망히 여기면서 예수님께 말하기를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라고 합니다. 그녀를 보낸다는 것은,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고 보내라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들마다 예수님을 만나 문제 해결을 받고서 돌아갔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그렇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그 엄마를 낙심케 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로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은 유대인들을 위해서 일하라고 보내심을 받았으니, 이방여인은 상대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행동과 말씀으로 이미 확실하게 그 여인을 거절하는 의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여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예수께 와서 절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냉대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이 엄마에게, 예수님께서 비수와 같은 말씀을 던집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합니다. 도저히 참기 힘든 모욕적인 말을, 딸 아이를 구해보겠다고 온 엄마에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만난 그 여인에게, 마치 그 여인이 개와 같은 존재인 것처럼 말씀하시면서 모욕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때에 그 여인이 말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 듣더라도 시험에 들만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행하신 모습을 지켜보던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킬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우리의 스승이 되고, 메시야가 될 수 있어"라면 그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등을 돌릴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의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개가 되던지, 그것보다 더 한 것이 되 던지 간에 자기 자신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개에게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음식이 필요하니, 자신에게도 그 부스러기 은혜라도 달라는 것입니다. 그 딸을 위해서 자기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조차도 부인하고서 살아가는 것이 부모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그 수로보니게 여인은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인 것입니다.

동물에게도 이러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자기를 부인하는 애정이 있습니다. 그 애정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MBC방송국에서 방영한  "남극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타리가 있습니다. "남극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듣고서, 남극이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며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극의 눈물"은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의 자식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소재로 한 영상물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황제펭귄들이 영하 60도의 추위 속에서 알을 낳고, 그 알을 부화시키고 부화된 자식을 얼어 죽이지 않고 키워내는, 엄마, 아빠 펭귄의 고난과 역경의 이야기입니다. 황제펭귄도 새의 종류기 때문에 알을 낳아서 번식을 합니다. 영하 6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추위 속에 엄마 펭귄이 알을 딱 하나 낳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곳에서 알을 따뜻하게 품어서 부화를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알이 부화되려고 하면 2개월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그 일은 아빠 펭귄의 몫입니다. 엄마 펭귄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백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바다를 향해 떠나고, 아빠 펭귄들은 그 알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두발을 모아 발등 위에 알을 올려 놓고 배로 알을 덮어서 두 달 동안 알을 품습니다. 혹시 놓치기라도 하면 1-2분 안에 알은 얼어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두 달 동안 잠깐도 쉬지 않고 알을 품고서 서 있는 것입니다. 알을 품은 동안 아빠 펭귄들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그 빙판 위에 서서 지냅니다. 세찬 남극의 눈보라가 몰아치면 아빠펭귄들은 조밀하게 모여서 함께 그 추위를 이겨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두 달 이상 알을 품고서 있으니 아빠펭귄의 몸이 수척해 집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알이 부화되어 새끼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 아기펭귄도 털이 없기 때문에 추위에 노출이 되면 얼어 죽습니다. 그래서 부화된 새끼를 계속 해서 품습니다. 그리고 새끼를 먹일 음식은 자신의 위벽속에 저장되어 있던 음식입니다. 자신도 먹지 못해서 수척해진 몸이지만, 위에 있던 음식을 게워서 아기 펭귄에게 먹입니다. 이것을 펭귄 밀크라고 합니다. 이 펭귄밀크가 거의 떨어져 갈 때 먹이를 구하러 갔던 엄마 펭귄이 나타납니다. 뱃속에 음식을 잔뜩 저장하고 기우뚱거리며 옵니다. 아빠 펭귄도 힘들었지만 엄마 펭귄도 자식에게 줄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바닷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옵니다.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받아 죽기도 하고, 다쳐서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절뚝거리며 오는 엄마 펭귄도 있습니다. 그렇게 엄마펭귄은 아빠펭귄을 대신해서 아기펭귄에게 펭귄밀크를 줍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아빠 펭귄은 그 아기펭귄을 넘겨주고 다시 바다를 향해서 걸어갑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지만, 자식들을 보호하고 잘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부모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죄인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돌아가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부인하며 살아오신 부모님의 모습에, 그리고 하나님의 모습에 우리는 공경과 사랑을 드리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정작 딸 아이를 살렸던 것은 그 어머니의 믿음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한 딸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엄마가 그 딸을 고치기 위해서 온갖 수치와 수모를 견뎌내는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보고자 원하셨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엄마의 믿음이었던 것을 봅니다. 그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딸을 사랑해서 아이를 귀신으로부터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께 찾아왔지만, 그 여인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흉악한 귀신에 들려 흉악하게 된 딸을 반드시 고치시고 구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몇 마디의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 다른 방법을 찾아서 떠나는 어미가 아니라, 예수님만이 유일한 치료자이시고 구원자이심을 믿고 간구하는 그 믿음을 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수로보니게 여인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아이를 살려주실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을 부를 때에 말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 곧 구원자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의 비수같은 말씀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간절하게 붙들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통해서 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딸을 향한 사랑이 아이를 고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 여인의 믿음이 그 아이를 고쳤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하지만, 모든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자녀를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부모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의 구원이 세상에 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대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영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사람들,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로 나와 치료받고 구원받을 수 있음을 그 부모가 믿고, 그 믿음이 그 자녀들에게 이어지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부모는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한 부부의 자녀로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는 그 사랑과 헌신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결혼해서 자녀를 낳으면서 부모가 되고, 부모로 성장하게 됩니다.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서 자신의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깨닫게 되고, 자신도 부모와 똑같이 자녀를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아무 대가 없이 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면서, 우리는 우리 부모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의 모습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무조건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랑과 헌신을 부모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모는 자녀의 육신적인 삶 뿐만 아니라, 영적인 삶까지 돌볼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4:15에 보면, 결혼도 하지 않은 사도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아비로서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육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영혼을 관심하며 바라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영적인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낳고 양육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부모님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헌신의 모습을 닮게 하신 것은,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 육적인 자녀의 성장 뿐만 아니라, 영적인 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이 운영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원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을 공경하기로 다짐하며 사랑할 수 있고, 부모는 자녀를 육신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영적인 믿음까지도 책임지며 양육하여서,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녀나 부모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들을 영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믿음의 아비로 성장할 수 있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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