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1/2016 - 뜻을 정한 다니엘 [다니엘 1:8-17]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좋은 변화를 경험할 때에는 신이 나지만, 원치 않는 변화를 경험하게
되면 불안하고 절망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유대인의 성경 해설서와도 같은, 미드라쉬(Midrash)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큰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승리의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반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반지를 만들 사람을 부른 다음에, 다윗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반지를 만들되, 내가 큰
승리를 거두어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반지에 새겨 넣어라. 동시에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그 글귀를 보고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하느니라” 반지를 만드는 사람은 최고의
실력을 발휘해서 아름다운 왕의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왕이 명령한 대로, 반지에 넣을 적당한 글귀는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 날을
고민하다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서 자신의 사정을 말합니다. 그랬더니 솔로몬이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답을 주었습니다. “반지에 이렇게 새겨 넣으십시요.‘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커다란 승리와 행복도, 그리고 캄캄한 절망과 불행도 또한 지나갈 것들입니다. 많은 변화들이 우리의 삶속에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지날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속에서, 자신들도 카멜레온과 같이
세상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하며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서 볼 때에,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서 맹목적으로 변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변화속에서 변치 말아야 할 것을 고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지만, 변함없이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오늘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 그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닥쳐 옵니다.
다니엘은 남유다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죽은 이후에 두 나라로 갈라집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입니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경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남유다왕국만 존속했습니다. 그리고 백년이 조금 지난 기원전 586년에 남유다왕국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남유다왕국을
멸망시킨 바벨론 사람들은 남유다 사람 대부분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의 무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경험하는 삶의 변화는 부정적인 변화입니다.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살 수 없고,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변화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도 바뀌어야 했고, 자신이 하던 일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졌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서,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중에, 용모가 좋고, 지혜와
지식이 있고, 학문에 익숙해서 왕에게 쓸만한 사람을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고, 왕이 지정한 음식을 먹고 삼 년간
훈련시킨 다음에 왕 앞에 서서 왕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뽑힌 유대사람 중에서 다니엘도 속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냐, 미사엘과 아사랴라는 소년들도 있었습니다.그 소년들은 이제 자신들의
마음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지정한 대로 교육을 받고, 음식을
먹으며 훈련을 받다가 왕을 섬기도록 지목이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로,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이 일본에게 식민지로 있었을 때에 창씨개명을
해서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이름이 바벨론식으로 바뀐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정체성이 바뀐 것입니다.
전에 다니엘과 친구들이 쓰던 히브리이름은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이었습니다. 히브리어서 ‘엘’이나 ‘야’로 끝나는 것은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벨드사살로 바뀌었습니다. 벨은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라는 다니엘의 이름이, ‘벨의 금고를 지키는 자’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세명의 친구의 이름도 그런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냐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인데 사드락, 곧, ‘태양신으로 영감을 받은 자’로 바뀌었고, 미사엘은 ‘하나님이 같이 강한 자가 누구냐’라는 이름에서, 메삭, ‘미의
여신을 예배하는 자’, 로 바뀌었습니다. 아사랴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인데 ‘느고신의
종’이라는 아벳느고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의 이름으로부터 하나님을 뜻하는 ‘엘’과’야’를 빼버리고,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집어 넣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바꾼
것은, “이제 너희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빼버리고, 이제는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며 살아가라”는 강요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이름만으로도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바벨론의 신들을 섬기는 자들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왕을 섬기는 신하로서
훈련을 받는 삼년의 기간동안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은 왕이 지정한 음식입니다. 이름, 먹는 것, 생활하는 것, 배우는
것 모두가 하나님과 관계없는 바벨론 왕과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서 그들에게 지정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에도, 다니엘이 경험했던 변화들이 이 사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회를 보면, 변화가 참 빠르다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한국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잠깐 사이에 수풀들이 깎이고 평지로 조성되더니, 조금
있다가 커다란 쇼핑몰이나 아파트들이 들어섭니다. 최신형 스마트폰과 가전제품들은 몇 개월이 못되어서 구형이
되어버립니다. 사람들의 문화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겪으면서 많은 고민들속에 있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사회의 변화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점차 사라져 가고, 하나님 없는
삶을 강요하는 문화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면서 기독교인들이 고민하는
것 중에서 마땅히 지지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미국의 변화를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없는 사회로의
변화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다니엘이 살던 시대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기 힘든 변화를
만나고 있습니다. 학교들마다 기독교적인 신앙의 유산들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학교내에서 기도와 성경공부 등은 상상도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주일에는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을 우선적으로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일에도 학교 모임을 가야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헌신하는데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사업을 하더라도 거짓과 편법들이 난무해서 정직하게 뭔가를 한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빼버리려고 하는 사회적인 변화가
기독교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클라호마에서 열린 중고청(Youth and College Retreat)수련회에 다녀왔습니다. 먼
길을 다녀왔지만 그러한 수고보다 더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14교회에서 10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우리교회가 가장 멀리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루지애나에서 8시간 걸려 오신
목사님도 계시더라구요. 청소년 집회는 첫날부터 강행군이었습니다. 밤늦게까지
뜨겁게 찬양하고, 설교말씀을 들으면 은혜를 받았습니다. 설교
말씀 후에는 각 조별로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수련회를 보면서 참 감사했습니다. 요즘에
하나님을 찾는 삶 보다는, 세상적인 즐거움과 성공을 찾아 살아가는 학생들과 청년들이 많은 이 시대에, 몇 시간씩 걸리는 먼 길을 달려와서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찾기 위해서 모여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진정으로
기뻐하실 것이라는 확신가운데서 이 수련회를 지켜 보았습니다.
오늘날에 이 사회는 바벨론 포로시대와 같이, 우리의 각자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빼버리고, 세상을 섬기는 사회로 변화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고 찾으시는 사람은 다니엘과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2.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와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다니엘은 결단을 합니다.
8절에 보니까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라고 했습니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기를 왕이 지정한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채식만을 하겠다고 뜻을 정합니다. 다니엘이 채식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채식이 몸에 좋다고 여겨서가 아닙니다. 채식을 하는 목적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왕으로부터 주어지는 음식 중에서, 고기는 이방신들에게 바쳐졌던 제사
음식도 있었고, 구약에서 부정하다고 분류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육식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채식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채식을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왕이
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러기에 다니엘을
담당하는 환관장의 입장에서, 다니엘이 채식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무시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서 육식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채식을 요구했을 때에, 환관장이 다니엘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심각하게 듣습니다. 만약 채식만 하다가 얼굴이 초췌해지게 되면, 도리어 자신이 왕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은 것이 들통이 나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며 자신의 두려워하는
속사정까지 토로를 합니다. 포로로 잡혀온 소년의 말을 귀담아서 걱정스럽게 듣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환관장이 이러한 마음을 품은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니엘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관장의 마음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결단을 들으셨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정하고 결단했을 때에, 그
뜻을 소중하게 보시고, 그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은 환관장이 자신들이 채식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소리를 듣고서 환관장에게 제안을 합니다. 열흘동안 시험을 해보라고 합니다. 다니엘과 세친구가 열흘동안 채식만
할 테니 그 이후에 다른 소년들과 자신의 외모를 비교해서 판단하라고 합니다. 환관장이 생각하기에 다니엘의
제안은 말이 안되는 제안이었지만, 그 제의에 응합니다. 그렇게
다니엘과 세친구가 채식만하고 열흘이 지납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후 환관장이 채식을 한 다니엘과 세친구, 그리고 육식을 한 다른 소년들을 비교해 보니까 놀랍게도 채식을 한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더욱 얼굴에 윤기가
나고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다니엘과 세친구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정한 육식을 하지
않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3. 다니엘이 이렇게 결단할 수 있었고, 열흘간의 테스트를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신들은 포로로 잡혀온 별 볼일 없는 존재일지 모르지만,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한 뜻을 세우고 나아갈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행동했던
것입니다. 육식을 하지 않아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다른 소년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채식을 먹는 열흘 동안 더욱 몸이 초췌해지고, 힘이
없게 될 것 같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그들을 더욱 윤택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셨던 것입니다.
다니엘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갈 때에 반드시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내 삶을 주장하신다는 믿음과 확신이 없다면, 결단할 수 없고 열흘간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다니엘과 같이,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 보시기에
부정한 사회로 변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단하며 변함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이름에서 하나님을 빼버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름대신 세상의 돈을 집어 넣고, 세상적인 가치와 방법을 집어 넣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고자
그 뜻을 정한 사람을 원하시고 그런 사람을 쓰시고자 하십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하나님께 뜻을 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아시고, 그들을
사용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세친구의 마음을 보시고 그들을 더욱 축복하셔서 자신들의
기대보다 더욱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세친구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더해 주셔서
다른 소년들보다 배우는 것을 더욱 잘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닫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는 다른 포로로 잡혀온 소년들과 그렇게 다른 사람들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그 뜻을 정하고 결단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시고 그들을 다른
소년들보다 더욱 크고 높게 쓰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방의 땅, 바벨론에도 선포될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요한일서 2:16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세상적인 변화가 이 땅에 가득합니다.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한 변화들이 많고, 허황된 자랑을 위한 변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정욕과 자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옆으로 내 밀어 놓고서 세상을 섬기면서 살아가도록 세상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다니엘 앞에 놓여진 우상의 음식과 같이, 우리의 믿음을 훼손하고 더럽히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어야지 풍요롭고 복된 삶을 살 거라고 강요하는 세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에 변화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서 내가 부정하지 않고 더럽히지 않겠다는 신앙의 결단은 바뀌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을 빼버리고 세상을 섬기면서 살아가라는 유혹들이 많이 있지만, 끝까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순전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은 변하지 말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때와도 같은 이 시대에 다니엘과 같은 사람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없이 사람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면서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시대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며, 그 믿음으로 세상을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세상의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법칙에 따라서 마음에 결단을 내리고 그 뜻을 정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자신을 반대할 것 같은 환관장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초췌해질
것 같은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고 풍요롭게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도 경험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이 사회에서 빼 버리려는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지만, 여기 계신 저와 여러분, 그리고 모든 교회들은 도리어 다니엘과 같이 그 뜻을 하나님께 정하고 결단함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을 보여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며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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