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7/2021 - 예수 그리스도와 시험하는 자 [마태복음 4:1-11]
지금 우리는 주현절 절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주현절은 ‘주님이 나타난 날’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처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해서 성탄절기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성인이되신 후,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이를 기념하는 것이 주현절입니다.
예수님은 30세 쯤 되었을 때에 공적인 삶을 위해서 세상에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임하신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는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시고자,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시험일 것입니다.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시험을 잘 봐야 좋은학교를 가거나, 직장에서 진급을 할 수 있기 깨문에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런데 시험은 학교나 직장에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3절에 마귀를 ‘시험하는 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평생 따라 다니며 시험합니다. 마귀가 시험하는 것은 학교 선생님과 같이 시험을 잘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험에 떨어뜨리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에 떨어지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그 죄로 인해 멸망당할 것을 원하며 유혹을 하는 자가 마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령님은 예수님을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막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을 마귀에게로 이끄셔서 시험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피해서 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도 당하신 일이니, 보통 사람들이 시험당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상태,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고, 시험을 통해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을 당하시는데, 오늘은 그 중 두가지 시험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 삶에 어떠한 마귀의 시험이 있고, 어떻게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가 마귀의 시험을 당할 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간을 금식하셨습니다. 영적으로는 은혜가 충만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현재의 약점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배고픈 것을 아시고,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 는 말로 시험을 시작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시험의 도구로 이용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람은 약점 투성이 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모든 것을 시험의 기회로 사용합니다. 사람이 배고플 때는 배고픔을 빌미로 시험하고, 배부를 때에는 배부름을 이용해서 시험합니다. 돈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시험합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시험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마귀는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충만한 대로, 은혜가 떨어진 사람은 떨어진 대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잠언 30장을 쓴 '아굴' 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쉽게 죄에 유혹될 존재인지를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꼭 들어달라면 구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부하게도 말고 가난하게도 말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배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 할 것 같고, 가난하여 도둑질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서입니다.
아굴은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시험에 취약한 존재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 삶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넘어 뜨리고자 시험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없는 것입니다. 사십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신 예수님을 시험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이 마귀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마귀의 시험이 잠시 중단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때도 마귀의 시험은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제2의 가인을 만들기 위해서,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무진장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나마 마귀의 시험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시험을 당할 때 내가 시험을 당하고 있음을 깨닫는 영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때로 마귀의 시험에 동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거나 마귀의 시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늘 마귀의 시험을 경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이제 마귀가 예수님의 굶주리심을 보고 마귀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하라”
금식하셨던 분들은 경험하셨겠지만, 며칠 음식을 먹지 못하면 뭘 볼때에 음식이 연상이 됩니다. 만약 제가 40일간 금식한 상태에서 돌을 보았으면 저게 빵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중얼 거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귀의 말에 따라 돌로 빵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닙니다. 돌로 떡을 만든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할 음식이 두개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육신의 음식입니다. 이것은 내 몸을 살게하고 힘을 내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음식입니다.
그런데, 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이것은 육이 아니라, 우리의 영의 양식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34절에 예수님은 이 양식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의 양식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그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의 음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서 쓰여질 때에 가장 값진 것입니다.
“뱀은 아침 이슬을 먹고 독을 만들고 젖소는 우유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먹는 것을 가지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의 능력은 무엇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 능력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육신적으로 강한 분들도 계시고, 물질적인 풍요함을 가지거나, 사회적인 권세를 가지신 분들도 계십니다. 마귀는 이것을 가지고 각자의 욕망을 채우라고 시험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바램을 따라 돌로 떡을 만드는 능력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떡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돌로 황금을 만들어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은, 그 주신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쓰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임을 마귀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그냥 두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돌로 만든 떡 만들기를 거부하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굶주리게 놔두신 것이 아니라, 천사를 보내셔서 예수님을 수종들도록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우리의 욕망을 거절했을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손길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3. 마귀가 이번에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웁니다.
그리고 마귀는 예수님을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그런데 마귀한 한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시편 91:11-12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91편 말씀은, 하나님께 피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환난으로 부터 보호해 주실 것을 찬양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시험하는데 왜곡되게 사용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너를 환난에서 당연히 구해주실 것이, 한번 성전에서 떨어져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집인, 성전 꼭대기에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귀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마귀의 시험은 교묘합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만듭니다. "당신이 하나님이시라면 나를 책임져 주셔야하지 않습니까?" 하고 성전에서 뛰어 내리도록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뛰어내리라고 해서 뛰어내린다면 그것은 믿음의 행위지만, 하나님이 지시하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운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절대적인 주권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케 하는 마귀를 향해서 그 하나님이 "주 너의 하나님"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마귀에게도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나님이 자신의 주인임을 부인하기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시험과 환란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건지시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사드락 메삭과 아벧느고가 마치 성전꼭대기에서 밀려 떨어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바벨론 왕이 금신상을 세워놓고, 사람들이 악기 연주 소리를 들을 때에 그 신상을 향해서 절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는 신상에게 절하지 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들에게 다시 한번 말합니다. “지금이라도 신상앞에 너희들이 절하면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질 것이다. 그러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고 말합니다.
그 때에 세친구가 자신을 시험하는 왕께 말합니다.
다니엘 3:16-18,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 세친구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가운데서 구해 주시지 않으셔도, 그들은 “당신은 나의 주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그의 자녀된 백성 사이를 이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임을 입증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게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입증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되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살 때에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은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까지 시험했던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모든 떄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험합니다. 성령충만한 상태에서도 시험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도 시험합니다. 가난한 것에 관해서도 시험하고 부한 것에 대해서 시험합니다.
우리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육신적인 양식을 구하는 삶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이를 행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을 양식으로 삼을 때에 우리는 마귀의 시험을 이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녀를 입증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교묘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도록 합니다. 3절에 마귀를 가리켜 시험하는 자라고 했는다, 마귀는 우리도 하나님을 시험함으로 마귀와 같은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시험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믿고, 그 주권을 인정하며 살 때에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환란과 시험이 많은 이 때를 살아가지만, 이 때일수록 예수님과 같이 말씀을 양식으로 삼고, 주님만을 신뢰함으로, 환란이 연단의 기회요, 시험이 우리의 믿음을 선명하게 하나님께 드러내는 시간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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