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4/2021 - 반전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5:24-30] - 부활주일
인기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되면 그 내용 중에 관객들을 놀래키는 반전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아주 착하게 보이던 인물이 흉악한 범죄자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고, 가난하고 별볼일 없어 보이는 주인공이 나중에 알고 보니 커다란 재벌가의 아들인 경우도 있습니다. 관객들은 인물들의 반전을 보면서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그처럼 반전을 거듭하는 인물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삶은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는 인물에 주목했습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삼십대의 젊은이었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돈많고 권력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관심할텐데 예수님은 그러한 이들에게는 엄격하게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대신 예수님은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 그리고 죄인들에 온유하셨고 인자함으로 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도 하나의 반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실 때에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는 커녕, 며칠 후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동족들에 의해 십자가의 죽으심을 당하십니다. 대단한 인물이라고 여겨졌는데, 아무 것도 아닌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허무하게 죽어간 예수님의 죽음을 보며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애에서 최대의 반전은 예수님의 부활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에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은 실망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들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녀들은 지난 이틀간 절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식일이 끝났을 때 이제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무덤을 찾았지만 슬픈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더군다나 무덤이 돌로 막혀져 있을 것을 알았기에 어떻게 무덤에 들어가야 할지도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이 무덤을 찾았을 때에 기대하지 못했던 반전(놀라움)이 시작됩니다. 무덤을 막았던 커다란 돌은 이미 옮겨져 있었고, 무덤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없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그 시신을 가지고 갔다고 여기며 슬퍼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께서 살아났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서 기쁨과 감사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천년전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그 당시 제자들과 여인들만을 놀라게 한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날까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은 반전의 사건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끼치신 반전의 역사는 무엇인지를 살펴 보며, 누구를 위하여 이러한 반전의 삶을 사셨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가 생명의 권세를 이길 수 없음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모든 소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일들도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지, 죽게 되면 모든 것들이 끝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으로 취급되어져서 죽은 것은, 마치 거짓과 사망의 권세가 가장 강한 권세처럼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도 예수님이 사탄에게 패배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절대적인 능력을 부과하는 경향이 있어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또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아들을 죽음의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삼일 후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가 더 이상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 얽매여 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죄의 죽음의 권세가 가장 강한 권세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절대적인 생명의 주권자임을 확실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갈 때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며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10: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예수님의 부활은 사탄의 죄의 권세, 죽음의 권세가 절대적인 권세가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이 땅에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며 주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내 생명에 위협과 불이익이 올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사탄은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시인하면 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위협함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는데, 제자들은 그렇게 되면 죽을 것 같아서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행사하는 사망의 권세보다 더 강하신 살리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죽음의 두려움속에서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도리어 죽음 앞에 담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고 담대하게 믿음생활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죄의 죽음의 권세에 붙들린 우리들을 영생으로 이끄는 반전을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은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것이 단순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 말고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기억나십니까? 엘리야선지자나 엘리사 선지자들은 각각 죽은 아이를 살리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예수님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기도 하셨고, 나사로를 살리기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우리가 그들 모두의 부활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부활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고 그들은 다시 죽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부활을 알지 못하더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은 다릅니다. 그분의 부활사건은 우리 각자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로마서 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육신적으로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원래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서 죄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죄의 권세는 강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어서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의 권세는 힘을 잃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무엇을 이루셨다는 것입니까? ‘다 이루었다.’는 말은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값을 다 지불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갚아야 할 죄의 값, 죽음을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대신 다 갚아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가 진 빚을 갚아준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일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교인 중 한 부부가 식당에 갔다가 이러헌 기쁜일을 경험하셨다고 합니다. 두 부부가 아침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시고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그 점원이 그냥 가셔도 된다고 하더랍니다. 왜냐고 물으니 어떤 분이 대신 음식값을 치렀으니 그냥 가도 된다고 하더랍니다. 백인 남성이 계산을 했다고 하는데 그분이 누군지도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단지 추측하기는 두 분이 식사하기 전에 오랫동안 기도를 하셨는데 그 모습을 인상깊게 보신 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닌가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일로 그 분들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고 하십니다.
음식값을 대신 치러주는 것도 참 기쁜 일인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죄의 값을 치러주시고, 우리는 생명을 얻었으니 이것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쁜 일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한 놀라운 사건인 것입니다.
부활절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축하하는 날이긴 하지만, 더욱 축하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저와 여러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로인해서 죽었다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시 살았으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위분들을 보시고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도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다시 사신 것 축하드립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반전의 삶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입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 몸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모든 이들이 한번 죽는것이 정하신 이치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모든 이들이 부활할 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내 의사대로 태어나지 않았고, 죽는 것도 내 의사대로 죽는 것이 아니었듯이, 우리가 부활하는 것도 나의 선택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모든 사람은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부활한다고 하니, 어떠한 모습으로 부활했으면 좋겠습니까? 죽으실 때의 모습으로 입니까? 아니면 한창 젊고 예쁘고 건강했을 때에 모습입니까? 부활한다고 하니까 좋은 모습으로 부활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할 때에 우리가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28-29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 때에 모든 이들이 부활하게 됩니다. 새로운 육신을 입고서 부활하게 될텐데, 그 때에 어떤 이들은 살아있을 때에 악을 행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사망에 이르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생명의 부활이 되셨던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죄에 대해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으심으로 죄의 권세를 끊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안에서 죄의 권세를 끊고 선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죄에 대해서 죽을 때에 우리는 비로서 생명의 부활을 가진 자로 부활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의 삶은 나를 열심히 죽이는 시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나의 육신의 욕망을 죽이고, 주의 뜻대로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생에 이르는 반전의 삶을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요약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죄인들을 살리는 구속의 죽음임을 확증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사망의 두려움에 사로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리심의 능력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주의 뜻대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에 모두 다 부활하여 주님의 오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영생의 부활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에, 진정한 생명의 부활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나를 죽이고 내안에 예수님을 살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죽음이 만연한 이 땅에서 참 생명으로 부활하는 영광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끝없는 반전의 삶을 사신 분입니다. 이 모든 반전의 삶은, 죄인된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기독교인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반전의 삶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이 계절에 죽을 죄인을 살리는 반전의 복음을, 죄의 권세가운데 있는 이 세대에 증거하고, 그들을 살리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