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3/2021 -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라 [히브리서 4:14-16]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성격들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성격 유형을 파악하는 에니어그램이라는 테스트를 받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애니어그램은 사람의 성격 유형을 9가지로 구분합니다. 테스트를 마치고 내심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하고 궁금해 했는데, 첫번째 유형인 ‘완벽형’이 나왔습니다. ‘완벽형’이라는 결과를 듣고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치 내가 완벽 한 사람이라고 나온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설명한 것을 읽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꼼꼼하게 하는 것은 좋지만, 세부사항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비판적이어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과 같이 완벽을 요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 설명을 듣고서 괜히 좋다가 말았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도 변하더라구요.
사람이 완벽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러한 모습을 많이 발견합니다.
어떤 분은 먹는 것을 절제하는데 약하신 분이 있으십니다. 먹지 말아야지하면서도 이를 절제하지 못해서 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금전적 유혹에 약하신 분이 있습니다. 돈에 관해서 자유하지 못하고, 집착해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도덕성이 약한 부분도 있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죄가 없이 선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털어보면 흠들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신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함을 지향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영적인 약함이 있어서 넘어지기 쉽습니다.
한국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에 참 존경할 만한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모습은 온유와 겸손 그 자체였습니다. 목회자인 저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늘 상냥하고 친절한 말로 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대화를 하는데 교회에 계시는 다른 장로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다른 장로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말씀하셨습니다. 두분의 사이가 그렇게 썩 좋지는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분을 존경하지만, 모두에게 연약한 부분이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저도 연약함이 많은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저의 모난 부분을 보시고서 상처를 받거나 실망한 분도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연약함’ 이라고 한다면, ‘아스데네이아’라고 해서 몸이나 마음의 연약함, 질병, 도덕적 연약함 등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연약함은 죄의 유혹에 대한 연약함으로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이를 동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제사장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과 죄지은 사람 사이에서 죄를 해결할 중재자로 세우신 사람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이 감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흠없는 속죄짐승을 가지고 제사장에게로 왔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속죄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죄인을 죄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속죄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도 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속죄일에 온 이스라엘을 위해서 속죄제사를 드릴 때에, 제사장들이 가장 먼저 자신들의 죄를 속죄할 짐승을 잡아 제사를 올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흠도 없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연약함을 가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시고,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도
도록 해 주셨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들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에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약자인 이들을 특별히 동정하셨습니다. 몸에 병이 있는 이들과 귀신들린 이들을 불쌍히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들의 병이 죄로인한 것이라고 정죄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동정하셔서 안식일에도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에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깨어있지 못하고 자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시며 동정하셨습니다(마 26:41)
사람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때로 나의 연약함이나 상처를 가지고 사람들을 찾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로와 긍휼을 얻기 보다는 책망을 듣고, 마음이 더욱 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세상에서 받지 못하는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나의 연약함으로 오는 상처와 아픔을 주님께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께 토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나님의 보좌앞에 갈 때에 하나님을 우리의 죄악을 보시고 정죄하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겨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연약함과 죄로 인해서 슬퍼하며 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럴 수록 더 긍휼히 여기시며 품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좌를 은혜의 보좌라 하십니다.
2. 그런데 우리의 연약함을 아는 또 다른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동정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용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죄지은 것을 정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연약함만을 공격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에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하실 것을 보고, 배고프신 연약함을 약점으로 잡고, 돌로 떡을 만들라고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예수님은 사탄의 주요한 타겟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끊임없이 예수님의 연약함을 알고 시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도 우리와 모든 일에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경험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일에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고 성경은 말하지만, 사실 사람이 당하지 못할 시험까지 당하신 분입니다.보통 사람이 경험하지 못할 십자가의 고난과 수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보다 더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흠없는 제물이 되어서 우리를 대속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동병상련’이라는 한자말이 있습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제 아내가 투병을 할 때에 아내를 돌보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의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모습을 보며 아파했지만 백퍼센트 공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도 제 아내의 아픔을 동정하셨던 분이 제 아내보다 조금 일찍 암으로 인해 투병하셨던 사모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제 아내의 힘들고 아픈 부분을 잘 알고 계셨고, 제 아내는 그분을 통해서 위로와 힘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연약함을 가지고 당하시는 고통과 시험, 상처들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경험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긍휼히 여기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위로함을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 그리고 연약한 이들은,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도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얻어야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를 따라서, 유카이로스’ 는 “필요한 때”를 말합니다.
속담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때는 흔한 것 같은데, 꼭 필요로 할 때에 도움을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늘 필요한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도움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분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고, 그러한 도움이 필요할 때에 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로 아무 때나 가지 못했습니다.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 지성소로 들어가게 되면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어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의 막힌 죄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그분께 전적으로 나를 맡길 때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있고, 선함이 있고, 잘 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만이 나의 도움이심을 믿고, 간구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베푸시는 줄로 믿습니다.
4.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에 어떻게 나아가라하십니까?
담대히 나아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담대히’는 ‘파레이시아’라는 단어를 쓰는데, ‘담대하게, 확신을 가지고”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한 연약함 중에 있을 때에 문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숨게 만듭니다. 죄는 우리로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죄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나를 받아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속에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좌로 담대하게,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내가 연약할 수록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께로 와서 주님의 도우심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공로와 은혜 덕분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담대하게, 자유롭게 은헤의 자리로 가서 그의 긍휼하심과 도우심을 받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나아간다는 것은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보좌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은혜요 도움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도록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차마 입을 열어 기도할 수 없는 형편속에 있다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은혜로 도우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언제나 죄지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영향으로 하나님을 아프게 하며,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동정하시고, 우리를 도와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임은 우리의 개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로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우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면으로 볼 때 사람에게도 약한 부분이 있지만, 하나님께도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주님앞으로 나가 도움을 간구할 때에, 하나님은 이를 거절하지 못하시는 연약함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연약할 수록 하나님의 보좌를 멀리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핏공로를 의지하시고 그 은혜의 자리로 감대히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연약함을 이기고, 믿음으로 늘 승리하시는 우리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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