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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qcC2-eACA

 

지난 주일에주 너의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율법사에게 크고 첫째되는 계명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진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는 구별됩니다. 기독교의 사랑의 시작과 기초는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이 제대로 될 때에, 다른 사람이나 피조물들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바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자가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확증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이, 은혜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그 크신 사랑을 받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이를 기억하시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세상에 흘려 보내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 사랑에 이어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번째 계명을 알려 주시고, 두번째 계명은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또한 이웃 사랑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요한일서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면서 이웃만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이웃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들과 불화한다면, 하나님과의 사랑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서로를 볼 때에 서로의 허물과 단점만을 보고자 힘쓰지 마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받은 존귀한 자, 피조물임을 우리가 깨달을 때에,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웃을 존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시선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시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은, 이웃과 내가 하나가되기까지 친밀해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상대방을 보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많은 경우에, 상대방의 입장보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같은 병과 아픔을 경험한 분들은, 상대방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 마치 자신이 경험하는 것과 같이 여기시며 마음 아파하십니다. 사랑은 상대방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경험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듣고, 누가복음 10장에서  나오는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율법학자가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웃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제한적이고,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 외의 사람들은 상종하지 못할 이방인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웃의 경계를 깨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말씀해 주시면서,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고 상대하지 아니하는, 사마리아 사람들도 그들이 사랑할 이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사람을 나와 별개의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도만난 사람을 보면서, 강도만난 사람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하지 않고, 도리어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아픔과 고난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우리의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죽어가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고통과 아픔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7:12을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은, 다른 사람을 내 자신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내가 되기까지 가까와지는 과정입니다. 주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주님안에서 하나가 되기까지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을 때에는 나와 상대방의 차이점에 초점을 하게 되고 멀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게 되면 서로에 대해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친밀해 집니다. 우리가 서로를 볼 때에, 예수님처럼서로에 대해서 더욱 공감하고 이해함으로 사랑으로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이 사랑의 대상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 사랑받을 만한 상대가 있고, 그렇지 못할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에게 잘해준 사람은 사랑할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반대로 나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들은 미움의 대상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은 그러한 사랑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46-48,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는 말씀을 듣지 않았느냐?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은 이웃 사랑을 말하면서, 또한 온전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모든 사람을 모두 사랑하심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모두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전하듯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온전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은, 여러 능력, 재력, 학력, 영력 등을 갖추었기때문에 온전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이들,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은 온전하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분열의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에 분열이 많이 있습니다. 사회계층간에 분열, 빈부격차등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 성도는 서로 사랑함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더욱 사랑하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44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우리에게 있는 원수와 박해하는 사람은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기도해 주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이기적이고, 어리석습니다. 그리고 연약합니다.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하지ㅡ않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그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습니다. 아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그러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잘 훈계하며 성숙하도록 헌신을 합니다

신앙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로의 다름이 갈등이 되어서 미움이 되고 분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도리어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허물이 있는데도 사랑으로 감싸며 하나를 이루어가는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는 갈등과 분열로 많은 상처가운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가운데 교회는 사랑함으로 온전한 교회를 이루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랑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연약하고 미숙한 분들을 사랑과 인내로 양육할 수 있는 교회가 성숙한 교회요 온전한 교회인 것입니다.

옛날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린 자기 동생을 포대기에 메고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도 9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는데 그 여동생이 어릴 때에 업고 다니기도 하고, 동생이 커서 초등학교를 다닐 떄에 부모님이 학교 가야할 일이 있었는데 제가 대신 학교에 가서 부모님 역할을 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도 서로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볼 때에,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품고 안으며, 양육하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라고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이들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더욱 온전해져가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고 "이웃을 사랑" 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명령으로 주십니다. 이웃을 대할 때에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행위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내가 주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하나님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사랑이셨습니다.  

A.D.라마트린이란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은 천사에 가깝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그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구라시는 사랑은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조건에 의한 사랑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고 사랑받을 존재로 만드셨는데, 사람들이 서로 깍아내리고 미워하고 무관심하게 서로를 대하다가 보니 사람이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사랑을 받을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고,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한 엄마가 말썽을 피운 아이를 야단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등을 치면서, “너는 어째 미운 짓말 골라하니? 엄마가 너를 예뻐할래야 예뻐할 수가 없어…”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명령하실 때에는, 예수님은 상대방이 미운짓만 골라하던, 아직 미성숙해서 말썽을 피우든, 나를 해하는 대적자이든 상관없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능동적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를 기억하시며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우리를 통해 우리가정, 교회, 사회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히 흘러가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고,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시기까지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 세상 사람을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 세상에 가득하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습니까? 이 땅에 살면서 날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해짐으로, 이 땅에서의 시간이 복되시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더욱 온전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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