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2/82015 - 순종의 제사를 드립시다. [사무엘상 15:17-23]
성도의
생활 속에서 예배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님 앞에
늘 제사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곧 성공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예배드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버리심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사에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에게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말렉 족속들을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소유, 짐승들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울왕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아말렉왕
아각과 좋은 양과 소는 살려 두었던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왕에게 왔을 때에 사울왕은 선지자에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하면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명령대로 다 진멸시켰다고 보고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소와 양의 울음소리를 가리키면서 “저 소리들은 어떠한 소리냐?”라고 물을 때에, 사울 왕은 말합니다.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긴 것입니다.”라고 보고 합니다.
그
때에 사무엘이 사울왕의 말을 듣고서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행하였으니,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하셨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음을 통보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사를 드리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위해서는 바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면서 제사만을 드린다고 한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가증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로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왕이 왜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해서 그 제사까지 헛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제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삶은 어떠한 삶인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왕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의 불순종에 대해서 실망하시고 그를 버리시겠다고 작정을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사울왕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는 그러한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정 반대였습니다. 17절에 보면, 사무엘 선지자가 말합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사울은 스스로를 작은 자로
여겼던 겸손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첫 왕으로 사울을 세우시고자,
사무엘선지자에게 사울을 찾아가서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삼으라고 했을 때에, 사울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요,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하면서 자신이
왕이 되기에는 합당치 않은 사람임을 고백했습니다. 더군다나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울을 왕으로 소개할 때에는 더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서 누가 왕이 될지에 대해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뽑혔고,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이 하나님이 택하신 왕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울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사울은 짐들 사이에 숨어서 사람들에게 나타나기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원래 자기 자신을 작은 자라고 여겼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 조차도 어려워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다가 보니까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앞서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사울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던 것도 제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군대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급박해서 언제 블레셋 군대가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가야 하는데, 제사를 드릴 사무엘 선지자는 시간이 되어도 오지를 않으니까
사울왕이 자기가 직접 제사를 드리겠다고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사울왕이 드립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서 책망을 받습니다. 제사는 제사장이나 선지자와 같이 그에 합당한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법인데, 급하고 자신이 왕이라고 해서 말씀을 어기고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이러한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되니까 그가 이러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많아지게 되면, 그와
더불어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지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입니다. 이 분별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그것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절대적인 왕으로 섬길 때에 행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23절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재력이 있고,
권력이 생기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왕이 되었다고
한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무익하다 못해 해로운 일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때에는
더욱 신중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능력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더욱 더 많이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능력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에 그 능력을
소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그 능력을 행사하라고 주신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라고
주신 능력이 아닙니다. 가끔
가다가 복권에 커다란 금액이 당첨이 된 사람들이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분별없이 사용하다가 더 큰 불행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재력이 생겼어도, 그러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 능력을 사용하면 유익이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하다가 보니 그러한 불행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그래서 예배에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진정 나의 삶에 왕이 누구신지를 늘 깨달으면서
살아갈 때에 가능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왕이 시고, 나는 그의 말씀을
따르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요,
왕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에,
내가 왕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될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서기 시작한다면 이미 사울과 같이 스스로 왕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를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으로 세우셨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그를 왕으로 세우신 진정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막강한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의 진정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왕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하나님을 왕으로 여기지 않고 불순종의 삶을 살면서, 정작 예배를 통해서 왕으로 고백하며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면,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예배하는지 아닌지를 모르실 리가 없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왕되심을 깨닫고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에, 우리의 예배는 만왕의 왕인
주님께 드리는 진실한 고백이 있게 되고, 그러한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2. 또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욕심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조심할 때에 하나님께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19절에 사무엘이 책망하기를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라고 반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이들을 진멸하라고 했고, 그 짐승들까지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말렉을 철저하게 응징하려고 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멜렉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이스라엘을 길에서 대적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처음으로 전쟁을 했던 민족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냥 두시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신명기 25:19절에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행위에
대해서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셨고 결코 잊지 말고 이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울에게 그 일을 행하도록 중요한 임무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사람들과 그들이 소유한
짐승도 다 죽이라고 철저하게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그가 눈에 보이는 짐승들을 탈취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일 중에서 하나가 욕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모두 진멸하라고 했을
때에, 마치 사울 자신이 그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진 것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죽일 수도 있고, 안 죽일 수도 있는 권세를 자신에게 주신 것과 같은 착각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그러한 주권이 없었습니다.
죽이라고 했으면 다 죽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려고 했을 때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그의 눈 앞에 보이는 양들과 소들이 그냥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었습니다. 살려두고 싶었고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치없고 하찮아 보이는 짐승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였고, 죽이기 아까운 좋은 양과 소들은 살려 두었습니다.
어차피 죽일 것, 죽인 샘치고서 자기가 취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불순종의 죄를 낳고 그를 망하게 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서 성경은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가
이 땅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냥 주시는 것과 같다고
여겨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취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욕심을 내어서 취하게 되면 그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풍요로우신 분이시지만, 때로 사람들을 훈련하실 때에 취하는 것보다는 포기하는 법을 훈련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세상의 것을 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죄된 행위를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울왕에게
가장 중요한 분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다른 것이 다 잃어 버리고 버림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한 분만 계시면 그것이 참 만족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서 무엇을 버렸습니까? 23절에,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어떻게 됩니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도,
눈에 보이는 선악과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그 선악과를 취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에 욕심내서 취하려고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잃었으니 모든 것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취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과 어긋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고 세상의 것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취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어 주시어서 더욱 신령한 풍성함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으로부터 첫번째 이스라엘왕으로 세우심을 받는 은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행할 때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제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쟁하러 갈 때에도 자신이 제사를 드렸고, 또한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도 양과 소를 잡아 둔 것을 제사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제사를 드릴 때에 제사와 순종의 삶은 별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제사, 예배는 순종의 예배를 삶에서 드리고서, 예배를 드릴 때에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서 드리는 제사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제사라고 하는
것, 우리가 드리는 예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져야 하고, 우리의 순종의 삶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삶에 불순종하면서 예배만 잘 드린다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것에서 돌이키지 못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왕되심을 늘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예배의 섬김은 하나님을 만족스럽게 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고, 그것이 모아져서 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욕심가운데 있을 때에 죄를
범하게 됩니다. 세상의 소욕을 따라서 살다가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좋은 것들, 하나님 만 없으면 취할 수 있을 것들에 대해서 금하십니다.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만족이 될 수 있는 신앙의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온 우주만물 다 가져도 하나님이 잃으면 허사입니다. 하지만 아무것이 없다라고 할지라도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빼앗으시고 하나님만을 남기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삶이 되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한 없는
풍성한 은혜를 더욱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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