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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비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목자와 양의 비유로 그 관계를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는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양과 같은 사람들을 바라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목자의 눈으로 양들을 바라보니까 세상의 수 많은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전도자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세상으로 파송받은 제자들을 약탈하고 멸망케 하려고 도사리는 이리와 같은 존재가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리만 보신 것이 아니라, 양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모습도 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풍요롭게 하는 참된 목자가 아니라, 자신들을 해하고 약탈하려는 존재에 사로 잡혀 자신의 목자로 여기고서 좇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안타까운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심을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스스로를 자랑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양들을 구하시기 위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이 선한 목자임을 말씀하신 후에 이 말을 듣던 유대인들 중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에 들려 이런 말을 한다 하며 미친 사람의 말이니 들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만큼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가 목자와 양의 관계인지를 알지 못하고, 알려 주어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애정 어린 고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한 목자로 오셔서 우리를 어떻게 하려고 하시는지를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한 것을 얻게 하기 위해 왔다."

7절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Gate for the sheep)'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의 문은 말 그대로 양들이 드나드는 양 우리의 문을 말합니다. 목자가 하는 역할 중에 하나는 양의 문과 같은 것입니다. 양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양입니다. 양의 문은 양들을 해할 만한 다른 것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양을 지키는 것입니다. 만약에 양우리에 문이 없어서 양도 들어가고, 이리와 맹수들과 같은 동물들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양 우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양은 한 마리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양을 위하여서 문이 되신 것은, 양들을 해하려고 하는 절도, 강도, 도둑과 같은 악한 존재들이 세상에 너무 많은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양들을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양들이 살기 위해서는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을 통과해서 그 안에 들어갈 때에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해하려는 절도와 강도와 같은 자가 누구인지를 8절에 말씀하십니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보다 시간상으로 먼저 와서 목자의 역할을 했던 자들은 당시 종교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사람들을 인도하는 영적인 지도자라고 하면서 도리어 사람들에게 해로움을 입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5:14절에, 바리새인들 향해서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다 구덩이에 빠지리라"하십니다. 결국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멸망하게 하는 절도와 강도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이 왜 양의 문으로 오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양들에게 생명과 풍성함을 주고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사람들의 상태는 죽음의 상태였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죽음은 육신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입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서 사람들은 죄에 빠지게 되고, 그 죄로 인해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 전에 왔던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끊어 놓고, 죽음으로 멸망케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고 죄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삶을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 되셔서 양들이 들어가고 나가며 꼴을 얻게 되는데 더 풍성한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에게 그 필요한 꼴을 주십니다. 꼴이라고 하는 것은 목자가 양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풀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 꼴을 풍성하게 양들에게 주시면서 양들을 풍요케 하시고자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풍성함은 무엇인가를 많이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따르면 없던 물질이 많아지고, 하는 일들이 잘 되어서 명성을 얻고, 권력을 얻어서 무엇인가 많아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풍성함은,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생명을 얻게 되니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풍요 속에 있는지를 깨닫고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구원과 은혜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값지고 풍성한 것을 깨달아 누림에 있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아무리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어도 그 풍성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값지고 풍성한지를 깨닫고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 땅에 살아가도록 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합니까?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 주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 죄인 된 자들이 하나님을 예배케 해 주신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 모든 관계들, 사람들... 우리에게 공급하신 주님의 은혜가 풍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풍요함을 약탈하려고 하는 절도요 강도들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들의 목적은 주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서 주안에서 누리는 참 생명과 풍요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목자로 해서 예수님의 주시는 은혜의 꼴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이들은,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며 감사하며 감격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도리어 불평과 빈곤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가 생명과 풍요함을 얻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해서 따를 때에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을 깨닫고 그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또한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스스로를 선하다고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를 각오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왜 선한 목자인지 삯군과 비교해서 말씀하십니다. 삯꾼은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삯군이 아무리 많은 양을 친다고 할지라도 그 중에서 자신의 양은 한마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삯군이 아무렇게나 양들을 다루냐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삯군도 양의 주인으로부터 삯을 받기에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런데 삯군은 자신이 받은 양 만큼만 책임을 집니다. 그러기에 삯군은 이리가 오게 되면 양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양도 아닌데 남의 것을 살리려고 이리와 맞서다가 자신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양들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 삯군입니다. 삯꾼은 양들에게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양들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시는 분이 바로 선한 목자이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죽이려고 이리가 달려 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 대한 전적인 책임감이 있으신 분입니다. 바로 우리가 당신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이 사람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도 우리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섭니다. 절도요 강도 도둑들, 삯꾼들도 양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그 주장을 철회할 수 밖에 없냐하면 그 양으로 인해서 죽어야 할 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이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을 수 없고, 절도와 강도, 도둑들, 삯군들도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대신 죽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선한 목자이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양들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16절에 보면,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수님을 목자로 따르지 않는 울타리 밖의 양들도 다 예수님의 것으로 여기시고 전적으로 책임을 지시고 살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소유하시고 우리를 전적으로 책임져 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우리의 목자로 여기는 자는 자신이 예수님의 소유임을 깨닫고 예수님께 모든 삶을 맡겨드리고 따라가는 자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은 그 양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예수님은 양된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신 선한 목자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목자가 양을 위해서 죽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소유에 대한 책임감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집에서 키우는 짐승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짐승이 죽는 것을 대신해서 자신이 죽을 수가 있겠습니까? 논리적으로 따지고 보면, 양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있다면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그 만한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선하신 목자는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랑하지 아니하면, 도둑이나 삯군과 별반 다름 없이 행할 것입니다. 양의 것을 취해서 자신의 유익으로 삼고 양은 어떻게 되던지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양들을 악하게 대하는 근거로 삼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랑하면 보 잘 것 없는 그 양들을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8절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으심이 누군가에 의해서 억지로 강요당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한 꼴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그 목숨을 스스로 버리신 것입니다.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양들을 사랑하셔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참된 선한 목자이십니다.

 

4. 그런데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보시는 분이 등장합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양들을 살기기 위하여서 목숨을 스스로 버리게 될 때에, 이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스스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도록 하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구원하고 풍요케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여겼고, 예수님은 그 계명을 양 된 죄인을 사랑함으로 자원함으로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 계명은, 양들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선한 목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생명을 얻고, 세상 사람들이 알지도 누리지도 못하는 영적인 풍성함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들을 위해서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목자로 따라가는 사람들은, 영생의 생명을 가지며, 꼴을 먹고 풍성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양의 문이 되셔서 이리와 강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양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풍성함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날마다 나를 풍요하게 하시기 위해서 준비하신 그 문으로 들어가며 생명을 얻고, 꼴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된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풍성함을 얻은 그분을 따르는 양이라고 한다면, 우리 또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날마다 알아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한 목자가 부르시는 음성을 알아야 하고, 그 뜻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나도 목자를 위해서 헌신하고 죽어야 할 일이 있으면 목숨까지도 내어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목자와 양의 관계를 이미 떠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돌아가셨듯이, 나도 선한 목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목자를 원하지만 내가 그 목자에게 좋은 양이 되는 것에는 관심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더욱 더 알아감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사랑과 생명을 날마다 누리고, 주님을 진정으로 찬양하며 예배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샘터질문

1. 성경에서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표현하신 비유에는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목자와 양 / 포도나무와 가지 등)

2. 목자가 양은 알고, 양은 목자를 안다고 했는데, 목자는 양의 어떠한 부분들을 알고 있습니까? 그러면 양들이 목자에 대해서 알아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3. 목자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어떤 부분을 아실까요? 우리가 목자되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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