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2019 - 제사를 판단하시는 하나님 [시편 50:14-23]
지난 해, 전 교인 수련회에서 “Shack, 오두막” 이라는 기독교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의 주요 인물은 맥(Mack)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 자신의 사랑하는 어린 딸과 캠프장에 갔다가 아이가 성범죄자에게 납치되어 죽임을 당합니다. 그 이후, 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잘못되었다며 원망과 슬픔 속에서 삽니다. 눈 내리는 어느 날, 맥은 발신인이 없는 한통의 초청장을 받는데, 초정 받은 주소로 가 보니 한 오두막이었습니다. 맥은 그 오두막에서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오두막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성령님께서 사람의 형상을 하시고 사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맥은 자신의 딸을 죽도록 내버려 두신 하나님께 원망하며, 또한 자신의 아이를 죽인 성범죄자가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맥이 암흑의 동굴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심판자를 만납니다. 심판자는 맥(Mack)에게 맥의 두 자가 나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그들이 악한 일을 했으니 둘 중에 한 명을 택해서 지옥으로 보내 보라고 하십니다. 맥은 심판자의 제안에 반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자식이 잘못했다고 할지라도, 맥은 한 자녀라도 지옥에 보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판단하던 맥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심판장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까지도 내 기준으로 판단하여 심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진정한 심판장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50장을 보면 하나님을 심판장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이 재판장임을 잊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을 심판하며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을 하시는 분이지, 심판을 당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4-5절에 보면, 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판결하고자 하니 모이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판단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일컫으시길, 이스라엘은 제사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특징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방민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통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제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대로 드리고 있는지를 판결하시겠다고 그들을 모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하나님께 제사로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제물로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구원의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잘 드리는지를 판단하시고자 모으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예배가 잘 드려지고 있는지를 판단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받고자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에 제대로 드려지고 있는 지를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외형적인 부분만으로, 우리의 제사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에 대해서 평가하시면서, 먼저 외형적인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이 드리는 제사의 제물을 두고서는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외형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너 뛰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빠지지 않고 짐승을 바쳐 제사를 드리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해서 잘했다고 칭찬하시기 보다는 덤덤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13절에, "이 땅에 있는 모든 짐승들이 다 하나님의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짐승도 결국 그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질문하시기를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다고 바친 제물들은 사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을 위한 것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제물의 제사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사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화목 제물은 하나님과 화친의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사의 모든 유익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나옵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려서 하나님앞에 나옵니다. 우리는 목소리로 찬양하며 예배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제사드리고 예배드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이 드리는 제물이 없으셔서 받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드리는 것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은 영광가운데 계시는 존귀하신 분입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께 대단한 것들을 해 드리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죄로부터 용서함받고, 창조주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은혜였고 특권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창조주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누리는 복되고 특권의 일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사람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누리라고 제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이 제사의 특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특권인 제사가 제대로 드려지고 있는지를 판단하시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 보다도, 우리에게 주시는 특권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시간이 됩니다. 그러니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을 위해서, 때로는 목사나 나를 인도한 사람을 위해서 드리는 것 같은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예배가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특권을 깨달아 감사함으로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2.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받으시고자 하시는 제물은 짐승 제물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의 언약을 맺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삶이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지기를 하나님은 원해서 였습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평화하게 되었으면, 이제 평소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선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는 잘 드렸지만,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언약을 맺은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들을 16절에, 악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악인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악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언약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이라고 부르신 그들도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외형적으로 제물도 잘 드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언약을 그들이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불쾌하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전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 뒤로 던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알고 전하기는 하지만, 그 말씀을 미워하고 자신은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경히 여기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악인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만 악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드리면서, 악한 일들을 행하는 이들과 가까이 하며 함께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도, 악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적들과 같이 연합하고, 간음한 자와 같이 연합하는 악한 일을 행하는 자의 제사를 하나님은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악한 말을 하는 사람도, 악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네 입을 악에게 내어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testify against),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구나.”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그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악한 말, 거짓말, 공격하는 말, 비방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그 삶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그것이 하나님보시기에 의로움의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삶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그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됩니다.
21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러한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여서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에 동의해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악한 일을 동의하시고 용납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책망하고, 그 죄를 낱낱이 드러낼 것이라고 하십니다. 22절에 보면 그들을 찢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예배자들의 삶을 보시고 판단하고 계시며, 이에 상응하여 행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5:7-8절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예수님은, 외식으로(hypocritical) 예배하는 이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바른 제사를 드리는 이들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23절 후반절에,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외형적인 제사를 잘 드리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감사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14-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인은 감사로 제사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잊지 않고 제물을 드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어떠한 감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까? 한 주간 불평만 가득하다가 이 시간에 예배드린다고 오신 것은 아닙니까? 추수감사 주일에 드리는 예배만 감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모든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잊는다면 감사할 수 없고 불평과 원망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떠난 후 얼마 안 있다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였고, 하나님은 그 일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들이 원망하는 이유는, 만나만 먹는 것이 질렸으니, 고기를 먹게 좀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나는 그들이 그토록 불평할 하찮은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매일 변함없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만나가 없었으면 그들은 이미 광야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보면서 은혜를 경험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은혜를 잊고 불평과 원망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은혜가운데 산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호흡을 주신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이 자연만물도 하나님께서 거져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 자체로도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구속의 은혜를 깨달은 자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를 통해서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는 것도 감사가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날마다 조금씩 발견하고 깨달음으로 시작됩니다.
제 아내가 암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더 지나니까 머리카락 뿐만 아니라 눈썹도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아내는 어느덧 모나리자와 같이 되었고, 어디에다가 눈썹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속눈썹도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속 눈썹이 다 빠지고, 한쪽 눈에 눈썹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하연이가 아내에게 왔을 때에 아내가 하연이를 보기 위해 눈을 떴는데 하연이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제 아내의 한쪽 눈은 떠졌는데, 한쪽 눈만 떠지고 다른 눈은 감겨 있었습니다. 속눈썹이 없으니까 속눈썹의 위 살과 아랫 살이 붙어있었던 것입니다. 그걸 경험한 아내가 속눈썹 하나도 이렇게 소중하구나 말하며, 새삼 속눈썹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제 몸 하나만을 가지고도 감사할 것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손눈썹도 감사하고, 눈을 주셔서 보게 하시고, 코를 주셔서 안경을 쓸 수 있게 해 주셨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감사가 차고 넘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감사할 내용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날마다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고, 감사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제사하고 예배한다고 하면서 도리어 하나님께 악인이라고 판단을 받는 것은 아주 슬픈 일일 것입니다.
22절에 시편기자는 이러한 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고 제물을 바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제사하는 자리나 예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생각함없이 외형적으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생각보다는, 세상적인 생각을 하고 내 생각을 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도 하나님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설교를 하고 들으면서도 하나님 생각없이 사람의 생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생각없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정확히 아시고, 판단하십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드리고도 악인이라고 판단받는 자가 우리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옮다고 판단하시며 받으시는 예배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자의 예배입니다.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자의 예배입니다. 그러한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감사가 흘러 넘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예배가 되고,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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