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2014 -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열왕기하 6:14-19]
오늘
말씀을 보면, 공포와 불안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입니다.
엘리사 옆에서 시중드는 종인 것입니다.
어느
날, 이 사환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보니, 자신이 아람군대에게 둘러싸여서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말이, “아하, 내 주여 어찌 하리이까?” 입니다. 살다
보면 이러한 일들을 한 두 번 겪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당황해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 어떠한 신앙의 자세를 가질 수 있을지를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도 그렇지만,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도 주변국들과 수 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중에 아람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아람은 지금의 시리아지역에 있던 나라로 이스라엘의 북쪽에서 이스라엘을 위협해 왔습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복들과 함께 작전을 짭니다. 그리고 그 작전대로 이스라엘을 쳐 들어가려고 하면,
어느새 자신들이 공격하려고 하는 그곳에 이스라엘 군대가 미리 와서 수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번히 실패를 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니까 아람 왕이 자신의 신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잔뜩 화가 나서 신복들을 불러 놓고,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고하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
때에 신복 중에서 한 사람이 왜 그렇게 됐는지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 주 왕이시여, 우리 가운데 이스라엘 왕과 내통해서 비밀이 샌 것이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왕이
침실에서 하는 이야기까지도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고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왕이 하시는 모든 말들을 듣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엄격하게 따져 보면, 이것은 엘리사가 듣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신통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람왕의 말하는 것을 들으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사야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알려주시니까 엘리사가 그러한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람왕은 엘리사가 그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
그에게 그 일들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입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식해야 할 존재는 새나 쥐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할 때에 의식해야 하는 분은 우리의 비밀스럽게 이야기하는 것들도 다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마음까지도 다 아시는 것입니다. 사람 몰래 비밀스럽게 말한다고 하나님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 말한 대로 보응하시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기에 합당한 말이면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삼가하는 것이 성도의 말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아람
왕은 자신이 몰래 나눈 말들을 엘리사가 다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아람 왕은 도단성에 있는 엘리사를 잡아오라고 즉시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아람의 군사들이 말과 병거를 동원해서 도단성에 도착해서 성을 에워 쌌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그 날 밤에 몰래 도단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아침에 처음 발견한 사람이 엘리사 선지자를 수종드는 사환이었던 것입니다. 온 성을 둘러 싸고 있는 적군 아람군대를 보니 이제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가서 고합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합니다.
사환은 그 군사들을 보고 두려움 가운데서 어찌했으면 좋겠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아람군대가 잡으러 온 당사자인 엘리사는 그의 사환과는 딴 판입니다. 같은
아람군대를 보면서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떨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고 이상한 말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사환도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저 종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사환의 눈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눈은 육신의 눈이 아닙니다. 육신의 눈은 이미 뜨고 있었고, 그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종이 가진 또 다른 눈인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영의
눈을 떠서 다시 한번 보니까 엘리사를 둘러서 산에 가득히 있는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군대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 동일한 상황 가운데서 엘리사는 담대했지만, 그의 종은 두려워서 떨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는 것이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육의 눈과 영의 눈이 함께
떠 있어야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종은 자신을 해하려는 문제만을 보았지만,
엘리사는 그 큰 문제 가운데서 자신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았던 것입니다. 엘리사도
그의 종과 같이 연약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람군대를 상대로 해서 육신적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들을 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아람군대가 밤중에 몰래 침입했다고 하지만,
아람왕이 침대에서 말하는 것까지도 아는 엘리사 선지자가 그 엄청난 아람군대가 온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도 요동하지 않고 그 성에서 그 아람군대를 맞이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은
약하지만 자신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있으니 아람군대가 전혀 문제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대적할 수 없는 대적과 문제를 만났을 때에,
위기에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심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는 엘리사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섬길 영적인 존재인 천사를 보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4절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 얻을 후사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섬기라고 하늘의 천사를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시편 8편에 다윗은 말하기를 사람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사람보다 조금 더 낫게 만드셔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잘 섬길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군대와 천사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심을 깨닫고 믿는다면,
우리 성도들은 두려움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침에 엘리사의 종처럼,
육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의지할 때는 “오늘 하루 어찌 살아가란 말입니까”
절로 한탄이 나오지만, 엘리사와 같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군과 천사가 나를 에워싸고
보호하고 계심을 믿고서 나간다면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직접 불말과 불병거를 보고,
천사를 보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자녀를 보호하시고
섬기도록 천군과 천사를 보내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또한 영적인 눈이 멀게 되면 부질없이 용감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엘리사를
본 아람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러 산에서부터 한꺼번에 내려 옵니다. 당연히 엘리사를 아무 어려움 없이 잡아 왕에게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내려옵니다. 하지만 그들도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불말과 불병거가 있음을 보지
못했고, 자신들이 죽을 자리에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종의 영적인 눈을 뜨게 했던 엘리사는 다시 한번 기도합니다. 이번에는
자신을 잡으려고 내려오는 아람군대를 향해서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합니다. 아람군대의 눈이 어둡게 되었습니다. 눈이 어둡게 되니까 아무 것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눈이 어둡게 되면 무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아무리 막강한 군대라고 할지라도 그 눈을 닫아 버리시니까 힘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눈먼 아람 군사를 데리고서 사마리아성으로 데리고 갑니다. 사마리성은 이스라엘 왕이 있는 수도입니다.
그곳에 눈먼 채로 끌려 들어가게 되었으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꼼짝없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아람군대의 눈을 멀게 함으로,
영적인 눈이 멀어져서 살아가는 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는 곳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이 이끄는 데로 끌려 가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있으면 눈에 보이는 것을 분별하게 합니다.
좋아 보이지만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보입니다. 넓은 길이지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이고,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좁은 길로 걸어가야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눈이 닫혀져 있으면 이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은 어두움에서 다니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지혜있게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보겠다고 할 수도 어두움으로 가게 되지만,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은, 생명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영의 눈을 떠서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산다면,
이미 어둠이 아니라, 생명의 빛 가운데서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발전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소홀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영의 세계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알려주시고, 그것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엘리사와
같이 매일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보내주신 영적인 존재인 하늘의 천군과 천사를 보는 일은 너무 흥분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때로
어려움과 위기가 닥칠 때에 엘리사의 종과 같이 신음소리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아아, 주여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때에 우리는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눈을 열어 주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호하고 계시는지를 보게 하옵소서” 오늘
여러분들의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초점 하면서 살아가십니까? 엘리사와
같이 직접 영의 세계를 보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자 당신의 하늘의 군사와 천사를 보내셔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음을 믿고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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