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5/2015 - 불뱀을 부르는 소리 [민수기 21:4-9]
우리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의 자세 중에서 하나가 감사하는 삶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렇지 못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록 당장 보기에는 좋지 않은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이 억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시다고 믿는 믿음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원망과 불만족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상황을 맞이 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도저히 감사가 나오지 않는 형편에서
하나님께 원망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어느 누구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불평은 자신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뱀을
보내셨고, 그 뱀에 물리는 자는 극심한 고통 중에 죽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또 다른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불뱀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간구했을 때에 그들을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감사할
조건과 원망할 조건이 크게 구별된 것이 아닙니다.
원망할 환경속에서도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더 큰 은혜를 받고, 어떤이들은 원망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인 불뱀을 부르는 것입니다.
1877년에 미네소타 주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1874년부터 77년까지
미네소타 지역은 3년에 걸친 가뭄과 심한 메뚜기떼로 농작물은 전멸하고 대 경제공황에 빠졌습니다.
어느 것 하나 감사할 것이 없는 그 때에 당시의 주지사였던 필스베리(Pillsbury)는, 1877년 4월 26일을 기도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농작물이
전멸하였으나 몸이 살아 있고 앞으로도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먼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렇게 오랫동안 들판에 머물러 있었던 메뚜기들이
거짓말과 같이 떠나 버렸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의 가정과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부르는 자들이 필요한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망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겪었던 사건을 보면서,
감사가 사라진 이 세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하면 늘 경험하면서 살 수 있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일상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며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생 노예생활했던 애굽 땅에서 나와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은 복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잠잘 곳이 늘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길은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신명기 29:5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옷과 신발을 해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매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목말라 죽은 적도 없습니다. 자신들보다 강한 적들이 공격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매일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들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불평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자신들이 가고 있는 코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에돔 땅을 통과해서 가나안 땅으로
바로 올라갔으면 좋을 텐데 에돔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으로 이스라엘이 통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서 먼
길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상하게 되고,
입으로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5절에 보면 그들이 원망했던 내용들이 나옵니다.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먹을 것과 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매일 만나를 주셔서 하루하루를 먹여 주셨습니다. 때로는 메추라기를 내려
주셔서 고기를 먹게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식물도 물도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그들이 먹기에 질렸다고 말한 그 박한 식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박한 식물은 ‘보잘 것 없는 음식’이라는 말인데 곧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만나를 일컬어 이스라엘 백성은 박한 식물, 보 잘 것 없는 음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매일 내리는 만나가 보잘 것 없는 식물입니까?
하나님께서 정기적으로 안정되게 그 음식을 주시고 계시니 그것이 별로 귀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것인지를 망각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 입술에서 원망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감사할 내용이지 원망의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감사는
지금 나에게 주신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은혜로 여길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것을 감사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것도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
만나를 보았을 때에 그 뛰던 감사와 감격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매일 먹는다고 그것이 박한 음식으로 바뀌는
일은 슬픈 일입니다. 감사의 내용을 원망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늘의 해와 달, 수목들,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일들… 이들은 우연히 우리 가운데 있는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공급해 주셔서 그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아내와 남편, 자식들 우리 가족이 그렇고, 이웃과
교회의 믿음의 가족들이 그렇습니다. 매일 만나는 변함없는 사람들과 일들이 그렇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것들을 귀한 만나로 여겨지지 않고 박한 식물로 여긴다면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어느
교회의 사모님께서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셨다가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사모님은 자신의 몸이 이렇게 병들고 망가진 것은
자신이 개척교회 시절에 극심한 고생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회를 한답시고 자신에게
산 고생시킨 남편이 미웠고, 자신을 이렇게 만드신 하나님께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낙망함 가운데 음식도 먹지 않고 우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 목사님이 자신의 스승인 신학대학교 학장님을 찾아가서 아내의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장님께서는
말하시기를 “공책을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 들고 아내에게로 갔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하며 퉁명스럽게 공책과 펜을 받아 들었습니다.
사모님은 노트를 받아 들고 자신이 감사할 일이 무엇인가를 쓰는 데에 좀처럼 그 내용이 써지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사모님께서는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참을 써 내려가다가 문득 사모님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감사의 내용을 글로만
적을 것이 아니라 직접 말로 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
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렇게 했고 며칠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통증이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후에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과 사람들은 박한 식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나에게 꼭 필요한 만나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할 때에 원망이 오지만, 은혜를 은혜인
줄 알 때에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원망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 옵니다. 간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박한 식물로 보며 원망을 했을 때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만나는 먹을 것 없는 광야에서 그들을 매일 살게 하는
생명과 같은 음식이었습니다. 그 만나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곧 자신의 생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박한 식물로 여기고 거부하였던 결과가 무엇인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곧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뱀을 보내십니다. 그 뱀이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물었습니다. 그리고 물린 사람들은 지독한 고통 가운데 있다가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불뱀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면서 불지 말라고 했던 일이 있습니다. 옛날에 뱀을 잡는 땅꾼들이 뱀을 부리는 방법 중에
하나가 휘파람을 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평과 원망의 소리는 불뱀을 부르는 것입니다.
사실 원망했다고 불뱀으로 죽이신다면 그것은 더욱 원망하고 불평할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원망하기 좋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신 것에 대해서 원망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평과 원망은 엄청난 댓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하나의 특별한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그들을
살려 주신 것입니다. 불뱀에
물려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비로서 자신들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 깨닫게 되자 그들의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달려가서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원망이 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망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모습인 것을 뱀에 물려 죽을 위험에 빠질 때에 비로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이 뱀들을 우리에게 기도하여 떠나게 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리고 이에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고서 중보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라고 해서 감사하지 못한 일, 그리고 그 일상적인 것들을 불평하며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해서 원망했던 일들이 있습니까? 원망의 소리는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원망이 아니라 감사와 간구로 나아갈 때에 진정한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사람에게
염려할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뢸 때에
하나님께서는 평강가운데서 선하게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은 불뱀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개와 모세의 중보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아라. 그리고 뱀에
물린 자들이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모세는
그 말씀을 듣자 마자 서둘러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위에다가 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았습니다.
불뱀은
하나님의 일상적인 은혜에 대하여서 감사하지 못하는 자들의 원망과 불평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놋뱀을 장대에
올리셨고 이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은 하나님의 용서의 상징입니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지만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뱀은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용서하심으로 그들을 살게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에 놋뱀을 바라봄으로 살 수 있듯이, 우리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인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요한복음 3:14-15절에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이 놋뱀에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도 이 놋뱀이 장대에 달린 것과 같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구원을 이루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불평이 많은 이 세대에 하나님의 참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원망의 소리가 나오고자 할 때에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원망할
것이 많은 십자가 위해서 자신들을 조롱하고 죽이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라” 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그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할 때에 우리는 원망이 아니라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마태복음
5:45절에,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해와 비를 주시듯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또한 오늘날의
사람들의 삶을 보면 많은 면으로 볼 때에 감사할 것이 많은 환경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삶을 원망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불뱀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평은
불뱀을 부릅니다. 불평하는 삶에는 유익이 없습니다. 나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나를 파괴하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깨뜨려 놓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차단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더욱 더 힘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감사는 감사를 낫는 법입니다.
나에게
주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매일의 만나임을 깨달으십시오. 그 만나를 매일 먹는다고 해서 박한 식물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매일매일
대하는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과 일상들이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감사의 내용입니다.
그
사람들과 일들을 자세히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과 환경을 통하여서 나를 연단하시기도 하시고, 격려하시기도 하시며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불평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생길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죄인
된 나를 위하여서 한마디의 원망과 불평 없이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과 죽임을 당하신 그분을 볼 때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일상을 통하여서 하나님께 더욱 감사함으로 은혜를 누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늘 바라봄으로 원망과 죽음의 세대 가운데서 참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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