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6/2014 - 빚을 갚는 삶 [로마서 13:8-10]
사람들
중에 빚지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래저래 빚을 지면서 살기 일수입니다.
미국에 와서 느낀 문화의 차이점 중에 하나가 ‘빚’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한국 분들은 빚지고 사는 것을 싫어하셔서 가급적이면 빚을 지지 않고
살려고 애를 쓰고, 어쩔 수 없이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빨리 갚아야 편해 하십니다. 그런데 미국의 문화는 빚을 지고서 사는 것이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집이나 차를 살 때에 은행에서
‘융자’를 얻어서 사고 그것을 장시간 갚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평생 은행에 빚지고 살아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한가지 빚은 져도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피차 사랑의 빚’인 것입니다.
사람들 간에 물질적인 빚이나 손해 관계속에서 빚이 있으면 그 관계는 온전히 설 수가 없습니다. 이런 빚의 관계속에서는 자칫 친구도 잃고 이웃도 잃습니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잃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빚은 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빚’은 다릅니다. 사랑에 빚지고 그것을 갚을 때에 서로 더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더욱 커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사랑의 빚을 지고 있으며, 어떻게 그 사랑의 빚을 갚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람들이 은행에만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커다란 빚을
지고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빚입니다. 요한일서 4: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숙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날마다 날마다 깨달아 지고 그 사랑에 녹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처음 창조하실 때에도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이 모든 것들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시려고 지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기에
좋도록 맞추어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버렸을 때에도 동일했습니다. 아니, 도리어
더 큰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사람들을 죽음에서 살리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셨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 사랑하다가도 서로에게 서운하게 하거나,
이해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미움의 관계로 변합니다. 한번 틀어지는 것은 순간인데,
원래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기에는 오랜 시간과 수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사람의 죄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사랑으로 덮어주시고, 그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기까지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사람들에게 내어 주셨으니
그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최고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요,
예수 그리스도께 생명을 빚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최고의 사랑을 빚진
자들입니다. 빚진
사람들의 관심은
"그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관심도 동일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진 사랑의 빚을 갚아드릴 수 있을까"가 성도의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때로
어떤 분들을 만나면,
"나는 빚지고는 못살아"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러한 분이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것을 깨닫게 되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들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셨던 것과 같이, 저와 여러분의 매일의 삶도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갚아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갚아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의 빚은 이웃을 사랑함으로 갚아 나가게 됩니다. 빚은 하나님께 졌는데,
그것을 갚는 것은 사람에게 갚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형제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도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하였습니다.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 모든 율법 하나하나를 다 지킬 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남을 사랑할 때에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율법보다 우선하는 것이 사랑입니다.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법은 사랑을 우선으로 하고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적으로,
곧 의무적으로 강제적으로 받는 것은 사랑하지 못할 때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율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가족이나 이웃들과의 관계가 의무적이고, 법적인 옳고 그름의 관계로 여겨지면 사랑이 부족함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을 포함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그 율법이 자연스럽게 지켜지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불법적인 간음을 하겠습니까? 살인을 하겠습니까? 이웃의 것을 도적질하고
탐내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법적인 조항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러한 것이 실제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간음하고
싶고, 살인하고 싶고, 도적질하고 탐내고 말씀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으로 고민한다면 나의 준법성, 도덕성을 점검하기 전에, 우리의 사랑을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대에는 지금보다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갚는데 더욱 소홀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제 피차 사랑하기에 더욱 힘든 시대를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마태복음 24:12절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하셨습니다. 사랑이 없으니 하나님의 법이 아닌 불법이 세상에 성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11월 5일에, 미국 플로리다에서 목사 2명과 함께 공원에서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눠 준 90세 노인이 시의 조례를 어겼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경찰들의 수갑에 채워져 체포되었습니다.
그 지역 사회에서 ‘마더 테레사’라고 불리는
애벗 할아버지는 ‘Love Thy Neighbors’라는 자선단체의 회원이고, 늘 노숙자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의회에서는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실시할 경우
노숙자가 늘어난다고 우려해서, 무료 급식을 할 때에 지키기 까다로운 조례를 제정하였고 이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2011년에
‘웨웨’라고 하는 두 살 난 여아가 시장을 지나가는 차에 두 번이나 치이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시장 길에 있던 여자 아이를 미니 밴이 치었고 그 아이는 시장 길가에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는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아이를 그냥 놔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차가 와서 또 다시 그 아이를 쳤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그 이후에
병원에 이송이 되었는데 뇌에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사고 난 사람을 도와 주기 꺼려하는
것은 전에 어떤 사람이 도로에 쓰러져 있는 81세의 할머니를 도우려고 하다가, 도리어 가해자로 몰리는 바람에 그러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확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를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도와주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없는 법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날 법이 강화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사랑이 강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법을 따지기 보다 사랑을 따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법이 지켜지기를 원하시지, 법으로 인해서 사랑이 식어지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빚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그 빚을 갚고자 하는 이들도 줄어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식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일서 4:21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또 그 형제를 사랑할지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은 그 형제를 사랑함으로 주님의 사랑의 빚을 갚는 자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갚고자 하는 자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사람을 살리는 사랑이셨습니다. 지금도 사랑의 빚진 자들을 통하여서 죽어가던 영혼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한국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온 것도 하나님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젊은 선교사들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낯선 땅에 와서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서 낯선 땅에서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고,
또 그러한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서 수 많은 선교사들이 땅끝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갚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죄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은 더 큰 사랑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으셨습니다. 상대의 허물이
보이면 보일 수록 더 큰 사랑으로 그것을 덮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베드로전서 4:8절,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컸듯이, 성도의 사랑도 큰 사랑입니다. 허다한 허물을 덮을 열심있는 사랑을 하는 것이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볼 때에, 인생은 하나님에게 진 사랑의 빚을 날마다 갚아나가는 것이 인생일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아무개야, 너는 세상에 있을 때에 나에게 진 빚을 얼마나 갚았느냐? " 저와
여러분은 ‘피차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람들, 가족, 교우들, 이웃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빚진 것을 갚으라고 우리에게 주신 이들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께 진 사랑의 빚을 날마다 갚아드릴 수 있는, 그래서 피차 더 큰 사랑의 관계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풍성한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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