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2014 -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누가복음 10:17-20]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기 주일마다 우리는 제단에 있는 초를 하나씩 켜면서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신 분인지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첫번째
주일에는 소망의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주일에는 평화의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오늘 밝혀진 세번째 초는
기쁨을 의미하는 촛불입니다. 사람들마다
기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기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수고하고 투자를 합니다.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좋은 물건을 사기도 합니다.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중국에는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 주는 격언이 있습니다. “하루가
행복하려면 술을 마시고, 일주일이 행복하려면 돼지를 잡고, 한 달이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평생이 행복하려면 정원사가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격언이 영국에도 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소를 가고,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을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일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짓고, 평생을 행복하려면 정직한 인간이 되어라" 생각보다
행복하려고 투자하는 것에 비해서 그 행복의 시간은 짧다고 여겨집니다. 결혼이 고작 일주일이나 한 달의 행복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참 충격적이네요. 사람들이 이러한 막대한 투자를 통해 행복의 순간을 맛보려고 하는데, 그 기뻐하는 순간은 잠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잠깐 기뻐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라"고 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빌립보서 4:4절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으로 우리들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삶을 본다면, 예수님은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사셨다고 말하기가 힘이 듭니다. 예수님은
사실 결혼의 달콤한 기쁨도 경험하지 못한 총각이셨습니다. 더군다나 집을 사서 행복해 하신 경험도 없으십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세상에 가치로 따진다면 예수님처럼
재미없게 사신 분은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고자 하는 기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안에서 누리는 항상 기쁨은 감정적으로 항상 기뻐하는
그러한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슬퍼하실 때가 있으셨습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채찍을 만들어 쫓아내시면서 화를 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실 때에는 하늘을
바라보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면서 절망해 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기쁜 일도 있고, 화낼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즐거운 일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깨닫는 것은 희로애락의 순간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기뻐할 만한 내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기쁜 모습을 하며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며칠 전에 제자 칠십명을 전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각 마을로 둘씩 짝지어서 보내셨는데, 그들이 그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기쁨 충만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기쁨을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된 성도들이 주안에서 누릴 수 있는 변함없는
기쁨은 무엇인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엇보다도 제자들의 기쁨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감당할 권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쓰임받는 기쁨입니다.
사역의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서 아무리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이 땅을 떠나게 되면 그만입니다. 그 삶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삶은 다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수고하고 애쓴 삶을 기쁘게 받아주시는 주님이 계시고, 우리는 그 앞에서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보고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자로 보내시기 전에,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각 마을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 길에서 제자들이 능력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병도 고치고 심지어 귀신도 쫓아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이제 예수님 앞에 다시 돌아 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님의 일들을 하면서 경험했던 놀라운 경험들을 예수님 앞에 나와서 보고하면서 기뻐했던 것입니다.
흥분되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기쁨은 그들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보고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주신 명령대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거룩해 지며, 또한 죽은 영혼들을 구원할 전도의 사명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사역들을 보고하면서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서 그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이 땅의 사람들과 만나서 기뻐하고 즐거웠는데,
이제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어느 것 하나 주님께서 기뻐할 만한 내용이 없고, 걱정만 된다면 주안에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쁨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보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돌아와서 최고로 기뻐하며 보고한 내용은 그들에게 믿음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니까 귀신들도 항복했다는 것입니다. 그 악하고 더러운 존재가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영적인 권세를 주시고, 진정한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회적인 약자들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싸워서 승리의 기쁨을 누릴 만한 위치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다른 사람에게 굴복해야 할 형편이지, 누구를 굴복시켜서 항복을 받아낼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적인 권세를 주셔서,
악한 귀신의 권세를 이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19절에 보면,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누렸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였습니다. 영적으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는 영적인 권세 안에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누리게 되는 기쁨은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이 있고, 또 그 사명을 감당하면서
영적인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일을 맡겨주신 것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기 쉬운 사람이지만, 그래도
사명 감당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영적인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성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면서 얻는 기쁨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지 하나님의 일들을 하는 것에 대해서 소중하고 기쁘게 여겼습니다. 좀 불편하고 힘들어도 주님의
맡겨주신 일들을 힘쓰는 것에 대해서 기쁘게 여겼고, 또한 그러한 일들을 하면서 영적인 권세를 사모하며,
그것을 누리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수고하기 보다는 편안하게 잘 짜여진 환경에서 잘 정착하고 싶어합니다. 그것도 나름대로 복이고 기쁨이지만, 주님 앞에 섰을 때에 그 수고하고 땀 흘렸던 사역을 보고하는 것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권세가 또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쁨은, 예수를 믿는 자들의
이름이 구원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전도하러 갔을 때에,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했습니다. 그만큼
제자들이 하는 사역은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사단의 하늘에서 떨어질 정도로, 악한 권세에 맞서는 강력한 힘이 그들의 전도 사역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기뻐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십니다. 제자들이
영적인 권세로 귀신을 항복케 한 것이 기뻐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기뻐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보좌에 여라개의 책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생명책입니다. 그 생명책에 기록될 때에 구원함을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15절에는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며 영적인 권세를 체험하는 것도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귀신을 좇아내라고 주신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주신 유일한
이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영적인 기적을 체험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로 믿는 그 믿음을 통하여서 우리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살면서 자신의 이름이 어디에 새겨지는 것이 가장 귀하다고 생각을 합니까? 좋은 대학의 졸업장이나 좋은 회사의 명단에 들어가면
참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취직하기가 쉽지 않은 때에,
자신의 이름이 합격 명단에 들어간다면 정말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기뻐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하여서 우리가 구원함을 받고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물질로, 명예와 권세로는 하늘나라의 조그마한 구석도 차지할 수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 받고,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장수하는 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더욱
기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기쁨을 채워주시려고 오셨다거나, 감정적인 기쁨의 상태를 유지시켜 주시려고
오셨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일들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음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어서 영적인 권세를
가지고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때로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는데 결코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힘들고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어하는 순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도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에는 기쁨으로 변하고 상급이 됨으로 인하여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2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다가 핍박을 당했던 선지자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 풍요하고 잘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뻐할 것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사명을
주신 주님 앞에 서는 날에 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고 힘이 들수록 더욱 상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았음을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가기 위해 애를 써도 하늘나라 문턱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고, 그 하늘의 기쁨을 이 땅에서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대림절 기간에 예수님을 기억하며 회복해야 할 기쁨인 것입니다. 이
대림절을 지내면서,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으로 우리의 기쁨을 삼으려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기쁘게 여기며, 그 사명을 감당할 만한 영적인 권세를 주심을 감사드리며, 우리가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는 그 날에 기쁨으로 주님 앞에 설 것을 기대하며 기뻐할 수 있는 기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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