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2/2015 - 새 언약 아래 있는 성도 [예레미야 31:31-34]
오늘로, 사순절 다섯번째 주일을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구원해 주신 사건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약속 아래 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우리들이 어떠한 언약의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141년 중세 독일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바리아 제국과 스와비아 제국간에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바리아 제국이 싸움에 밀려서 군주인 울프 공작은 자신의 성 와인스버그에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 성밖에는 적인 스와비아 제국의 프레드릭 공작이 동생 콘라드 왕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와 성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울프 공작은 더 이상 버텨봤자 승산도 없고 자신의 백성들이 더욱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을
염려하여, 두 가지 조건을 걸고 항복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조건은 여성들은 죽이지 말고 살려 달라는 것과, 두번째 조건은 그 여성들이 성 밖으로 항복하고
나갈 때 그들에게 가장 귀한 것 한 가지를 가지고 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건을 들어주면
성과 성안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와비아 제국의 콘라드 왕은 울프 공작의 제안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하겠다고 문서에 서명까지 했습니다. 그 약속을 근거로 드디어 와인스버그 성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성문이 열리자 콘라드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생명을 보장
받은 여인들은 모두 자신의 남편들을 업고 힘들게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이 가지고 나온 가장
소중한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적인 콘라드 왕은 그 모습에 놀라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콘라드왕은 그 자리에서 여인들과 그 여인들이 업고 나온 그들의 남편의 완전한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연회에 초청하였고, 더 좋은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때 평화 협정을 맺은 와이버 트로이의 언덕은 지금까지
‘여인들의 헌신’ 이라고 불리어 지고 있다고 합니다.
약속이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약속을
잘 지킴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잘 연결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서로 적대적인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고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게 되면 좋았던 관계도 불신의
관계로 어긋나게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수고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관계가 되어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때에 구원받을 것을 약속해 주셨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에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 것을 약속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약속을 말할 때에 언약,
Covenant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언약은 히브리어로
“베리트(Berith)”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맨다. 묶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킬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묶어지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는 존재가 아니라,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로 단단하게
묶여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인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구속의 언약을 제안하고 맺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와 약속하셨고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유일하게 언약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하였습니다.
왜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언약이 필요합니까? 과거에
세운 언약이 안타깝게도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말씀하시기 전에 과거의 언약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과거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만나주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주시며 언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파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맺으실 때에는 마치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염두하시면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부부의 약속만큼 신중한
언약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처럼 가까운 관계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부부의 관계로 말씀하신 것은 그 만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하나되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된 이스라엘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남편 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남자인 이방의 신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이방의 신들을 더욱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데, 도리어 이방인의 신들의 말을 따르고 숭배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은혜 가운데 주어진 언약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가 깨지게 되고, 그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망하게 되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그 죄의 권세가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를 떨어지게 하였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종노릇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가진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언약의 관계를 얼마나 유지하고 지켜 나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내와 같이 여기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옆집 아저씨와 같이 여기는 소홀함이 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더 가까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세상의
물질을 섬기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살아가는 자의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가운데 있는 자들은, 하나님과 내가 하나로 묶여 있음을 알고 친밀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최초의 민족이고 하나님께서 아내와 같이 친밀함
가운데 있기를 원했지만 결국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하고 죄에 종노릇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간 언약을 깬 그 아내나 남편을
상대로 다시 새 언약을 맺고 싶으시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은 모세의 율법을
반복하는 것도 아니고, 혈통적인 이스라엘에 머무르는 것도 아닙니다.
34절에 보면, 하나님은 새 언약을 세우시면서,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죄사함의
역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히브리서 9:15절에,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맺으시는 새 언약은 예수님을 통해서 세워집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마다 하나님의 새 언약의 관계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죄로부터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받을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키신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한 약속의 삶을 살아가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약속을 파기한 자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이 세워질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새 언약 아래에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우리를
통해서 체험되어진다는 것입니다.
1) 먼저 33절에 보면, 하나님은 새 언약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두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돌판과 양가죽에 새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마음에 새기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다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새겨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부활절부터 성경책과 찬송가를 새로운 버전으로 바꿉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배부장 김순자 집사님께서 단체로 구입하기를 원하시는 분들께 성경책 샘플을 프린트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책이 정말 다양하더라구요. 휴대하기 편하게 작게 나온 성경책도
있고, 반대로 읽기 편하도록 글자를 크게 해서 출력한 성경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낱말을 해설해 주는 친절한 성경책도 있었습니다. 성경책을
읽는 독자들의 상황에 맞게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은, 성경책이 다양하고 아름답게 출판되어서 가정에 장식물로 꽂혀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종이에 새겨진 글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지고
우리의 마음속에 기록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드리기를 원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사람은 그 말씀을 법으로 해서 살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법이 되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마음에 세상의 잡다한 지식과 경험을 새기고자 열심을 내지만, 하나님의 새 언약 가운데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새기며, 그
말씀을 법으로 해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은 새 언약을 통해서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9-10절에 보면, 제자 빌립이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의 새 언약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더 많이
알기 위한 사모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됨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 어떤 것을 아는 것보다 기쁘고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예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8절에,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런데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것은 머리로 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에, 히브리어 로‘야다’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것 또한 부부간에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갈 때에 쓰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해서 아는 것입니다.
처음에 남녀가 만나서 연애하면서 서로를 알아 갑니다. 이미 충분히 아는 것 같아서 결혼을 하는데 부부가 되어서 함께 한 몸이 되어서 살아가다가 보면 서로의 민 낯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결혼 첫날 아침에 아내가 화장을 지운 모습을 보고 다른 여자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함께 살면서 서로의 진짜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알아갑니다.
하나님의 새언약 가운데서 이들은 하나님을 진짜로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삶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베드로와 바울이 경험하고 전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임을 경험하여서 알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새 언약아래 있는 사람들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만남과 동행을 사모하며, 매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포로 중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새 언약을 통해서 사람들을 죄로부터 용서해 주시고, 다시는 기억지 아니할 구원의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워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약속을 우리에게 진실하고 성실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새 언약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의 몫을 감당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 믿는 자들도 우리의 언약의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법으로 알고 마음에 새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우리 심령 가운데 두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밝히며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우리는 그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더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속에서 체험할 때에 가능합니다. 배워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적으로 체험하고 만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이 사순절 기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실하게 지키신 언약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약속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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