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2015 - 다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11-19]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이렇게 전 교인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청교도들이
1620년, 미국으로 이주한 역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당시 영국은 성공회라는 국교가 있었습니다. 영국 성공회는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반대하며 세워진 영국의 국교회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성공회도 점차 개혁정신을 잃어 버리고
형식적으로 변해 갔습니다. 이러한 신앙에 대해서 반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철저하게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이 청교도들입니다. 청교도들의 철저한 경건의 생활은 당시 영국국교회에서 보기에는 문젯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하나님을 잘 믿어보려고 영국을 떠나 네델란드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의 신앙생활도 쉽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심을 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갈 것을 계획했습니다.
청교도들은 7년 동안 힘들여 일해 번 돈으로 항해에 필요한 배를 구입했습니다.
그것이 ‘메이 플라워’ 입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1620년, ‘메이 플라워’에 올랐습니다. 그 항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먹을 물과 양식이 부족한 가운데 65일 동안 대서양을 건넌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한 후, 그 해 겨울을 지나면서 심한 추위와 영양실조 등으로
102명 가운데 44명이나 죽었습니다. 사람이
없으니 늘 일손이 부족해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과로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곳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1622년, 미국에 도착한 그 다음해에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친절한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 고기를 함께 나누며 신대륙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 드렸던, 청교도들의 감사의 신앙을 우리가 기억하며
이렇게 감사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던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오늘 말씀을 보면 마땅히 감사드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감사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열명의 문둥병자를 만났습니다. 문둥병이라고 하면 한센병, 나병이라고도 하는 전염병입니다. 나균으로 인해서 말초신경이 죽어서 아픔을 느낄 수 없고,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는 병입니다. 이 병은 전염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따로 격리되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은 격리되었고 또한 저주받은 인생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문둥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그렇게 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열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시하십니다. “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제사장에게 가라고 하냐 하면,
제사장은 그 당시 문둥병자가 나았는지를 확인하는 검사관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의 나았다고 하는 확인이 있어야 정상인으로서 돌아와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고쳐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보니 자신들의 몸이 깨끗하게 나음 받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명의 병자가 다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홉 명은 자신들이 갈 길로 갔고, 그 중의 한 사람, 그것도 유대인들에게 천대를 받았던 사마리아 인 문둥병자만이 그 나은 것을 보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로 와서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물으시는 질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은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감사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은혜를 받았는지 함께 나누며, 어떻게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는 나를 가까이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서 감사드려야 합니다. 열명의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은 것은 그들에게 어떠한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나음 받은 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고 간구한 것 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그들이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주셨을 때에,
단순히 육신적인 고침만을 목적하신 것이 아닙니다. 관계적인 고침도 허락해 주셨고,
영적인 고침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문둥병자들에게
병이 있었을 때에 그들이 얼마나 멀찍하게 예수님과 사이를 두고 있었는지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님을 맨 처음에 만났을 때에 그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병든 그들이 예수님께로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스스로는 갈 수 없는 한계가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침을 받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온 그 사마리아인을 보십시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예수님의 발 아래 와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 할 수 없었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릴 내용이 됩니다. 원래 저와 여러분들은 죄로 인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속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어지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감히 하나님께로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이들이었지만, 죄의 문제를 고쳐주셔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셔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죄에 권세 아래서 저주받을 자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가까이 올 수 있도록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제는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올 수 있도록 구원의 자리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2. 또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심으로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하러 돌아 온 그 한 명을 향해 선포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께
돌아온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받은 선포는 구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실 때에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문둥병자에게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통해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문둥병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몹쓸 병입니다.
저주받은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다고 했을 때에
지혜있는 자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하고, 나아가서는 자신을 구원할 구세주로 믿는 믿음까지 있게 된 것입니다. 이미 그가 고침받고 예수님께로 뛰어와 엎드릴 때에 그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에 이른 자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리는 것은 믿는 자로서 당연한 모습이고, 구원받은 자들이 드리는 신앙의
고백이 감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오지 않은 아홉명의 문둥병자들도 예수님께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 마음에도 예수님에 감사하는 마음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와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마음으로만 감사하는 성도가 아니라,
그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성도들의 감사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때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감사함에 있어서 조건을 찾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감사할 만한 일이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나의 환경과 상황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메이
플라우어’에 탔던 청교도들이 미대륙에 와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지만, 사실 세상적으로 볼
때에 별로 감사할 내용이 아닙니다. 도리어 시험거리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믿고자 할 때에 그들에게 신앙의 좋은 환경이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대서양을 건너오면서, 그리고 그 추운 겨울을 지내면서 죽어가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랑하는 가족이요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그 미지의 땅에서 정착하고자 수 많은 고생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감사할 내용이 없는데 그들은 그래도 감사합니다. 왜요? 그들에게는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겠다고 핍박을 받아
죽어간 동료들도 하나님께 갔습니다. 대서양을 건너다 죽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도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땅에 정착해서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간 이들도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일년 농사를 지으며
하나님의 풍성함을 감사하는 그들도 결국 하나님께로 갈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합니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유다가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멸망 당하기 바로 직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죄가 극에 다다랐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에 기근을 주십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의 열매가 없어집니다. 외양간은 있는데 그 안에 송아지들이 질병으로 죽어갑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그 상황 가운데서 고백합니다.
그래도 하나님 저는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 인해서 내가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즐거워할 수가 있겠습니까?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와 감람나무 열매를 얻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양과 소를 빼앗기고 잃어버려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슬퍼하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갈 때에 때로는 이러한 일을 경험합니다. 통장에 잔고가 없고 적자가 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굶주립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친구들도 나를 외면하고 혼자 있는 것 같이 고독한 시간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그 하나님을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무화과 나무가 풍성하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아도 내 구원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슬퍼해야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다른 모든 것이 있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빼앗긴 자는 진실로 슬퍼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삶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추수감사주일을 지내고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의 감사는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거두어드릴 것이 없더라도,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암 병원에서 일어난 얘기라고 합니다.
중년의 한 기독교인이 혀에 생긴 암으로 인해 입원을 했습니다. 그에게 내려진 결정은
혀를 자르는 것이었습니다. 암이 퍼져나가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은 혀를 절단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수술을 받는 날,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환자를 보면서, 마취주사를 손에 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리고 환자에게 묻습니다. “마지막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 환자가 이 세상에서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환자를
둘러싼 의사들과 간호사 그리고 견습의사들도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며 마지막 감사의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과연
무엇이 감사한 것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그 존재 자체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결국은 하나님께로 갈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것이 감사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홉 명에 속합니다.
고침을 받고 은혜를 받았지만 감사가 없는 아홉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고침을 받을 것을
깨닫고 제사장으로 뛰어가던 것을 멈추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이 있습니다. 육신이 고침받은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깨닫게 되고 믿게 되고, 그래서 감사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증을 예수님으로부터 듣는 것입니다. 또한
고쳐주심이 없고, 수확이 없고, 여전히 감옥과 핍박의 현장에 있었어도 하나님이 계시기에 기뻐하며,
인간의 연약함을 가지고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기뻐하였던 하박국 선지자와 사도바울,
청교도들과 같은 이들도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아홉 명’이 되지 않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은 ‘그 한 명’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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