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2015-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스바냐 3:14-17]
오늘 말씀에,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특별한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노래하고, 기뻐하며 즐거워 하십시요”뭐가 그렇게 좋은 일이 있는지 스바냐는
사람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스바냐 선지자 당시의 상황은 기뻐하고 노래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시대적으로 좋지 못할 때입니다.
스바냐는 남유다나라의 요시아왕 때에 활동하던 선지자입니다. 유다나라는
므낫세 왕 때에 극도로 타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다나라를 심판하실 것을 예언케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요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죄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요시야의 개혁이 지속되지를 못하고, 요시야가 죽은 후에 또한
죄악이 지속이 됩니다.
결국 유다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바냐는 죄로 인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대나라를 구원하셔서 회복시키실
것을 알기에 사람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자신의 민족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한 것은 사람들의 모습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죄된 모습을 보면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보다는 탄식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스바냐를 기쁘고 즐겁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스바냐가 찬양했던, 절망 가운데서도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지를 함께 나누며,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함께 기뻐하고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이 돌 수 있기를 먼저
축원합니다.
1. 먼저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최고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스바냐가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장차 기뻐하고
즐거워할 근거로 삼는 것은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된 유대인들을 아주 버리시고 떠나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계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그들의 삶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바냐는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쁘고 즐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로 인해 심판 받을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분이시기에 기뻐할 수가 있겠습니까?
17절에 보면,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는 여호와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바냐가 말하는 전능의 하나님은 “엘샤다이”의 하나님이십니다.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 보면서 살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사람은 무능합니다. 사람들은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많아서 죄를 짓고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만한 지혜도 없고, 알아도 그 말씀대로 살아갈 만한 능력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놓지만, 또한 그것을 제대로 해결할 만한 능력도 없는 무능한 존재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땅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가정에도 문제없는
가정들이 없습니다.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에도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능자들을 찾아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돈이
있으면 전능할 것 같고, 권력이 있으면 그 문제들을 해결할 것 같지만,
사람으로서는 진정한 해결함을 주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구원의 문제입니다.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아 죽게 되었는데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죄로 인한 문제 하나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고 하셨습니다. 15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형벌을 제거하시고, 우리의 원수를 쫓아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죄로 인한 형벌을 면할 수 없고, 우리로 죄를
짓게 하고 멸망케 하는 원수인 사탄을 쫓아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전능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게 될 때에 우리가 어떠한 형벌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무지하여서 악한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영적인 원수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자신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엘샤다이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당신의 능력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의 계절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예수님을 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바냐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면서 기뻐했던 것처럼, 이 성탄에 하나님의 구원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성탄의 계절을 지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또한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스바냐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입장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죄의 형벌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았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 침례교회의 대표적인 목사님으로 크리스웰 목사님이 계십니다. 크리스웰
목사님께 젊은 목회자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습니다. 멀리 노루 한 마리가 보이길래 잘 조준해서 총을 쐈는데 명중을 했습니다. 노루가
쓰러진 곳을 찾아갔는데 그곳에는 노루가 아니라,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교회와 언론들이 들끓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목사가
어떻게 목회를 할 수가 있냐면서 목사직을 사임하고 물러나라고 교회 안팎에서 아우성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에서 목회는 끝났구나”라는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교회의 중직 한 분이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죽인 젊은 목사님을 어느 교회가 받아주겠습니까?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목사님은 평생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목사님을 한 번 용서합시다.”이 한 사람의 용서의 제안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죽인 목사를 용서하고 계속 목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후 목사님의 목회 철학은 ‘용서’가 되고,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설교할 대마다 교회는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교회는 크게 성장하게 되었고, 크리스웰
목사님도 많은 신앙서적을 쓰시고, 세계 침례교회의 총재로 지낼 만큼 큰 영향력을 미치는 목사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격적인 용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17절에서 보면, 용서받은
사람들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도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씸하"라고 해서 "환희"를
뜻합니다. 평범한 기쁨의 상태가 아니라, 최고의 기쁨의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최고의 기쁨을 가지고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인 것은,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을 볼 때에 그것이 너무나 기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7절에 하나님의 기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사람들의 형벌을 제거하시고, 원수들을 쫓아내시며, 스스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고서, 이제 그 구원받은 사람들을 보면서
한 없이 기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에게만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서도 기쁨이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3. 또한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확증되었습니다.
로마서 5: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때에 "너를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라쉬'가 기본형인데, 이 말은 침묵하거나 안식하는 것을 의미하십니다. 그런데 문맥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데, 요란스럽게
사랑하시는 모습이 아니라, 조용한 가운데서 꾸준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 한 여성 포털사이트인 이지데이에서 1073명의 네티즌에게 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것은 아내들이 남편으로부터
어떤 말을 들을 때에 남편으로부터 가장 위로를 받고 안심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42%의 아내들이 응답하기를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라는 말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신이 최고야",
"사랑해"라는 말을 꼽았습니다. 힘든
상황 가운데서 옆에 있으면서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라는 남편의 말에 위로와 안심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옆에 있어 주지 못하고 만날 수 없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스바냐 선지자는, 그들 가운데 잠잠히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습은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걱정하지마, 내가 있잖아.” 늘 옆에 계시면서, 우리를 격려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면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분이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탄의 계절은, 우리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사랑을 보면서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구원의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을 체험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만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똑같이 우리 구원받은
자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대림절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보면서 하늘과
땅이, 모두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보내는 절기입니다. 스바냐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때를 기쁘고 즐거워하며 노래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16절에 보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는 것은 사람이 기운이 빠져서 손이 축 늘어진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공동번역에서는 '시온아, 두려워 마라, 기운을 내어라'로 해석하고, 영어성경, New Living Translation 에서는 " “Cheer
up, Zion! Don’t be afraid!"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데 그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실망하면서 기운이 빠져서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두려운
상황 속에서 위축될 때도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더욱
찾으시고 발견함으로 기운을 내고,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대림절을 통하여서 하나님깨서 함께하시는 삶,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다시 회복하시고, 기운을 내시어서 기쁨과 찬양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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