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0/2016 - 하나님과 동행하기 [창세기 6:5-12]
오늘날
이 땅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2015년 통계로 보면, 72억이 넘는 사람들이 지구라는 한 땅 덩어리위에서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로 충만한 세상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라는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땅에 번성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의 번성함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들을 홍수로 땅에서 멸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처음 천지를 만드실 때에 기대했던 충만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만드실 때에 기대하셨던 것은 하나님을 형상을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람을 지으실 때에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땅에 번성하게 되고,
그 땅에 충만한 사람들을 보니까 하나님의 모습은 하나도 없고, 죄악된 사람들로 세상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사람을 만드신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오늘날
, 뉴스를 보면 사람들의 악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짓과 음란과
미움들, 그리고 폭력과 테러, 살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도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한탄하고 근심하시는 분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노아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한 땅을 보시면서 한탄하시고 계시는데, 그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하나님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근심이 아니라 기쁨이 되었고,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을 통해서라면 다시 한번 이 땅을 시작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노아입니다. 노아는 그 당시의 사람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습니다.
노아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의롭고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분한
표현 같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의롭고 완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지칭할 때에 쓰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주셨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땅을 충만케 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유지하는데 실패했는데, 유독 노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로움과 완전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던 비결을9절에 나타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는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성격을 가진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한 후, 일부러 서로를 닮아 가려고 한다면 힘이 들텐데 그냥
헤어지지 않고 오랜 세월 한 집에서 한 침대를 쓰면서 함께 살면서 동행하다가 보니까 묘하게도 자연스럽게 서로 닮아가듯이, 사람이 의롭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애쓴다면 그것이 힘들겠지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하루하루를 살다가 보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도 드러나고
완전함도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이 땅에 충만할 가치를 가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우리의 죄된 성품이 떨어져 나가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동행이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하시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의 피조물인 사람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 수 있는 에덴 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이 낙원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곳에 먹을 것이 많고 편안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라기
보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하나님과의 친밀한 동행이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은
다음에는 하나님을 피해서 숨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죄의 능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아서 함께 동행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을 피해서
자꾸 숨도록 만듭니다. 이사야 59:2절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람이 죄를 짓고 타락해서 스스로 하나님과의 동행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동행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으로 확증됩니다. 마태복음
1:23 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현존입니다. 요한복음 14:9절에서 보면,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제자 빌립의 요청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동행하며, 그 형상을 회복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죄를 짓고 감옥에 있는 죄수와 동행하는 것을 즐겨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원하시고, 우리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니,
이것이 죄인된 저와 여러분에게는 커다란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아는 어떻게 살았기에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성경
말씀을 보면,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행한 그 어떤 일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창세기 7:5절에 보면, 노아에 대해서 말하기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함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삶이 필요합니다. 노아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특별한 노력과 집중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했다고
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악하고 거짓된 말들을 많이 했겠습니까? 그것도
세상 사람들의 소리가 얼마나 크고 강력하게 들렸겠습니까? 그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세상 사람들의 말이 아무리 많고 크게 들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더 집중하고, 세상의 어떠한 소리보다도 크게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은 말씀으로 노아와 같이 다 준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듣기는 많이 듣는데 준행함이 없다면 그것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비신앙적인 세상의 말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경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주시는 말씀으로 한 해를 사시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과 야고보 같은 경우는 예수님께서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라고 부르실 정도로
성격이 과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 사마리아 한 마을에 도착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자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누가복음 9:54)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하늘에서 불벼락을 내려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없애 달라는 과격한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안 계신 다음에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갔던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을 회복한 자로 바뀌어 갔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세상의 소리들,
그리고 내 중심적인 내면의 소리를 차단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름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고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고 또한 하나님과의 동행은 우리 성도들의 평생의 과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깐 동행하다가 헤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때는 그렇게 좋아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관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동행은 평생의
동행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과 동행하게 되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잃어 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화 중에서 하나입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에
이러한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에 그 그림에 나오는 인물에 맞게끔 모델을 찾아서 한 명 한 명을 그려 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11명의 제자들은 다 그리고 두 인물이 남았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인격의 인물인 예수님과 가롯유다의였습니다.
다빈치는 두 인물을 그리기에 알맞은 모델을 찾아 나섰습니다. 두 모델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시골의 성당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을 그릴 만한 모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가대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성가를 부르고 있는 한 소년이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찬양하고
있는 그 소년의 모습이 천사와 같이 아름다워 보였고, 예수님의 모델로 하기에 족하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다빈치는 그 소년을 데리고 와서 모델로 삼아 예수님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그린 다음에 가롯유다 모델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가롯유다를 그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지저분한 거리를 지나고 있는 술에 찌들리고 불량해 보이는 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다빈치는 그가 가롯 유다의 모델로 딱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청년의 모습은 어디로 보아도 사악하고 욕심 많은 가롯유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빈치는 정중하고도 조심스럽게 가롯유다의 모델 제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다빈치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 들였습니다. 그렇게 가롯유다를 그려 넣음으로 세계적인 명화인 최후의 마찬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다 완성이 된 후에 가롯유다 모델을 했던 그 청년이 다빈치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절 기억하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10 여 년 전에 선생님의 제의로 예수님의 모델이 되었던 피에트로 반디네리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자신은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로마의 음악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그 때에 불량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방탕한 길로 들어가사 10년 동안 술에 찌들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자신의 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잠깐
동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열심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잠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평생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뜻과 다르기에 그 말씀을
듣고 준행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가 더 달콤하고 유혹적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뒷전으로
하고 안 들은 척하고 살아가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올
한 해 여러분들은 누구와 가장 가까이 지내고 동행하는 삶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바라기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동행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아의 시대와 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후회하고
근심하실 만한 일이 많은 이 때에,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는 노아와 같은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와 기도생활도 열심히 하시고, 말씀을 듣고 읽고 순종하는
삶에도 더욱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기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이 충만히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선하심, 축복, 용서, 기쁨, 지혜, 권세 등의 하나님의 형상이 경험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아 당시에 노아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더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우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올
한 해를 비롯해서 평생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이 더욱 번성하고 충만케 채워지는
한 해,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원합니다. * 샘터질문 1. 그 동안 다녀 본 여행 중에서, 당신을 가징 기분 좋게 했던 여행 동반자는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도록 방해나는 것들을 무엇이 이습니까? 3. 현재 나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있다면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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