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7/2016 -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누가복음 9:28-36]
오늘은 변모주일입니다. '변모'라는 말은 모습이 변했다는 뜻인데,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고 옷에게 흰 광채가 났던 사건에서 나온 말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 세 명,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희한한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예수님이 입으신 옷은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황홀함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들이 보아왔던 예수님은 자신들의 모습과 같이 평범한 외모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집도 없이 자신들과 함께 이곳 저곳을 다니시던 지극히 평범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이 영광의 광채를 가지신 분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놀라게 해 주시려고 깜짝 쇼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제자들에게 나타내셨고,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변모산 사건을 통해서 비록 예수님은 영광된 존재이지만, 앞으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갈 것을 제자들에게 명확히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돌아오는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변모하신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장차 경험할 영광이 고난, 죽음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메시지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먼저, 변모산에서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영광된 존재이심을 확정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변모산에 올라가시기 전에 이미 제자들에게 당신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확인하고 싶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실 때에 닥칠 여러가지 굴욕적인 모습이 있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존귀하심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무력하고 처참한 모습의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적인 연약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임을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기 전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구세주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향한 고백이 사실임을 예수님께서 변화산 위에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기도하시다가 그 용모가 변화셨습니다. 곧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나타난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이를 확증해 주십니다. 갑자기 그 산에 구름이 옵니다. 그리고 그 구름이 제자들을 덮습니다. 제자들을 이러한 기이한 현상을 보고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 때에 구름속에서 소리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당신의 아들이며 신적인 존재인 것을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이를 통해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세주임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제자들의 믿음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고 어떠한 상황이 온다고 할지라도 확신을 가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2.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보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세주이심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서 제자들이 황홀함에 빠져서 예수님께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주님, 이곳에 주를 위하여, 모세를 위해서, 엘리야를 위하여서 초막 셋을 짓지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왜 그러한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막을 짓고서 그 영광 가운데 거하자고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보면 그곳에 머무르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영광의 모습을 보여 주셨지만 예수님은 그 곳에서 초막을 짓고서 살자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영광의 모습을 버리시고 다시 산밑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장차 있을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가실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바라보면서 살아야 할 것은, 이 땅에서의 잠시 경험할 영광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 이 땅에서의 영광을 구하면서 살다가 허영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옛날에 한 나라에 임금이 타는 당나귀가 있었습니다. 임금이 당나귀를 타고 나라를 한 바퀴 순찰하면 온 국민들이 나와서 왕에게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임금을 태운 당나귀에게도 그에 걸맞게 아름다운 장식으로 멋지게 치장을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갈채와 환호에 고무된 나귀는 어느 날 임금을 냉동댕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임금을 태우고 있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백성들의 환호와 갈채를 자신이 다 혼자 받고 싶어서였습니다. 나귀는 임금이 없으면 그 모든 영광이 자신에게로 올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귀가 왕을 땅에 다 내동댕이치는 순간, 나귀는 그 즉시로 참수형으로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영광은 잠시 있다가 사라질 이 땅에서의 영광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3:18절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사도바울은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그가 하나님을 뵙고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에 이르는 존재로 변화될 것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어떠한 영광과 존귀함을 추구하면서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이 땅에서 살았던 것은 이 땅에서 영광을 받기 위해서 살아갔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과 같이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럴 때에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이를 것을 믿고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 가운데 머무시기 위해서 이 땅에서 경험하셔야 했던 것은 바로 별세입니다. 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은 영광의 모습도 있지만, 동시에 죽음과 연결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변모하신 후에 예수님과 함께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이들은 구약을 대표하는 지도자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나누신 이야기가 31절에 보면, "그들이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대화의 소재는 별세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영광된 모습속에서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오시기 전에도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9:22절에,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죽음을 별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별세하다'라는 것은 세상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망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임을 당하는 것은 곧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시는 여정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이 땅에서의 고난과 죽음의 여정을 준비하셨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영광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도 제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에 올라가시기 전에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23절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고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을 때에 예수님과 같이 분명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 먼저 앞서야 할 것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삶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잘되고 존귀하고 영광을 받으려고 하다가 고난의 길을 걷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의 영광을 버려두고 그 산 밑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로 말미암아 영원한 영광에 이른 줄로 믿습니다. 스스로 영광된 존재임을 부인하고 내려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다가 당하는 고난과 죽음은 영광된 일인 줄로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별세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기도하면서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다가 자신이 죽어야 할 때를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변모되었던 사건도 기도하시다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그 죽음의 여정을 준비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내가 죽어야 할 때를 알게 되고, 또한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죽을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제 수요일,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2016년도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통해서 이제 변화산을 내려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그분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원래 영광된 존재였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잠시의 고난과 죽음을 기도하시면서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 중에 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의 기간을 우리가 맞이합니다. 예수님께서 손수 자신에게 있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이 이르렀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영적인 순례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는 시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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