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2022 -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https://youtu.be/XqdPiQsO0Ek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을 보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감사의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오셨습니까? 감사절이니까 감사는 해야 겠는데, 감사할 내용이 마땅이 생각나지 않아서 고민되지는 않으십니까?
그런데,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는 청교도들이 드린 첫 감사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원래 영국에서 살던 개신교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영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영국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원래 캐톨릭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헨리8세 황제가 카톨릭과 단절하고,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헨리 8세 황제가 카톨릭에서 나온 것은 신앙적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왕자를 낳지 못한 자신의 아내인 캐더린 왕비와 이혼하고, 그녀의 궁녀인 앤(Anne) 과 결혼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톨릭 교황이 그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니까 로마 카톨릭에서 나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비록 영국이 캐톨릭 교회와 단절을 했지만, 여전히 영국 성공회는 가톨릭의 가르침과 전통, 예전 등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헨리 8세가 죽은 이후에 가톨릭 적인 요소들을 반대하는 청교도와 같은 기독교인들이 나타나게 되고, 정부는 이들을 박해했습니다. 이로인해 청교도들은 영국에서는 성경대로 바른 믿음생활을 하지 못하겠다고 판단하고, 영국을 떠나 그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로 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1620년, 영국 Plymouth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총 102명이 미국을 향해 출항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3월 21일에 자신들이 정착할 땅을 발견하고 배에서 내립니다. 배에서 내릴 때에 청교도들은 53명만이 생존했습니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도착했지만 먹고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그 때 미국의 원주민들이 그들을 도와주어서 겨울을 나고, 농사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첫 수확물을 얻은 청교도들은 그들을 도와 준 원주민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실, 청교도들의 환경은 하나님께 감사드릴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항해 도중에 그들은 사랑하는 많은 가족들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차디찬 겨울을 지내야 했고, 어렵게 농사지어 수확한 농작물도 풍성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현실은 비참했고 여전히 고생스러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는 땅으로 이주한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할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세상에 어느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감사의 내용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속에 있고, 또한 경제적인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 만연한 범죄와 불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니엘 기도회를 하면서 각 교회들이 기도제목을 올린 것을 보면, 코로나로 인해서 위축되었던 교회가 다시 회복될 수 있기를 구하는 기도의 제목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도 동성애 결혼에 관한 교단의 이슈로 인한 갈등으로 녹록치 않은 때를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보다는 불평할 것이 많은 이 때를 우리는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은, 이런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는 것이 억지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성도들이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원망할 것이 많은 이 때에,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을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감사와 기쁨을 중요한 덕목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정한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그것들을 세상안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주는 기쁨과 감사는 참으로 한시적고 허무합니다. 처음에 비싸고 맛있는 음식 먹을 때에 기쁘고 감사하지만 몇 번 먹으면 감사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고, 나중에는 불평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보고 처음에는 감사해 하다가 나중에는 이 하찮은 음식이라며 하나님께 불만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쁨과 감사의 근거를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소유함에 두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가 누릴 기쁨과 감사는 세상안에서 무엇을 소유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합니다.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다." 는 것은 성도가 예수님과의 관계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곧 성도들이 누릴 감사와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속에서 누려지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안에 있을 때에 아무리 좋고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별볼일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천국을 소유하며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때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하박국 3: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쁨과 감사는 곡간에 과일과 농사물이 풍성하게 쌓이고, 우리에 짐승들이 가득한 것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있음을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기쁨과 감사의 근거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이요 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관계하고 있음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그리고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5:45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했습니다. 해와 비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생계를 유지하기에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셔서, 해와 비를 조건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해와 비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임을 아는 이들은 이를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이들은 해와 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기쁨과 감사를 잃어 버립니다.
그런데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누리는 가장 큰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 자녀되게 하시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라는 찬송가는 장례예배 때에 꼭 불려지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가의 가사는 존 뉴턴이 지었습니다. 그는 1725년, 영국 런던에서 상선을 탔었던 카톨릭 교도인 아버지와 독실한 개신교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 났습니다. 어머니는 그를 성직자로 키우려고 했지만 뉴튼이 6세때에 결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11살이 되었을 때에, 그는 아버지를 따라 선원이 되었고, 나중에 선장이 되었습니다. 존 뉴턴은 그 당시 흑인 노예를 수송하는 노예무역에 종사하게 됩니다. 당신 흑인 노예는 가축 이하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흑인 노예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배에서 병과 열양실조 등으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노예무역을 하던 그가, 1748년에 커다란 폭풍우를 만나게 됩니다. 이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배는 폭풍으를 벗어나 무사히 항구에 도착합니다.
그 날 이후 그는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노예무역을 6년간 계속했지만, 노예에 대해서 그전과 같이 험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755년 존 뉴턴은 노예무역을 그만하고, 성공회 사제가 됩니다. 그리고 1772년, 노예를 학대했던 것을 깊이 회개하였고,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나같은 죄인 살리신' 가사를 쓰게 된 것입니다.
존 뉴턴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되었습니다. 전에는 세상의 물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기쁨이요 감사라고 여기고, 세상의 풍요를 위해 다른 이들을 학대하는 삶을 살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게 되니, 예수님의 구원의 은총을 최고의 기쁨이요 감사로 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기쁨과 감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구원받기에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구원해주시는 줄로 믿고 이를 감사하며 기쁨으로 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성도는,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게 마련입니다.
제 아내가 결혼 전까지 다니던 교회에 한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머리를 아주 길게 길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리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은 한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으며 그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50: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예배를 많이 드려도 감사없이 소홀하게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멸시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하는 성도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공회원들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놓아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전하다가 다시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회원들이 제자들을 협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협박하며 채찍질을 하고 놓아줬습니다.
그럴 때에 채찍을 맞은 사도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5:41절에 보면, 그들이 기뻐하면서 공회앞을 떠나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기뻐했는지 아십니까?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앞을 떠나니라”라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주님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것이 도리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의 3절 가사를 보면, "죄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려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네 죄를 대속했거만 너 무엇하느냐?"
성도는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받아 기쁘고 감사해 할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생명을 그 은혜에 보답하여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예수님과 교제속에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도의 감사는 세상의 것을 소유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예수님과의 관계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더욱 주님과 가까워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슬플 때에 주님앞에 나와 기도할 때에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원망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할 때에 원망을 감사로 바꾸어주십니다.
이 감사절 기간을 통하여 더욱 주님과의 관계를 가까이 하시며,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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